[사람 사람] '미스터 쓴소리' 조순형 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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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왕 탈레반''미스터 쓴소리'.

민주당 조순형(趙舜衡.67.서울 강북 을)의원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그는 원칙에 어긋나거나 불의다 싶으면 가차없이 비판을 해댄다. 물론 성역이 없다.

그의 쓴소리는 지나고 보면 대부분 '정답'이다. 정국 현안이 있을 때마다 그에게 시선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요즘 한창 시끄러운 대북 송금 문제에 대한 해법 제시도 역시 그답다.

"청와대에서 대북 경협을 위해 어쩔 수없었다는 식으로 얘기들 하는데 사실 경협사업이란 게 모두 실정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도록 돼있어요. 그런데 송금 문제만 해도 외환관리법과는 무관하게 처리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마당에 대통령의 직접해명 한번 없이 그냥 덮자는 건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아요. 우선 실상을 적나라하게 규명하는 게 시급합니다. 그러고 나서 국익을 고려해 사법처리 여부를 따져야죠."

그는 이 문제와 관련, 노무현(盧武鉉)대통령 당선자에게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특검을 해서라도 밝히겠다고 해놓고선 비서실장 내정자가 이러쿵저러쿵 다른 말을 하니 노심(盧心)이니 아니니 말들이 많은 겁니다. 어차피 대북 관계만큼 중요한 게 없고, 새 정권뿐만 아니라 계속 이어질 문제라면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지금 당장은 괴롭더라도 투명하게 해야 됩니다. 당선자가 직접 나서 다시 한번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됩니다."

언론도 새 정부가 들어선 후 6개월간은 '밀월'이라는데, 지난 대선에서 盧후보의 선거운동에 앞장섰던 그는 이렇듯 '유보'라는 게 없다. 그는 특히 대통령의 통치행위 운운하며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말도 되지 않는다며 일축한다.

"지난해 야당이 의혹을 제기했을 때 솔직히 털어놓고 해법을 구했더라면 지금보다는 훨씬 덜 시끄러웠을 겁니다. 4개월 동안 한사코 잡아떼다가 이제 와서 대북관계 개선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얘기하니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한 꼴이 아닙니까."

당선자의 의중과는 거리가 있는 다그침이다. 매사 이런 식이다. 그는 인수위와 정부와의 갈등 땐 "당선자는 정책구상이나 하라"며 자중(自重)을 주문하는가 하면,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끝난 뒤 대통령 아들들의 구속 등으로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가 떨어지자 후보교체 불가를 고수하면서도 "지지율 하락의 책임 절반은 盧후보 탓"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그는 盧당선자에 대해 "머리가 좋고 언변도 좋지만 고집이 세 대통령이 된 사람"이라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언로가 막힐 수 있어 이를 잘 다스리느냐 여부가 대통령으로서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옷로비 사건 때는 당론과 대통령 뜻에 반해 특검제를 주장하고, 경찰청 사직동 팀의 해체를 외친 것도 그였다. 1999년 9월 청와대 만찬에선 총선을 앞두고 신당을 창당하는 것에 당위성이 없다며 이의를 제기했었다.

이같은 趙의원을 두고 주위에선 '여당내 야당'이라고 하지만 돈세탁방지법 처리과정에선 정치자금을 포함시킬 것을 고집하는 통에 여야 의원 모두의 적(?)이 돼 '국회 내 야당'이란 소리를 듣기도 했다.

사실 그의 언행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지극히 상식적이다.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따져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것일 뿐이다. 굳이 다른 정치인들과 가른다면 용기가 있다는 점이다.

지금같이 언로가 제한되고 권위적인 정치풍토에선 어려운 일이다. 그러다 보니 5선이면서도 국민회의 시절 사무총장 한 것을 제외하면 변변한 당직 한번 맡은 적이 없다.

하지만 의정활동은 누구보다 성실하다. 지역구 활동은 거의 제쳐두고 오전 9시쯤 국회로 출근해 오후 7시쯤 퇴근한다. 법안을 검토하고, 자료를 챙기고, 민원을 듣다 보면 하루가 늘 짧다. 국회가 열리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늘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의정에 임한다. 5천만 국민 중에 국회의원을 한번도 해보지 못한 사람이 태반인데 자신은 5선이나 했으니 더 나은 사람이 나서면 물러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生卽死 死卽生(살려면 죽고, 죽기를 무릅쓰면 산다)'의 각오를 세운 지 이미 오래다.

글=이만훈 사회전문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mhi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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