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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칼라의 눈(184) 「자유체코」의 절규 인간횃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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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체코」에서 자유화물결이 일기시작한지 만1년, 대포와 「탱크」까지 동원한 소련의강압조치에도 불구하고동구를휩씁 자유화의 물열은 누그러지지않고있다.
지난 1월16일 「체코」의수도 「프라하」시에서는 자유화운동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천여명의 군중들이 모여 그들의 결의를 새로이 다짐했으며 그리고 소련군의 「체코」주둔을 항의하여 분신자살을 결행한 「얀·팔라흐」군은 19일하오 마침내 사망했다.
「얀·팔라흐」의 자살사건은 「체코」국민뿐만 아니라 「체코」내의 자유화운동의 재발을 항상 걱정스럽게 역려해오던 소련으로하여금 새로운 불안을 불러 일으키게 했다.
영국의 역사가 「토인비」는 미소 양극의 지반이 무너진이에도 각국「카톨릭」교주들이 이법안에 불복종, 이반의 경양을 보이고있는 사태를 지적, 현세계를 3대권위실추시대 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역사에 길이 그리고 불미스럽게 기록될 사실은 아마 소련군의 무력침공을 수반케한 「체코」샅에 상징되는 사회주의 세계의 모순과 고민일것임에 틀림이 없다.

<「형제국」통제 깨어지고>
공산권세계의 분극, 다중심화경향은 이제 하나도 새로운 것이 못된다.
국제정치의 향배를 직접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중소의 대립과 그의 분열이 보다 결정적인 의의를 가짐에 틀림없다.
소련 스스로가 사회주의에의 다양한 길을 인정했으며 더욱이 경제에의 이윤도입을 지향하면서도 그의 「형제국」에 따라 해서는 항상조심스러운 통제를 가해왔던 것이다.
여기서 소련는 제국공산당으로부터 존경과 충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것은 「체코」샅을 둘러싸고 각국공산당에의 파문만보더라도 분명한데 그것은 사회주의권 내의 제당의 동향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즉 14개의 사회주의 국가중에서 소련을 지지하는 당이8개당(동독·폴란드·헝가리·불가리아·북괴·월맹·몽고·카부)에불과했으며, 나머지 중공「알바니아」 「루마니아」 「유고」는 소련의 입장을 비난하고 있다.
한편 「체코」사태를 둘러싸고 「크렘린」내부에 강·온양파의대립의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은 이미 전해진바이다.
지난1윌5일 보수적경향이 짙은 소련신문인 「소베트스카야·르시아」는 「체코」민주주주의혁명의 전기가된 「노보트니」당제1서기의 해임1주년을 맞아 국제주의의 이름아래 「체코」에 대한 소련의 무력간섭을 변호하는 논문을 게재했는데 동논문은 최근 『「일부동지」들은 작작의 나라의 내정의 성공을 사회주의전체의의 유일한 공헌으로 간주하며 또 그것만이 국제주의적의무를 다하는 길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통일적행동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소베트사카야·로시아」지가 지적한 「일부동지」운운은 소련내의 일부지도자를 지목한 것으로서 그것은 「체코」문제를 둘러싼 소련내부의 대립을 반영한 것으로 보여진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크렘린」내에는 현재 자유파(온건파) 중간파 그리고 보수파(강경파)등 3파가 서로대립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반해 보수파는 미국으로부터 위협우선적발전과 군사비증액등을 주장하고 있다.
월남문제에 대해서는 강경책을 역설하는 독수리파이기도한 것이다.
동파는「셀레핀」 「수슬로프」를 비롯해서 「세미차스트느비」 「키리렌코」등에 의해 대표되고 있다.
그리고 중간파는 「브레즈네프」당서기장을 비롯해서 「폴란스키」 「마즐로프」등에 의해 대표되고 있다.
「크렘린」내의 이와 같은 3파세력은 월남전과 중동위기등을 비롯해서 소련이 당면한 국내외의 분쟁문제에 있어서 항상대립을 보여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따라서 이번에는 「체코」사태를 둘러싸고 그들간에 상당한 의견대립이 있었다는 것은 하나도 새로운 것이 못된다.

<소내부서도 심각한분열>
공산당내에서 발생하고있는 작금의동향은 지금까지 국제공산주의운동의 공리내지는 철칙으로 되어왔던 단일적중심운동원칙이 이제 일원적 내지는 다원적 중심운동원칙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입증해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코민테른」강령(1928연채택)이 전세계의 노동계급은 『소련에서의 공산주의건설의 공공을 지지하여 자본주의제국의 공격으로부터 소련을 응호할 의무를 갖고있다』고 시정했을 때 국제공산주의운동은 이른바 「한덩어리의 단결」이 이루어질수 있었다.
그러나 「스탈린」이 죽은후 소련에서는 권위의 중심이 상실되었고 한때밀월시대를보였던 중소관계는 바야흐로 파국일보직전에서 맴돌고있으며또한 소련의 가장충실한 괴뢰였던 북괴도 「독자적노선」을추구하기 시작했다. 이는 역시 근본적으로 자국의 국가이익과이른바 「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와의 조화가더이상 이루어질수 없다는것에서 설명 될 수있을 것이다. 이동준<내외문제연구소연구위원·전프라우다지평양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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