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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하씨 909억 횡령 인정한 법원 … 137억 벌금은 '면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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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학교 돈 1000여 억원을 빼돌리는 등 사학 비리 혐의로 구속 기소된 서남대 설립자 이홍하(74)씨에게 징역 9년이 선고됐다.

 광주지법 순천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강화석)는 20일 열린 선고 공판에서 이씨의 교비 횡령 등을 인정해 징역 9년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공소장에 기재한 횡령 액수 1003억원 가운데 909억원에 대해 횡령 혐의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독립적으로 운영해야 할 각 학교 교비회계를 법인회계로 통합 운영한 뒤 예산을 돌려 써 각 학교 재정이 파탄하고 학생들이 큰 고통을 겪었다”며 “비자금 규모, 수단, 방법 등을 고려할 때 중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씨가 과거 두 차례 비슷한 경우로 재판 받았으나 처벌이 가벼워 종전의 범행 수법을 버리지 않고 점점 치밀해졌으며, 교직원들도 처벌이 미약해지자 불법 사실을 알고도 외부에 알리지 못했다”며 과거의 솜방망이 처벌을 간접 비판했다.

 검찰은 즉각 항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형 형량(징역 20년)에 비해 선고 형량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또 재판부가 이씨에게 벌금을 선고하지 않은 데 대해서도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검찰은 이씨에게 징역 20년과 벌금 137억원을 구형했었다. 137억원은 검찰이 이씨가 개인 용도로 빼돌린 것으로 판단한 액수다. 재판부는 벌금형을 선고하지 않은 데 대해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순천지청 김용승 차장검사는 “재판부가 횡령죄의 경우 뇌물죄와 달리 반드시 벌금을 부과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한 듯하다”며 “법률 검토를 거쳐 항소하겠다”고 말했다. 광주지역의 한 변호사는 “개인적으로 빼돌린 돈만이라도 국가에 납부토록 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손창환 변호사는 “74세의 고령에 징역 9년은 가벼운 형량이 아니다”라며 “벌금 부과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재판부의 고유 권한”이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2007년 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설립하거나 실질적으로 운영해오던 전남 광양과 전북, 경기 등의 대학 4곳의 공사대금을 부풀리는 등의 수법으로 1003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교과부 직원 양모(39·구속)씨에게 2200만원을 주고(뇌물공여) 서남대 의대생들에게 규정을 어기고 학점을 준 혐의(고등교육법 위반) 등도 추가됐다.

 이씨는 구속 수감 중 심장혈관 확장 시술인 스텐트 삽입 등 신병 치료를 이유로 지난 2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에 대해 검찰이 “구치소에서 팔굽혀펴기를 할 정도로 건강한 상태”란 반론과 함께 보석 취소를 요구하며 항고하고, 별도의 혐의로 새롭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등 논란을 불러 일으킨 끝에 이씨는 4월 재구속됐다.

 한편 재판부는 이날 이씨와 함께 구속 기소된 서남대 김응식(58) 총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신경대 송문석(59) 총장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총장들의 책임도 무겁지만 교비 회계에 가담하지 않았고 개인적으로 이익을 취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공범이 아닌 방조범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씨의 친척인 법인기획실 책임자 한모(52)씨의 경우도 방조범으로 판단해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벌금 납부용 범죄수익금 10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대리사장 김모(55)씨에게는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순천=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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