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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원천은?-미 현역 작가들의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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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최근 미 국문공의 젊은 작가들 사이에 얼핏 보기에는 단순한 문제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창작활동의 요건은 무엇이냐는 평범한 질문에서 이 논쟁은 시작되었다. 「노르웨이」출신작가 「크누트·함순」은 시간을 메우기 위해 글을 쓰느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극작가「헨리·밀러」는 『창작이란 삶과 같이 하나의 발전을 위한 항해와 같다』고 선언했고 「브로드웨이」의 극작가 「조지·애브트」는 『어린시절의 불행 때문에 작가들은 창작을 하게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비평가는 『무서울 정도로 강렬한 자기표현의 욕망』이 참작활동의 원천이 된다고 단언했다. 이러한 논쟁을 염두에 두고 「플레이·보이」지는 최근 13명의 가장 활발한 현역 작가에게 『예술가들은 창작활동의 원천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과거 생애나 인격상의 특성을 공동적으로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서를 보내어 그 해답으로 지상「심포지엄」을 열었다. 중요한 것만 추려서 여기 소개한다.

<조열한 자기인식>
「트루만·케포테」(『「티파니」에서 아침을』『냉혈』등의 자가가)=예술가는 보통 사람보다 훨신 어린시절에 자신의 할 일이 창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바로 그러한 조열한 자기인식 때문에 어렵고 고립된 소년시절을 보내게 된다. 젊은 예술가에게 일어나는 변화는 어린 진주조개에 일어나는 변화와 비슷하다.
이질적인 모래알이 조개껍질 사이로 들어와서 숙주를 강박관념의 경지로까지 충동하고 또 진주를 형성할 때까지 고통스러운 압력을 가한다. 재질이나 천재도 창작정신 속에 이리저리 부동하는 진주모래와 같은 것이다.

<심리적 병 속에서>
「르렌스·더렐」(『「알렉산드리아」서중주』의 작가)=창작품이란 작가의 내면적 긴장이나 심리적인 병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긴 하나 그 작품이 훌륭할 때 그것은 작가와 독자를 갈이 치유한다.

<자기체험의 의식>
「제임즈·페럴」(스터스·로니건)=예술가가 소년기에 불행했건 안 했건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가 소년시절의 체험을 의식하면서 그 속에서 독창적인 예술작품을 구현해내느냐 않느냐에 있다. 「톨스토이」는 행복한 소년기를 보냈으면서도 거기에 바탕을 둔 삼부작을 써서 20대에 벌써 자기의 천재를 과시한 것은 좋은 예이다.

<약점 극복의 노력>
「아더·밀러」(『「세일즈맨」의 죽음』의 작가)=놀라울 정도로 많은 수의 재능있는 작가들이 어릴 때 가정의 파리라는 공통된 체험을 하고 있다. 예술가의 무대는 바로 이 잃어버리거나 약체화한 내면적 권위를 복구시키려는 부단한 노력 속에서 발견된다.

<사명감과 극기력>
「헨리·밀러」(『북회귀선』의 작가)=창작정신이나 영감은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의 성공적인 표상은 작가의 극기력, 불요불굴의 추진력 및 자신과 사명감에 달려있다. 창작의욕은 좋은 조건에서도 나쁜 조건에서도 나을 수 있는 것이다.

<이상을 향한 욕망>
「알렌·긴즈버그」(「히피」의 가수로서 『외침』의 작가)=「산스크리트」어로 창작은 『만들다』라는 동사이다. 하지만 왜 만들어? 조물주는 불완전하고 그가 만든 우주는 아직 완전서에 이르지 못하지 않았는지? 이상은 현실의 미완성이 욕망과 고통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가능하며 이상이 실현될 때까지는 욕망은 고통 속에 신음한다.

<음영의 힘을 빌어>
「월리엄·스타이론」(『「네트·터너」의 고백』을 써서 68연도 「폴리처」상을 탄 작가)=나 스스로의 경우를 말한다면 나의 창작활동의 원천은 음악에 대한 나의 정열에 있다. 「바하」나 「모짜르트」의 음악이 아니었다면 나는 한줄의 글도 못 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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