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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김광진 2주기 회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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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넥타이에 양복을 입은 사내가 벽을 부여안는다. 다른 사내는 천근같은 고통이 내리누른듯 후줄근한 몸이 비틀거린다.

1986년작 ‘어둠’에서 조각가 김광진(1946∼2001)은 80년대를 지나는 소시민을 그렸다. 네모난 구조물에 갇힌 이들은 시대상황에서 탈출할 수 없다. 빠져나올 수 없게 그들을 옥죄는 군부독재의 정치사회적 풍경을 그는 ‘닫힘’ 연작으로 은유했다. 문을 뚫고 나오려 안간힘을 쓰는 남자의 얼굴은 비통하다.

‘어둠’에서 ‘밤길’로 ‘돌아가는 사람’을 빚은 그는 이렇게 썼다. “나의 작업들은 역사의 그늘에서 또는 내부적 생명의 미몽으로부터 짓눌리고 비틀거리는 나와 나의 이웃들의 구체적 삶의 모습을 진실되게 드러내는 것이다. 어두움을 증언하는 것은 바로 어두움을 벗어나고자 하는 절박한 바람에서 온다.”


김광진이 남긴 조각들은 1980년대 한국의 정치사회적 풍경을 은유하며 이 땅에 살았던 이들의 삶을 증언한다. 왼쪽부터 86년작 '어둠', 89년작 '길Ⅱ', 98년작 '현실같은 꿈'.

김광진은 어둠을 부수려고 노력하다 어느날 갑자기 쓰러졌다. 한창 새 작품에 대한 구상이 무르익어가던 2001년 3월 11일이었다.

밤낮 작업실에 파묻혀 스스로 "생명과 자유를 찾는 푸닥거리"라 불렀던 조각에 몸바친 그의 쉰다섯 해는 70여점의 작품으로 남았다.

오는 3월 5일부터 15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갤러리에서 열리는 '김광진 유작전'에서 그의 분신같은 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작가의 2주기를 맞아 회고전을 마련한 이들은 그의 대학 동창들과 가족이다. 홍대 조소과 65학번 동기였던 부인 배순자씨가 지난 2년 동안 남편 보듬듯 갈무리해온 유작들은 우리를 역사적 사색의 공간으로 데려간다.

고인과 진주교육대에서 동료로 만나 16년을 교유한 정보주 철학교수는 "그는 지식인이자 평범한 시민의 처지에서 시대를 감각하고 호흡할 수밖에 없는 한계지워진 인간임을 자각하면서도 80년 광주민주항쟁을 기억했으며, 그것이 분단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물론 우리 내부의 억압적 사회구조와 관계 있음을 인식했다"고 돌아봤다.

그래서 그는 조각이 단지 보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곧 우리의 삶의 일부를 드러내는 작업임을 실천했다.

친구처럼 남편 곁에서 함께 작업했던 배순자씨는 "동네 포장마차나 선술집에서 이웃들과 나눈 얘기들이 그대로 그의 작품 속에 녹아들었다"고 회상했다. 어둠을 뚫고 길을 찾아 나서는 중년의 남자들은 작가 자신이자 동네 사람들 모습인 셈이다.

그가 8등신이 아닌 6.5등신을 고집한 것도 이런 체험에서 왔다. 늘씬하고 미끈하게 보이는 서양식 인체 표현이 아니라 추레하고 못나 보여도 우리 몸을 그대로 떠낸 인물상은 진실에 다가서려는 작가의 고집을 읽게 한다.

김광진은 한국 구상조각사에 큰 발자국을 남기고 홀연 떠났다. "사물을 응시하면 살아있는 것과 똑같은 비중으로 죽음이 존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던 그는 "허무함과 이에 대항하는 삶의 충만한 의욕이 공존하는" 조각에 혼을 던져 넣었다.

'김광진 유작전'에 붙여 '세상에 가득한 그대'라는 추모시를 쓴 이성부 시인은 노래한다. "그대 모습 지금 보이지 않지만/그대 영혼은 남은 사람들의 시간에 닿아/이토록 우리를 가슴 뛰게 만드네/그대가 온통 세상에 가득하네/고단하게 함께 가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저 어둠 속 아픔과 꿈과 자유/온통 여기 살아서 꿈틀거리네…."

정재숙 기자

◇김광진은= 한국 구상조각계에서 독특한 한 영역을 일군 조각가로 꼽힌다. 1965년에 입학한 홍익대 조소과에서 스승으로 만난 권진규를 좇아 역사와 현실을 뿌리로 한 한국 조각전통을 일구려 노력했다.

1972년 창립한 '에스프리'전에 참가하며 작품 발표를 시작한 그는 한국구상조각회를 중심으로 '문제작가 작품전' '민중미술 15년 전' 등에 눈길을 끄는 문제작을 내놨다. 81년부터 봉직한 진주교육대학을 떠나지 않고 한적한 지역 소도시의 생활을 사랑했던 그는 동시대인들의 삶에 이제 조각 친구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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