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스런 공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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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나는 당신의 의견에는 찬동하지 않지만, 당신이 발언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서는 끝까지 같이 싸우겠다.』
이것은 곧 언론과 사상의 자유에 관한 「볼테르」의 유명한 말로 누구에게나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사실은 이와 같은 말을 「볼테르」가 한적은 없다. 「탈레랑」이 「볼테르」의 전기를 쓸 때 꾸며낸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볼테르」가 이 말을 했든 안했든, 오늘에 와서는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이제는 다시없는 진리처럼 누구나가 여기고 있다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최근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충남대학의 한 교수가 문교부에 의해 징계에 회부되었다 한다. 동 교수는 한글전용화 반대를 위한 민족문화수호대회를 열려다 당국의 제지로 모임을 중단 당한 일이 있다.
그후 대학당국으로부터 사표를 강요당했으나 이를 거부한 탓으로 이번에 징계에 회부되었다는게 표면적인 이유인가 보다. 국립대학에 적을 구도 있는 교육공무원으로서 정부시책에 반대하는 집회를 벌이다는 것이 혹은 경솔한 행동이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대학 당국이 사표를 강요하고, 또 문교당국이 징계령을 발동시킨다는 것은 또 다른 얘기다.
현대에 이르러 개인은 독창적인 사고의 능력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남의 사고며 발언과 자기자신의 그것은 별로 다를 것이 없게 되었다. 따라서 개인의 표현에 대하여 아무도 간섭할 수 없다는 주장은 사실상 무의미한 것이라고 「에리히·프름」이 말한 일이 있다.
말하자면 언론의 자유를 오늘에 와서까지 얘기한다는 것이 쑥스럽기 짝이 없다는 역설적인 얘기가 된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 그 자체가 귀중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프름」 자신도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자유」를 얘기하고, 언론과 학문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말한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자유의 풍토 속에 젖어있기 때문이라고 다행스럽게 여겨야할 것인지도 모른다.
한 교수에 대한 사표강요와 징계회부가 단순한 행정적인 문제로 끝날 수만 있다면, 또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학문의 자유를 질식시키고 진리의 탐구에의 의욕을 상실시키기 쉽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중대한 문제를 던져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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