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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어스'전 13일부터 서울 성곡미술관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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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나.너.우리'라는 제목이 함축하듯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된 시대의 자화상들-. 13일부터 3월 30일까지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열리는 '아이.유.어스(i.you.us)'는 60대부터 20대까지 14명 작가들이 펼치는 자화상전이다. 화가 서용선(52)씨가 썼듯 '모든 사람은 나의 자화상'인 것이다.

윤유진(29)씨는 제 얼굴을 오징어 몸통 속에 밀어넣었다. '단순히 나 자신을 화면에 재현해 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에 존재하는 상상의 요소들을 나와 결부시킴으로써 나의 내면과 외면을 모두 표현해 내는 것'이 그가 들여다보는 그의 자화상이다. 그는 오징어가 되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던데"라고 흐느적거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근사한 자가 테러리스트 아닌가. 이제 나는 죽고 싶다.' 사진작가 황규태(65)씨는 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소나티네' 영화 포스터에 자신의 얼굴을 확대 접사한 작품에 이렇게 썼다.

그가 만든 자화상은 '바이오 칩을 머리에 이식했으며, 그 지시에 따르고 있는' 200살이 넘은 2100년대 자기 모습이다. 작가는 '내 휴먼 보디를 돌려다오'라고 절규하며 권총 자살하는 중이다. 폭력이 날뛰는 세상, 상상 속에서 그는 황홀한 종말을 맞는다.

미술가들이 그리는 자화상은 그림으로 표현하는 자아이자 세월이며, 정체성 탐구이자 세상 보기다. 미술사에 남은 수많은 화가들이 자화상으로 인생을 파헤치고 인간을 연민했다. 사람 얼굴은 그가 지낸 일생이 수많은 결을 이루고 성정의 때가 켜켜이 쌓인 시궁창이다. 자화상은 삶을 비추는 거울인 셈이다.

자신을 최후의 만찬장에 자리한 예수로 변모시킨 권여현(43)씨의 자화상에서 떠오르는 인상은 '가난한 자들의 얼굴'이다. 인간의 허약함을 표현하는 데 예수만큼 좋은 얼굴은 없다. 예수의 깊은 슬픔 속에 육신과 정신이 모두 가난한 자들의 얼굴에 감추어져 있는 희망이 떠오른다.

김홍주(58)씨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그렸다. 수증기가 끼고 물방울이 흘러내린 허연 자국이 사실적인 자화상은 차가운 극사실주의 기법 속에 냉철한 자기 인식을 보여준다. 면도날처럼 치밀하게 자신을 베어낸 붓자국에서 자신에게 가차없는 한 인간의 자기 성찰을 읽을 수 있다.

서용선씨는 "자신을 그린다는 것, 또는 사람을 그리는 것은 내 몸속의 다양한 경험들을 끄집어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타인에 대한 느낌도 자신의 경험 속 정보들을 모아놓은 것이며, 그림은 그것들을 추적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정면을 응시하는 눈에 붉은 색 낯빛이 강렬한 서씨의 '자화상'은 바로 우리가 거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일 수 있다.

화가들은 자화상을 그리면서 자신에게나, 그 그림을 볼 이에게나 살아갈 의지를 다시 한번 새롭게 일깨우는 조물주가 된다. 그래서 시절마다 자화상이라는 단어 앞에 잠시 마음을 조아리는지 모를 일이다. 지금 우리 시대의 자화상은 무엇인가. 02-737-7650.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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