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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스 선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칩스」선생이 교단에 처음 올라선 것은 어느 이류 학교의어학교사로 취직된 매부터였다.
젊은 그에게는 꿈도 야심드 있었다. 잘만 하면 일류교의 교장이 아니면 적어도 교감이 되겠다는-. 그러나 10년이 지난 다음에는 모든 꿈이 다 사라지고 체념도 생겼다. 그랬더니 오히려 그 다음부턴 마음도 가벼워지고 생활도 즐거워졌다.
50세때 아내가 죽고 난 다음, 교장과도 자주 다투고 학생들을 웃기는게 뜸해진 가운데 65세가 되, 자 금일봉과 시계하나를 받고 퇴직했다.
1차대전이 일어나자 교원부족으로 「칩스」는 다시 복직되어 교단에 서게된다. 헐어빠진 옷도 웃기는 말솜씨도 여전하였다.
전쟁이 끝난 날 그는 사표를 대고 다시 학교 앞의 하숙집에 돌아온다. 그러고는 아이들에게 이따금 다를 대접하면서 옛날얘기에 꽃을 피우는걸 유일한 낙으로 삼는다.
어느 날 수천명이나 되는 제자들의 대합창을 꿈속에서 들으면서 영원한 잠결에 들어가 버린다. 『잃어버린·지평선』이란 소설로 낮익은 「제임즈·힐튼」의 단편소설 『「칩스」선생이여 안녕』의 줄거리다. 가르치는 사람의 보람보다는 감상과 애수가 더 짙게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놓는 명작이다.
15일 국민훈장을 받은 14명을 비롯하여 1백83명의 교육공로자가 표창을 받는다. 이들은 모두 30년 이상 교육계에 봉사한 「칩스」선생들이다.
한평생의 애환을 교단 위에서 겪고 분필가루와 함께 삶을 마멸 시켜나간 이들이 그동안 무엇을 보람으로 느껴 왔는지.
이들에게 훈장하나 달아준다고 모든 게 끝나는 긴 아니다. 「칩스」선생처럼 한 평생을 두고 길러낸 수천명의 제자들의 즐거운 대합창을 들으며 조용히 잠들어 버리는게 이들의 마지막 꿈일지는 또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 가장 아쉬운 것은 뭣보다도 퇴직후의 생활에 대한 보장일 것이다.
초등40년. 중등38년. 대학5년 이상을 교육계에 근무했다고 반드시 『국가 이익과 발전에 많은 공적을 남긴 분』이라고만 볼 수도 없다. 이런 표창 기준은 오히려 노「칩스」 선생들을 더욱 서글프게 만들어줄 뿐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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