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수가제가 생명 다투는 고위험 산모 벼랑에 내몰 수도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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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포괄수가제 전체 의료기관 확대를 앞두고 산부인과학회가 거듭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3차 병원에서마저 고위험 산모는 기피할 것이란 얘기다.

7월 1일부터는 대학병원급에 백내장, 편도, 치질, 탈장, 맹장. 그리고 산부인과의 제왕절개 수술과 자궁과 자궁 부속기 전체로 총 7개의 질환에 대한 포괄수가제 시행이 확대된다.

▲ 사진 중앙포토

그 동안 대한산부인과학회는 복지부와의 회의를 통하여 대학병원에서까지 ‘제왕절개 수술과 자궁과 자궁 부속기 수술에 대한 포괄수가제를 시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표명해 왔다.

굳이 시행해야 한다면 ‘예정된 제왕절개수술과 부인과 질환에 대한 개복수술’에 대해서만 포괄수가제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4일 전국 주요 대학병원의 산부인과 교수들은 성명서를 통해 "중증 환자가 많은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서는 포괄수가제 강제적용을 중단해야 한다"며 "포괄수가제가 시행되는 타과의 질환이 백내장, 편도, 치질, 탈장, 맹장이 질환으로 분류된 반면 산부인과의 경우는 제왕절개수술과 자궁과 자궁 부속기 수술이라는 수술명으로 포괄수가제에 들어간 것 자체가 학문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분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산과학회는 포괄수가제 시행 시 나타날 수 있는 가상 시나리오를 예측했다.

먼저 자연진통 또는 유도분만 시도 후 제왕절개를 하게 될 경우다.

학회에 따르면 임산부와 산부인과 의사가 자연진통 또는 유도 분만을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결국 제왕절개수술을 할 수 밖에 없는 응급의 상황인 경우는 많다. 이럴 경우 앞으로는 포괄수가제로 정해진 금액 안에서 진료를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임신 41주 초산모가 질식분만을 위해 입원해 유도분만을 시도하는 상황, 유도 약물을 2일간 투여했으나 결국은 분만진행실패로 3일째 제왕절개 수술 시행하는 경우 포괄수가제의 제도 하에서는 2일간 자연분만을 위해서 노력한 여러 가지 행위료들만 인정된다. 즉 유도분만 약제의 투여, 진통 중 태아 심박동 감시 검사, 입원료와 2일 동안 투여된 진통 간호 인력의 노력 등에 대한 수가는 발생하지 않고 병원은 정부가 정해놓은 포괄수가제에 묶인 제왕절개수술료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유도 분만이든 자연 진통이든 결국 진통을 하다가 안 돼 수술을 하는 경우 이전 행위에 대한 인정이 되지 않아 원가의 손실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제왕절개수술에 대한 결정을 빨리 하여 산모을 위한 최선(最善)의 노력이 아닌 포괄수가제하의 의료 환경에 따른 최적(最適)의 노력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결국 자연출산이나 유도분만 대신 제왕절개수술의 빈도가 높아질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조기진통과 조기양막파수로 3차 병원으로 입원한 산모들이 입원 6일 이내에 불가피하게 제왕절개를 시행하게 되는 경우도 포괄수가제의 적용이 된다. 태아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사용되는 고가의 자궁수축억제제를 비롯한 모든 검사와 처치 비용이 원가의 손실을 초래한다면 3차 병원 내에서도 고위험 산모에 대한 기피 현상이 악화될 우려가 높다.

학회는 "근본적으로 저출산 고령화시대의 출산장려 정책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포괄수가제가 마치 환자에게 만병통치약처럼 포장돼 사실과 진실이 왜곡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날을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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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영 기자 tia@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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