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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앙상한 바다 건질 게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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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12일 오전 6시 제주도 서귀포시 천지연폭포 아래 서귀포항 수협어판장. 회색 콘크리트 바닥이 깔린 1650㎡(500평) 규모의 공간 안쪽, 330㎡(100평)도 채 못 되는 공간에서 첫 경매가 시작됐다. 옥돔 6000여 마리가 60㎏들이 노란색·파란색 플라스틱 상자 20개에 담겨 중매인들의 손에 넘어갔다. 이후 띄엄띄엄 크지 않은 갈치를 담은 10㎏들이 상자가 들어왔다. 오전 10시까지 진행된 갈치경매는 200상자로 끝났다.

 서귀포 수협 최정호 조합장은 “5~6년 전만 하더라도 500평 어판장이 다 차고도 모자라 건물바깥 부두 쪽에 대기하고 있던 갈치 상자가 넘쳐났는데 이젠 아침 경매장 분위기가 퀭하다”며 한숨지었다.

이마트선 외국산 비중이 50% 넘어

 한편 지난 10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 지하 1층 롯데마트 수산물 코너. ‘산낙지(중국)·오징어(원양)·주꾸미(베트남)·각시가자미(러시아)·연어(노르웨이)·부세조기(중국)·흰다리새우(에콰도르)·문어(모리타니)·고등어(노르웨이)·코다리(러시아)·침조기(기니)…’. 매대에 올라온 수산물의 원산지가 제각각이다. 그나마 소비자들이 흔히 찾는 고등어의 경우 작은 놈이 마리당 2000원에, 작은 갈치 두 마리가 9000원에 ‘국산 마크’를 달고 체면을 유지하고 있다. 할인점 이마트의 경우 2008년 15% 수준이던 수입수산물 비중이 지난해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선 51.2%를 기록했다. 어쩌다 한국 할인점 수산물 코너가 ‘국제 회의장’이 된 것일까.

 우리 앞바다 어업이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대형할인점 수산물 매장의 모습은 세계화의 상징이 아니라 한국 연근해 어업 위기의 상징이다. 올 2월 박근혜정부 출범과 함께 해양수산부가 5년 만에 부활했지만 연근해 어업의 현실은 참담하다. 더군다나 조만간 있을 한·중 정상회담에서 언급될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될 경우 쓰러져가는 연근해 어업을 포함한 한국 수산업은 치명상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 초 1500만t 규모였던 연근해 수산자원량은 지난해 860만t으로 줄었고, 2015년이면 390만t까지 급감할 것으로 추정된다. 생산량도 급감하고 있다. 96년 160만t이 넘었지만 지난해엔 100만t을 간신히 턱걸이(109만t)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부산의 국립부경대 김수암(자원생물학) 교수는 “우리나라 연근해 어장은 사실상 거의 진공상태”라며 “그물망을 조절하고, 금지 시기에 어획을 못하도록 단속하는 등의 사소한 것부터 지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온난화·남획·중국 불법조업 ‘바다 삼재’

연근해 어장이 황폐화된 것은 ‘바다 삼재(三災)’ 탓이다. ▶불법 남획 ▶중국 어선 불법 조업 ▶온난화로 인한 바다환경 변화가 그 삼재다. 명태는 2000년 이후 동해바다에서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원인은 수온 상승에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변 해역의 평균 수온은 최근 41년간 1.31도가량 올랐다. 계절별로 여름철은 0.77도, 겨울철은 1.31도 올랐다. 이는 전 세계 평균의 세 배 수준이다. 이에 따라 차가운 물에서 사는 명태는 국내에선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이 때문에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생태는 일본에서, 동태는 대부분이 러시아산이다. 설상가상 일본 원전누출사고 이후 일본산 생태는 수입량이 급감했다.

 제주도 인근 해역에서 많이 잡히는 갈치 역시 2009년 이후부터는 ‘금치’대접이다. 제주 서귀포수협의 강정진 상무는 “예전엔 20일만 조업해도 만선으로 돌아왔는데, 이제는 40일간 바다에 나가 있어도 예전의 10분의 1도 안 잡힌다”고 전했다. 강 상무는 “치어까지 잡아대는 남획 탓에 우리 바다는 사실상 텅 빈 상태”라 고 덧붙였다.

 고등어 역시 96년을 정점으로 어획량이 크게 줄고 있다. 96년 41만5000t이 넘던 고등어 어획량은 지난해 12만5000t으로 내려앉았다. 노르웨이 등 유럽산 고등어가 수입되지 않았다면, 고등어 또한 서민생선이란 이름을 잃어버릴 지경이다. 대게 어획량도 해가 갈수록 급감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07년 4817t이었던 대게 어획량이 해를 거듭할수록 급감해 5년 만인 지난해엔 절반 이하인 2318t까지 추락했다.

 급증하고 있는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도 한국 어장을 위협하고 있는 주범이다. 우리 수역에서 바다 밑 치어(稚魚)까지 훑는 중국 어선들이 그물 무게를 이기지 못해 뒤집어지는 사고도 흔하다.

어업인들 “한·중 FTA 체결 땐 끝장”

 한·중 FTA 협상도 한국 어업의 고민거리다. 해양수산부에서는 한·중 FTA가 기회라고 주장한다. 중국의 소득이 올라가면서 어류소비도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수산물의 수출기회가 그 어느 때보다 커진다는 논리다. 하지만 어업관계자들은 한·중 FTA를 하는 순간 한국의 수산업은 ‘사실상 끝’이라고 말한다.

  수협중앙회 이종구 회장은 “중국은 개방 이후 어획량이 크게 증가해 우리의 60배 수준인 데다 가격경쟁력도 우리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뛰어나다”며 “설상가상 중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양식 선진국이라 이런 상태로 FTA를 맞으면 우리 양식업은 고사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해양수산부는 이 때문에 한국 연근해의 어족자원을 살리기 위해 어선감축과 인공어초 설치, 바다목장 확대와 같은 정책을 펴고 있다. 이를 통해 2017년까지 연근해 자원량 1000만t, 생산량을 130만t으로 올리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양식업의 경우도 한·중FTA에서 협상을 통해 가능한 한 높은 관세보호막을 세우겠다는 입장이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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