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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협상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최근 월남휴전협상의 조급한 타결을 위해 미국이 취하고 있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우리는 큰 충격과 분노를 억제할 수 없다. 미국에 의한 전면휴전의 일괄 타결안은 전면단폭과 더불어 미국, 월남, 월맹, 「베트콩」의 사자 정치협상을 갖자는 것으로 이미 북폭이 거의 중단되고 지상전투 역시 소강상태인 현실면으로 볼 때 휴전은 시간문제로 절박한 감이 없지 않으니 사태는 의외로 명예롭지 못한 종막으로 급전직하할 우려가 짙다.
기회 있을 때마다 <명예로운 휴전>을 다짐해온 「존슨」대통령이 <국민의 지지도가 1%로 줄어드는 한이 있더라도 월남전을 수행하겠다>고 단호한 결의를 표명한 사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거니와 마침내는 월남정책 관철을 위하여 대통령 출마포기까지 선언한 그가 이제 와서 휴전에 초조한 나머지 도리어 침략자에게 평화협상을 애걸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데 더욱 큰 경악과 실망을 금할 길 없다.

<애걸하는 인상>
물론 시한점도 종착점도 없고 뚜렷한 승패의 전망도 없이 무제한의 출혈만 감내해야 할 이 전투구에 지친 국내의 반발은 헌법과 기존질서에 대한 도전이란 심각한 사태로까지 번져가고 있고, BA정책의 일환으로 간주되는 지역주의 내지 신고립주의로의 정책전환을 위하여 월남전 수습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는 「존슨」정권의 고민을 모르는바 아니나, 그렇다고 이 시점에서 패배를 자인하는 것과 다름없는 굴욕적인 협상을 꾀한다는 것은 미국이 종전후 강력히 견지해온 자유세계의 수호와 세계평화의 십자군이란 위대한 세기적 사명을 스스로 포기함을 뜻하는 것으로 이로 인한 민주진영, 특히 자위능력을 갖추지 못한 「아시아」지역제국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휴전으로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확보된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며 누가 그것을 반대하겠는가? 우리들이 고귀한 피를 흘려온 것도 바로 이 자유평화를 쟁취 수호하기 위한 정당방위였다.

<더 큰 불행자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승리도 침략자의 평정도 없이 고식한 휴전을 꾀한다는 것은 장차 우리들의 더욱 큰 불행을 자초하는 행위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과거 한국전선에서 우리의 의사를 묵살한 채 체결한 휴전협정이 남긴 교훈을 누구보다도 잘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등기 혈연을 두 개의 이질체제로 갈라놓고, 피아 극한대립 속에 불안 공포만을 증대시키고 있는 죄악적인 휴전선이 과연 평화와 자유를 상징하는 것인가? 강대국들의 편의주의적 정치흥정으로 꾸며논 판문점이라는 설전부대에는 오늘도 「푸에블로」호 사건을 비롯한 숱한 명예롭지 못한 각본을 놓고 한낱 괴뢰집단으로부터 대국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온갖 모욕을 당하고 있다는 기막힌 사실을 미국은 무엇으로 변명하려는가?

<체통 잃을 참전>
그럼에도 미국이 이번에 우리들 참전당사국 아닌 「베트콩」을 호지명의 뜻대로 협상무대에 등장시키려고 월남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있는 듯한 인상은 언어도단이다.
「베트콩」은 정권체도 주권체도 아닌 한낱 호지명의 앞잡이로 월남공화국의 주권과 독립을 파괴하고 안정과 질서를 교란하는 반란분자에 불과하다. 이러한 적색주구들을 협상의 대상으로 한다면 반공맹주로서의 미국의 체통은 두말할 것도 없고 참전맹방들의 위신은 어찌 되겠는가. 「베트콩」을 주권국가와 같이 동열에 놓고 협상의 발언권을 준다는 것은 결국 전후처리에 있어 17도선 이남을 두 개의 세계로 갈라놓거나, 아니면 「베트콩」과의 연립정부수립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지금까지의 막중한 희생은 자유월남의 수호를 위해서가 아니라 적화를 촉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단 말인가?「마닐라」정상회담을 비롯하여 두차례의 참전국 정상회담에서 우리들은 월남의 주권, 독립의 확보와 평화회복을 굳게 다짐한바 있거니와 월남사태의 수습은 오직 공산침략자들의 평정을 통한 승리와 참전국 합의를 통한 명예로운 휴전에 있을 뿐임을 이미 밝힌 바 있다.

<적의 수단보호>
사실 따지고 보면 월남사태가 미국의 월남전 개입 이래 8년간이나 두고서 미해결의 장으로 끌어온 것은 미국이 막대한 병력과 무기와 전비를 투입하고서도 미온적이고 소극적인 전략을 써 온데에 기인했다. 이제까지 미국은 스스로 월맹 내에 성역을 설정하고 북폭제한 정책을 견지해옴으로써 적의 모든 전쟁수단에 대하여 파괴 아닌 보호를 해왔던 것이다. 「베트콩·게릴라」의 본원지이며 침략수단의 생산지인 적진의 파괴없이 지엽적인 「정글」속의「게릴라」를 상대로만 병력증강만을 계속했다는 것은 전략상 무모한 출혈에 불과했다는 감을 준다. 전쟁수단의 본산을 그대로 둔채 유한한 인적·물적 자원만을 계속 투입했었다는 것은 밑 빠진 솥에 물 붓기와 같은 것이다. 지금까지 제한북폭정책의 자비를 베품으로써 월맹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이려한 미국의 전략은 상대적으로 볼 때 적의 소모전략에 말려 들어간 셈이다.
18년간이란 피곤한 전쟁 속에서 더 이상 감내할 수 없을이만큼 지친 월맹은 어느 의미에서는 미국보다 더 절실하게 휴전을 갈망하고 있다.

<이용당한 약점>
그러나 공교롭게도 미국이 국내적인 사정으로 조급하고 초조하게 서두르고 있기 때문에 호지명은 이러한 미국의 약점을 악용하고 있다. 만약 월남전수행을 위해 출마포기를 선언함으로써 미국의 역사상 위대하고 용기있는 대통령으로 불려진 「존슨」대통령이 우리측에 의한 휴전제의가 아니고 제한북폭정책을 탈피하는 대담한 전쟁수단으로 전환했었다면 적어도 69연도 전반기에는 힘에 의한 명예로운 휴전으로까지는 이끌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미국은 굴욕적이고, 불명예스러운 휴전협상을 제안함으로써 전쟁당사국인 월남공화국의 의사를 외면한채 또 하나의 한국휴전선의 비극을 월남에 심으려 하고 있다. 아무리 대국주의에 의하여 국제정세가 좌우되는 시대라고 하지만 그로인하여 또다시 선량한 주체국의 운명이 농락 당하는 비극을 인류의 양식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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