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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수행평가의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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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자녀를 둔 어떤 엄마는 말합니다. 아이의 수행평가는 엄마의 고행(苦行)일 뿐이라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잘못됐다고. 선생님은 말합니다. 사사건건 아이 학업 과정에 간섭하고 학교를 신뢰하지 않는 엄마가 문제라고.

그래서 엄마와 학교 얘기를 모두 들어봤습니다. 경원중·대명중·대왕중·대청중·세화여중·숭문중·신동중·신사중·압구정중·역삼중·창덕여중·창문여중·청담중·휘문중 등 14개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엄마를 만났습니다. 엄마의 불만이 많은 학교일수록, 정말 똑같은 수행평가였는지 의심될 정도로 엄마와 선생님의 기억이 달랐습니다.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 한번 판단해 보시겠습니까.

지난 4월 압구정동 구현대아파트 일대 과일가게에 느닷없이 사과가 동났다. 사과가 동난 이유는 다름아닌 인근 압구정중학교의 가정 수행평가 때문이었다. 수행평가가 어떻게 이뤄지길래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서울 시내 14개 중학교 학부모 얘기를 들어봤다. 종합해보니 대체로 다섯 가지의 불만 유형이 나왔다.

첫째, 무슨 교육적 목적으로 수행평가 과제를 내는지 모르겠다. 둘째, 무슨 기준으로 평가를 하는지 모르겠다. 셋째,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걸 왜 평가하는지 모르겠다. 넷째, 학교 수업 중 하지 않고 왜 집에서 하라고 들려 보내는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남학생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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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주장
첫째 알 수 없는 교육목적

 압구정중학교 1학년에 다니는 아들을 둔 최모군 어머니는 “수행평가로 사과 돌려 깎기를 한다기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사과 깎는 시범을 보이고, 애는 난생처음 사과를 깎느라 먹을 사람도 없는 사과를 10개 넘게 깎았다”고 말했다. 그는 “과일칼 쥐어본 적 없는 애한테 사과 돌려 깎기는 쉬운 과제가 아니다”라며 “결국 사과 반 박스를 연습용으로 썼는데도 결국 B밖에 못 받았다”고 울상을 지었다.

또 다른 학부모 김모씨는 이런 주장도 했다. “시간 재면서 시험을 보니 애가 긴장해서 사과를 일단 사등분했단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바로 D를 줬다고. 사과 한 번 더 깎게 기회를 주면 안 되는 건가. 사과 깎는 능력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무슨 도움이 된다고 이러는지 원….”

최군 어머니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우리 애는 기술가정 수행평가 전날 부엌을 엉망으로 만들면서 달걀 프라이 연습을 했는데도 C를 받았다”며 “다른 친구가 지나가다 실수로 프라이팬을 엎었다는 게 C를 받은 이유”라고 했다. 그는 “나중에 우리 애 잘못도 아니니 기회를 한 번 더 달라고 사정했더니 교사가 프라이팬 엎은 애 점수는 A에서 B로, 우리 애 점수는 C에서 B로 올려줬다”며 “이런 식이면 아이들 사이만 나빠지지 않겠느냐”고 불만스러워했다.

영어 수행평가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 원어민 교사와 인터뷰할 때마다 스탬프를 한 개씩 받는 ‘마일리지 북’ 제도에 대한 불만이다. 모든 학생에게 기회가 똑같이 가는 게 아니라 원어민과 인터뷰하는 학생을 하루 5명 선착순으로 제한을 뒀기 때문이다. 2학년 김모군 학부모는 “원래 등교시간은 8시30분인데 오전 7시30분에 학교에 가도 인터뷰 약속을 못 잡기 일쑤”라며 “스탬프 많은 노트를 훔쳐가는 일도 많다”고 주장했다. 그는 “애들이 도둑질하고 엄마끼리 의심하게 만드는 평가를 왜 하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둘째 모호한 평가 방식

내용이 아닌 글씨체와 분량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는 데 대한 불만이 많다. 신동중의 한 학부모는 “얼마 전 국어 수행평가로 ‘나를 소개하자’는 과제가 나왔길래 선배 엄마들한테 물어보니 무조건 글씨 예쁘게 많이 쓰면 된다고 하더라”며 “우리 애는 A를 받았지만 씁쓸했다”고 말했다. 그는 “점수 잘 못 받은 다른 애 엄마가 ‘내가 정보가 없어 우리 애만 손해봤다’고 자책하는 걸 들으니 이건 공부가 아닌 교사 성향 맞추기 평가란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엄마의 정보력이 사교육 정보뿐 아니라 수행평가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모둠 평가 방식에 대한 원성도 높다.

세화여중 1학년을 둔 학부모는 “지금의 모둠 평가 방식은 잘하는 애가 못하는 애 점수까지 벌어주는 것”이라며 “열심히 하는 애만 이용당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고 말했다. 대왕중 3학년 김모양도 지난해 체육 수행평가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김양 어머니는 “모둠이 창작 안무를 짜서 그룹 댄스를 하는 게 과제였는데 아무도 의욕이 없었다더라”며 “애 혼자 발 동동 구르며 안무는 짰는데 정작 선생님 앞에서 그룹 댄스를 못해 다 같이 0점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모둠 평가가 끝나면 애들이나 학부모 사이에 감정 상하는 일이 많다”며 “교사가 모둠원 역할을 정확하게 분담해주는 등 관리를 하지 못하면 모둠 평가는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셋째 가르치지 않고 시험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걸 시험 볼 때 당황스럽다는 학부모가 많다. 학교가 사교육을 통해 실력 키운 학생에게만 높은 점수를 주겠다는 얘기 아니냐는 거다.

 신사중 2학년 남학생을 둔 한 학부모는 음악 수행평가 얘기를 했다. 그는 “리코더처럼 누구나 할 수 있는 악기를 가르쳐 그걸로 똑같이 평가하면 되지 왜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는 합주로 모둠 평가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기악 레슨 받은 애들이 결국 좋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수행평가 점수는 아이 실력이 아니라 그 집 경제력과 상관관계가 높다”고 말이다. “과학 수행평가는 완전히 돈 주고 전문업체에 맡겨야 좋은 점수 받고, 음악은 성악 레슨 붙여야 점수 나온다. 수행 때문에 사교육 못 끊는다는 말이 정말 맞다.”

압구정중 3학년 딸을 둔 한 학부모도 “다 돈”이라며 “수행평가는 물론 웬만한 교내 상도 강사가 대신 하고 아이는 상만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넷째 수행평가는 엄마 점수

학부모의 가장 큰 불만은 수행평가를 학교에서 끝내지 않고 집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그 순간 엄마 숙제가 되기 때문이다.

 신사중학교는 여름방학 때마다 과학 수행평가 때문에 한바탕 홍역을 치른다. 탐구주제를 정한 뒤 연구 결과물을 학교에 제출하면 2학기 과학 수행평가 점수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 학교 3학년 장모군 어머니 이모씨는 “과학 수행평가 한 번 하는 데 최소 100만원이 든다”고 말했다. 이씨는 “1학년 때 멋모르고 정말 애가 스스로 연구 주제 정하고 내가 조금 도와주기만 했더니 점수가 낮았다”고 했다. 과학 교사를 찾아가 채점 기준을 물었더니 A등급에 교내상을 받은 포트폴리오를 보여줬다. 가설을 설정하고 4~5가지 실험을 거쳐 검증해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담아낸 스무 장 분량의 포트폴리오였다. 딱 봐도 전문가 수준이었다. 그래서 2학년 때는 대치동 과학학원 원장에게 통째로 맡겼다. 장군은 무난하게 A를 받았다. 이씨는 “정당하지 않다는 건 알지만 모두 그렇게 하니 안 그럴 수 없다”며 “아이가 과학고나 영재학교 진학을 꿈꾸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강남구의 한 중학교 정모 교사(과학)는 “학생 수준을 뛰어넘는 수행평가 결과물을 보면 교사는 아예 배제할 것인가 아니면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 교육적 성취를 이뤘을 거라 판단하고 점수를 줄 것인가 고민한다”며 “대다수 교사가 후자를 택한다”고 설명했다.

다섯째 남학생 역차별?

경원중 3학년 남학생의 엄마는 “여학생은 점수 따려고 하지만 남학생은 했다는 데 의의를 두는 게 수행평가”라고 했다. 역삼중 3학년 학부모도 “남녀공학에 남자애 보내면 입학 전부터 수행에 대해선 어느 정도 포기한다”고 말한다.

수행평가 항목에 ‘준비물 엄수’나 ‘태도 평가’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남학생은 아무래도 꼼꼼하지 못해 과목별로 쏟아지는 수행평가 과제를 숙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 과목마다 수행평가에 들어가 있는 노트 필기는 글씨 예쁘게 쓰고 정리 잘하는 여학생이 점수 따기가 쉽다.

실기 수행평가에서 남녀 격차는 더 벌어진다. 예컨대 기술가정 과목은 요리와 뜨개질, 십자수 만들기를 주로 출제하니 여학생이 유리하다.

체육은 예외적으로 남학생이 유리하다. 하지만 남녀 다른 기준이 적용되니 소용없다. 그래서 “여학생이 유리한 과목에서는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남학생이 유리한 체육에서는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건 역차별”이라는 말이 나온다.

마포구의 한 중학교 심모(38·국어) 교사는 “맞는 지적”이라며 “준비물이나 태도를 수행평가에 포함시키는 건 교사의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수행평가는 학습 과정이니만큼 해당 단원의 학습 목표에 부합하는 활동 과제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현상이 빚어진 데 대해 “여교사 비율이 높아지면서 생겨난 역효과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역삼중 학부모 만족도 높아

수행평가에 지지를 보내는 학부모도 적지 않았다. 학부모 지지를 받는 학교들은 수행평가 운영 방식이 달랐다. 위의 다섯 가지 불만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장치를 마련했다. 가령 대청중·대명중·역삼중은 수행평가를 학교에서 마친다. 학부모가 관여할 여지를 없애는 것이다. 피드백도 충실하다. 대청중은 음악의 가창 수행평가를 볼 때 교사가 악보에 학생이 실수한 부분을 표시해둔다. 점수만 통보하는 대신 실수한 부분을 가르쳐준다.

학교의 주장
교사들 "불만 대부분 학부모 오해에서 빚어져"

“국·영·수라면 또 모르지만 기술가정 과목 수행평가 때문에 난리를 치는 건 엄마들이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닌가.”

 자녀의 수행평가 때문에 엄마들이 골머리를 앓는다는 얘기를 듣고 이런 반응을 보이는 학부모도 많다. 지난해 중학교 1학년(현 중2)부터 내신이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뀐 데다, 고교 입시에서도 주요 과목이 아닌 전 과목 성적을 반영하는 학교가 자율형사립고인 하나고·민족사관고 정도인데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교사들은 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김성희 하나고 기획홍보실장은 “입시에서 전 과목 내신을 반영하는 건 중학교 생활을 성실히 이수하라는 의미”라며 “하나고 합격자는 중학교 내신 4~5% 수준이므로 수행 1~2점을 위해 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수행평가에 목매는 엄마들 생각은 다르다. 안모(42·서울 반포동)씨는 “성적은 절대평가 등급으로 표시되지만 학교에선 여전히 전교 1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운다”며 “절대평가는 ‘눈 가리고 아웅’식”이라고 주장했다. 딸이 하나고 진학을 준비한다는 한 학부모도 “내신 등급 외에 학교별 평균과 표준편차를 보고 과목별 석차는 금방 산출할 수 있다”며 “입시에서 내신 등급만 본다는 이야기를 그대로 믿는 강남 엄마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등수가 중요하기 때문에 모든 과목에서 1점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논리다.

 엄마의 기우 탓인지, 학교의 문제인지 알 수 없지만 학부모와 학교 사이에 서로 불신이 강했다.

 대왕중의 한 학부모는 “체육 수행평가로 그룹댄스를 봤는데 모둠의 다른 애들이 불성실하게 해서 우리 애는 열심히 하고도 0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학교 주미경 체육부장은 “기본 점수가 20점 만점에 12점이므로 0점 받았다는 말부터 사실이 아니다”며 “3주 동안 수업 시간에 연습하도록 지도하며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에 학부모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대왕중은 이 같은 학부모 항의가 많아 올해부터는 그룹댄스를 수행평가 항목에서 아예 제외시켰다.

 여름방학 기간 ‘과학 자유탐구 보고서’를 제출하게 한 뒤 이를 2학기 과학 수행평가 점수로 반영했던 신사중 역시 “올해부터는 자유탐구 보고서를 희망자에 한해서만 받고 수행평가 항목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으며, 곧 고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학교 정성근 교감은 학부모 원성이 높은 기악 합주 평가에 대해서도 “오해”라고 주장했다. 엄마들은 첼로·바이올린 등 고급 악기를 동원해야 좋은 점수를 받는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리코더로만 연주해도 만점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행평가 중인 중학교 교실. 조리실습 평가를 위해 과일을 깎고 있는 학생들(위)과 과학 발명품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모습(아래). [사진 각 학교 홈페이지]

국어 수행평가에서 내용보다 글씨체로 점수를 주는 데다 집으로 과제를 들려 보낸다는 불만이 제기된 신동중도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이 학교 마희창 교감은 “담당 교사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모든 수행 과제는 학교에서 마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압구정중도 “답답하다”는 반응이다. 문제가 제기된 ‘마일리지 북’은 학생과 학부모가 취지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학교 영어 교사는 “마일리지 북 스탬프는 선착순 원어민 인터뷰 외에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며 “평소에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학생들이 검사 하루 이틀 전에 스탬프 쟁탈전을 벌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과 깎기와 계란 프라이 수행평가에 대해 이 학교 가정 교사는 “2008년 교과부의 체험형 평가 방침에 따라 도구 사용 능력을 평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사과를 사등분하고 실수로 프라이팬을 엎었다는 이유로 나쁜 점수를 준 적이 없다”며 "학생이 원하면 시간과 기회를 충분히 줬다 ”고 주장했다.

해외 사례
미국도 초기엔 공정성 시비, 충실한 피드백 덕에 학부모 신뢰 얻어

“수행평가라는 이름만 (외국에서) 빌려왔다고 봐야죠.”

 국내 초·중·고에서 시행하고 있는 수행평가에 대한 교육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수행평가란 학생의 학습 활동을 점검해 개개인에 맞춘 교수 계획을 세우겠다는 취지로 1999년 도입됐다. 그러나 어느새 수행(遂行·어떤 일이나 과제를 실제 해내는 행위)은 사라지고 평가만 남았다는 것이다.

 송인섭(교육학) 숙명여대 교수는 “수행평가가 순위 매기는 도구의 하나로 전락했다”며 “수행평가라는 틀만 빌려왔을 뿐 실상은 지필고사의 한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수행평가를 시작한 나라 중 하나는 미국이다. 사립학교에서는 진작부터 도입했고, 공립학교에서도 1980년대 후반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본격 도입했다. 83년에 나온 ‘위기에 처한 국가’라는 교육경쟁력 관련 보고서가 계기가 됐다. 이 보고서는 “미국 학생의 학업성취 수준이 국제적으로 매우 낮은 데다 17세 전체 학생의 약 30%가 글을 읽을 수 없다”며 학력 저하를 우려했다.

 학업성취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미국의 교육개혁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학교·교사의 책무성 강화. 둘째, 주 단위의 학업성취도 시험 도입과 이를 통한 성적 향상. 마지막으로 수행평가의 확대다.

 각 공립학교는 연구·조사 보고서나 실험·실습 등 프로젝트형 과제를 내고, 서술·논술형 시험을 출제하고, 다양한 팀 단위 활동 등을 수업에 도입하는 방식으로 수행평가를 했다. 이후 수행평가는 암기 위주 교육에서 탈피해 지식을 적용·융합할 줄 아는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는 새로운 교육모델로 각광받았다.

 85년부터 25년 동안 미국에서 교직 생활을 했던 이기동 NLCS제주 국제학교 초등과정 교장은 “80년대 중반 미국 공립학교는 시험 점수로 학생을 줄 세우는 데만 집중했다”며 “이를 보완한 게 수행평가”라고 말했다.

 뉴저지에 있는 사립학교인 드와이트엔글우드 스쿨(Dwight-englewood school)을 졸업한 한소영(서강대 국제한국학과 2)씨는 “내가 무엇이 부족하고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 수행평가 결과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준다”며 “그래서인지 대체로 교사의 평가를 신뢰한다”고 말했다.

 이기동 교장은 “미국도 수행평가 도입 초기엔 평가과정에서의 공정성과 객관성 문제 등으로 혼란이 많았다”며 “하지만 지금은 많이 안정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행평가 채점 기준을 사전에 정확하게 공지하고 평가 후에도 교사가 학부모에게 평가 결과를 상세하게 안내하자 학부모가 평가 결과를 신뢰하게 됐다”고 했다.

 김명화 교육과정평가원 연구위원도 미국의 수행평가 정착 과정에 대해 “피드백 과정이 중요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LA의 한 초등학교를 예로 들었다. “가령 쓰기 수업이라면 한 학기 동안 그 학생의 글쓰기를 지도한 교사가 교과과정 중에 어떤 평가와 조언을 했는지, 그리고 최종 결과물에 대한 평가까지 다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학부모에게 발송해준다. 학부모는 이 책만 보면 아이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그리고 집에서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어 앞으로의 공부 계획을 짤 수 있다.”

평가 결과만 성적표에 점수로 표기되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다.

◆ 수행평가 = 연구·조사 보고서나 실험·실습 같은 프로젝트형 과제, 다양한 팀 단위 활동 등 학습 과정에서 학생이 보여주는 참여도·성과를 평가한다. 기존 지필고사가 암기식 교육을 강제하고 시험 성적에 따라 학생을 서열화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새로운 교육 모델로 부상했다. 미국은 198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는 1996년에 처음 소개된 뒤 1999년 전국 초·중·고교에서 일제히 시행했다. 각 시·도 교육청은 각 과목별 수행평가의 최소 비율에 대해서만 지침을 제시할 뿐 평가 방식과 시행 시기 등과 관련한 구체적인 사항은 각 학교 재량이다.

글=안혜리 기자
=박형수·정현진·전민희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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