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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명은 자성대서 유래됐다" 새 학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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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부산 동구 범일동에 위치한 자성대 공원. 도심 속 섬처럼 숲이 우거져 있다. 그동안 자성대 인근의 증산(점선 부분)을 ‘부산’(釜山) 지명의 유래로 사실상 공식화했으나 최근 자성대가 부산지명의 유래라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나동욱 부산근대역사관장은 올바른 부산 지명의 유래를 찾기 위해 학자들이 논의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송봉근 기자]

‘부산(釜山)’이라는 지명은 어디서 왔는가. 지명에 ‘산’자가 있는 것을 보면 부산이라는 산이 있을 것이다. 그 산은 어디 있는가.

 그동안 부산 지역 향토사학자들은 동구 좌천동 ‘증산(甑山)’을 부산 지명의 유래가 되는 곳으로 봤었다. 증산의 모양이 가마솥 모양(釜)과 같아 15세기 후반부터 부산으로 불렸다는 점을 들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동구도서관과 증산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부산시지(誌)와 부산시 홈페이지, 부산시가 초등학교 보조교재로 펴낸 『우리고장 부산』에 실려 있다. 증산공원을 부산의 지명 유래가 되는 산으로 사실상 공식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주장에 이의가 제기되고 있다. 나동욱 부산근대역사관장은 최근 발표한 논문 ‘부산진성을 통한 부산의 명칭 유래 고찰’(부산박물관연구논집 18)을 통해 자성대공원(동구 범일동) 정상을 부산 명칭의 유래라고 주장했다. 심봉근(전 동아대 총장) 동아시아문물연구소장도 지난달 정기 세미나에서 같은 주장을 폈다. 심 소장은 지난 2월 22일 동구 주최로 자성대공원에서 열린 ‘달빛 인문학을 말하다’ 행사에서 ‘역사 속 자성대 가치 재조명’이라는 강의를 통해 시민들에게 현장에서 이러한 내용을 설명하기도 했다. 증산공원과 자성대공원은 4㎞쯤 떨어져 있다.

논란의 그림 ‘부산진순절도’ 조선 후기 화가 변박이 1740년에 그린 ‘부산진순절도’. 위가 부산진성의 모성(母城), 그 아래쪽이 모성에 딸린 자성(子城)으로 2개의 성을 그려 놓았다. 향토사학자들은 이 그림을 근거로 모성이 있던 증산을 부산의 지명 유래로 보고 있다. 하지만 2개의 성이 하나의 진(鎭)으로 이뤄진 경우는 없으며 조선시대 전통적인 읍성 축조 방식과는 다르다는게 나동욱 관장의 지적이다.

 부산이라는 이름이 역사서와 지도에 등장하기는 조선시대 전기인 15세기 초다. 『세종실록지리지』 『해동제국기』 등에 ‘부산포(富山浦)’라고 나온다. 부자 ‘부(富)’자를 쓴다. 바다를 낀 해안에 산이 많아서 ‘부(釜)’가 아닌‘부(富)’자를 썼다고 사람들은 풀이하고 있다. 지금 표기인 부산(釜山)으로 바뀐 것은 『동국여지승람』과 『조선왕조실록』에서 1469년(예종 1년) 이후에 나타난다.

 증산을 부산 지명의 유래로 보는 향토사학자들은 『동국여지승람』과 『동래부읍지』 등에 나오는 ‘산이 가마솥(釜) 모양으로 생겨 부산(釜山)으로 일렀다. 그 밑이 부산포다’는 부분을 근거로 제시한다.

 또 조선통신사로 일본을 건너간 신유(申濡)의 해사록에 ‘산 모양이 가마와 같고 성문이 바다와 붙어 있다’라는 구절도 인용한다. 부산진 성문이 바다와 가깝다는 점을 들어 부산진성 터(범일동 정공단 자리) 뒷산을 증산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나 관장은 바다와 붙어 있는 성문은 자성대가 더 유력하다고 주장한다. 조선 수군들이 배를 대기에도 자성대 쪽 항구가 적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조선은 수군들이 배를 타고 바다에서만 근무하도록 하다가 배와 육지를 오가며 근무하도록 지침을 바꾸면서 주요 전략요충지마다 진(鎭)을 설치한다. 부산진(鎭)도 성종19년(1488년)께 세워졌다.

 심 소장도 증산은 임진왜란 뒤에 생긴 이름으로 일본인들이 왜성을 쌓으면서 증산으로 불렸다고 지적한다. 증산 정상 부분이 평지로 깎여 있는 점도 왜성의 특징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심 소장은 성곽 연구의 권위자다. 심 소장은 “왜성 자리를 부산 지명 유래로 보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정확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향토사학자들이 증산을 부산 지명의 근거로 보도록 하는 데는 조선 후기 화가인 변박이 1740년에 그린 ‘부산진순절도’(육군박물관 소장)도 한몫했다고 나 관장은 지적한다. 이 그림은 증산 근처에 부산진성의 모성(母城), 그 아래쪽에 부속성인 현 자성(子城)을 그려놓았다. 두 개의 성 가운데 모성이 그려진 증산을 부산진성의 본거지로 판단하면서 부산 지명의 유래로 본 것이다. 그러나 나 관장은 이 그림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168년 뒤에 그린 것으로 신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나 관장은 “부산 지명의 유래를 놓고 학자들끼리 신랄하게 비판하는 자리를 만들어 함께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부산 지명 표지석을 세우자”고 말했다.

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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