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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삼성전자 1조2000억 매도 … 투기세력 개입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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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한국 대표기업에 대한 비관론 때문인가, 외국인 투기 세력의 조직적 개입 탓인가’.

 외국인들의 삼성전자 주식 매도가 심상치 않다. 지난 7일 JP모건의 보고서로 촉발된 외국인들의 집중 매도가 사흘째 이어지면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JP모건의 보고서 파문으로 삼성전자 주가가 6.2% 폭락한 지난 7일 외국인들이 순매도한 삼성전자 주식 수는 45만 3732주(6650억원)에 달했다. 외국인의 하루 순매도량 기준으로 8년8개월 만에 최고치다. 7, 10, 11일 3거래일 동안 외국인 순매도액이 1조2000억원을 넘는다. 국내 증권사들이 일제히 “과도한 우려”라며 삼성전자를 엄호하고 나섰지만 외국인들의 매도세는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JP모건·모건스탠리, 잇달아 목표주가 내려

 11일에도 외국인들은 CLSA·모건스탠리·CS 창구를 통해 22만 주 이상을 내다 팔았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이 내다 판 5743억원어치의 주식 중 삼성전자 한 종목에만 3300억원의 매도가 집중됐다. 개인들이 2479억원어치를 사들였으나 외국들의 매도 탓에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140만원대가 무너졌다. 이날 코스피 12포인트 하락 중 삼성전자 한 종목이 9포인트가량을 끌어내렸다.

 JP모건에 이어 이날 오후에 공개된 모건스탠리의 보고서도 악재로 작용했다. 김 숀 모건스탠리 연구원은 “최근 갤럭시 S4의 부품 주문량은 평범한 수준”이라며 “올해 갤럭시S4 출하량 예상치를 기존 7100만 개에서 6100만 개로 하향한다”고 밝혔다. 지난 7일 JP모건이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190만원으로 20만원 낮춘 데 이은 2탄인 셈이다. 삼성전자를 포함한 코스피 시장의 부진은 최근 세계 이미징 시장에서 증시가 동반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김학균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미국에서 출구전략이 거론되면서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이에 따라 동남아와 주요 이머징 마켓에서 외국인들의 매도세가 강해지고 있다”며 “이런 대외적인 악재가 (삼성전자를 포함해) 코스피 시장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적 무관하게 6000억원 매도는 비정상”

 그렇다 해도 사흘째 이어지고 있는 삼성전자의 급락세는 매우 이례적이다. 최근 10년간 삼성전자의 주가가 하루에 5% 이상 급락한 경우는 7일을 포함해 모두 23차례. 글로벌 주식시장이나 국내 유가증권시장이 폭락하면서 동반 하락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처럼 코스피 지수 대비 4% 이상 떨어진 경우는 모두 5차례에 불과하다. 대부분 삼성전자의 실적 발표와 관련해서 주가가 떨어진 게 보통이다. 예외가 있다면 애플과의 소송에서 10억 5000만 달러의 배상 결정이 내려졌을 때나 애플이 모바일 D램 공급업체를 삼성전자에서 엘피다로 바꿨을 때 정도다. 모두 뚜렷한 악재가 있을 때였다.

 이 때문에 최근 삼성전자의 급락은 펀더멘털보다는 절대 차익을 노린 외국인 투기 세력의 조직적인 개입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신한금융투자 김영찬 연구원은 “실적 발표와 무관하게 외국인들이 하루에 6000억원씩을 팔아 치운다는 것은 정상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글로벌 대형 헤지펀드가 전략을 수정했다거나 공매도 세력이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삼성전자 주식에 대한 대차잔고는 지난달 21일부터 15거래일 연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10일에는 대차잔고가 무려 16만5000주(2300억원)나 급증했다. 대차잔고란 투자자가 증권회사로부터 주식을 빌린 후 상환하지 않은 물량으로, 대차잔고가 늘면 공매도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심상범 대우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에 대한 외국인들의 시각이 나빠지는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지난달 말 이후 열흘 이상 삼성전자 주식에 대한 대차잔고가 증가했고, 뒤이어 외국계 보고서가 연이어 나오고 공매도와 함께 주가가 급락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비이락(烏飛梨落)으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삼성선자의 하루 공매도 수량은 7만8446주로 올 들어 가장 많았다. 최근 한 달간 삼성전자(4790억원)와 LG전자(2048억원)의 공매도 규모도 크게 늘었다.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 회의감 작용설도

 물론 삼성전자에 대해 이처럼 공매도 세력이 붙고 있는 배경에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성에 대한 회의감이 작용하고 있다. 고가 스마트폰 시장은 큰 폭의 성장을 기대하기에는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까이 와 있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선진국 스마트폰 보급률은 이미 80~90%에 육박한다. 게다가 지난해 4분기에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세계 3위로 떠오른 중국 화웨이(華爲)는 국내 업체들을 맹추격 중이다.

 갤럭시 S4의 경우 올봄 출시를 앞두고 일부 증권사들이 올해 판매량을 1억 대까지 예상했지만 현재 예상치는 6000만∼7000만 대 수준이다. 눈동자 인식을 비롯한 몇 가지 획기적인 기술을 도입했지만 당초 소비자들이 기대했던 혁신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평이다. 한 IT(정보기술)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를 보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점유율 40%에서 뒷걸음친 노키아의 데자뷰를 느끼는 것 같다”면서 “삼성전자가 양호한 실적을 보이고 있지만 지금보다 더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또 한 번의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평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국내 시장에서 통신사에 대한 보조금 규제 등이 있어서 수요가 약간 위축됐으나 글로벌 판매에는 목표치 달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특정 증권사 보고서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국내 증권사 "증시 반응 과하다”

 국내 증권사들도 시장의 반응은 과하다는 입장이다. 과거 스마트폰 시장으로의 전환이 늦어 몰락한 노키아나 단일폰이라는 한계를 노출하고 있는 애플과의 수평 비교는 맞지 않는다는 것. 앞으로 시장이 커질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독주가 예상된다는 것도 낙관론의 근거다. 스마트폰이 주춤해도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등 사업 분야가 다양한 삼성전자는 이를 방어해낼 능력이 충분하다는 얘기다.

 밸류에이션 측면에서도 삼성전자는 상승 여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현재 코스피 시장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이 10배인 데 비해 삼성전자는 현재 6배 수준에 거래되고 있다. 이번 매도 사태를 촉발한 외국계 증권사들도 삼성전자에 대한 목표주가를 낮췄다지만 JP모건(190만원)과 모건스탠리(175만원) 모두 현 주가보다 최고 38% 높은 목표주가를 제시하고 있다.

 이정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시장의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것이 정상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다소 불협화음이 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삼성전자가 시장의 기대대로 2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보여주면 이런 우려는 해소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윤창희·박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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