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선 "럭셔리 체험 해봐야 럭셔리 서비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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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현대백화점 상품본부 서세규(40) 콘텐츠개발팀장은 지난달 유럽 6개 도시 출장을 8박10일간 다녀왔다. 이채로웠던 점은 마지막으로 방문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의 숙박. 800년 된 고성을 호텔로 바꾼 ‘카스텔로디 카리마테’ 호텔이었다. 서 팀장이 하룻밤 숙박비가 305유로(46만원) 하는 이 호텔에 이틀간 묵을 수 있었던 것은 “해외에 나가는 직원들은 무조건 특별한 점이 있는 호텔에서 하루 이상 숙박하라”는 정지선(41·사진)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서 팀장은 “고성 안에서 고풍스러운 방과 초현대식 방을 취향대로 고를 수 있었다는 점, 방바닥에 카펫이 아닌 소가죽을 깔아 고객 편의를 배려했다는 점 등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손님이 몰려 체크인 때 30분을 기다리는 상황이 벌어지자 불만을 제기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죄송하다며 룸을 업그레이드해 주고, 룸서비스로 와인까지 주는 등의 세심한 서비스도 놀라웠다고 서 팀장은 전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직원 출장 때 3성급 비즈니스 호텔에 투숙하는 것이 규정이었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출장 간 모든 직원이 가격에 구애받지 말고 특징이나 개성이 있는 호텔에서 최소 1박을 하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현대백화점 노사협력팀은 이에 따라 시장조사를 통해 구매 담당자(바이어)들이 자주 가는 10여 개 해외 도시의 ‘뜨는 호텔’ 30여 개를 선정했다. 1박에 107만원 하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포 시즌스 밀라노’나 1박에 53만원 하는 프랑스 파리 ‘파티큘리에 몽마르트’ 호텔 등이다.

 다른 기업이 해외 연수나 힘들지 않은 출장을 성과가 좋은 직원에 대한 포상으로 활용하는 것과는 달리 현대백화점은 연말까지 모든 바이어 130명이 의무적으로 해외 출장을 가도록 했다. 지난해엔 절반만 갔었다. 또 올해부터 본사 직원 1500명 중 매년 약 120명을 회사 돈으로 7박9일간 리프레시(재충전) 휴가를 보내고, 사내 유통대학과 대학원에 다니는 직원 50명도 해외 단기 연수를 보낸다. 올해에만 본사 직원의 약 20%인 300여 명이 해외로 나간다. 비용은 한 해 10억원 정도로 잡고 있다.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백화점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뭘까. 정 회장은 “좋은 호텔에 숙박해 봐야 호텔 직원들의 훌륭한 매너, 투숙객과의 차별화된 소통 기법, 그리고 앞선 고객 편의시설을 배울 수 있다”고 최근 경영전략회의에서 강조했다. ‘럭셔리한 상황을 체험해야 고객을 럭셔리하게 모실 수 있다’는 인식이다.

 정 회장은 협력사에도 최고의 매너로 대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협력사를 하청업체로 생각하면 안 된다”며 “비즈니스 매너에 어울리는 복장은 물론, 목소리 톤이나 대화법 등에서 상대를 철저히 존중하는 파트너십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난달 4일 본사 남자 직원 100여 명에게 비즈니스 예절 강좌를 열었다. 협력사 직원이 백화점 본사 상담실에 도착해 컴퓨터에 방문 사실을 입력하면, 곧바로 바이어 컴퓨터에 알림 메시지가 뜨고 5분 안에 만나야 하는 ‘협력사 도착 알람 시스템’도 준비 중이다.

 회사가 직원들에게 고급 문화 체험을 권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웨스틴 조선호텔도 해외 럭셔리 체험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부터 한 해 4억원을 들여 약 40명의 직원에게 일본·홍콩·싱가포르의 특급호텔에 묵고, 최고급 식당에서 식사하는 기회를 준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우수 판매사원 20여 명에게 국내 특급호텔인 W서울워커힐호텔에 투숙해 스파와 헤어숍, 호텔 서비스 등을 체험하게 하기도 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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