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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의 별밤'에 흐르는 강물 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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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010년 파리 프티팔레에서 열린 ‘폭로’전에 참석한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왼쪽). 명화를 디지털로 재현한 이 전시에서 베르베르가 보고 있는 것은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루브르 박물관 소장)의 영상이다. 원작 크기대로 모사한 그림 안에 모니터를 설치해 작품의 디테일을 보여줬다. [사진 프티팔레]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1892~1940)은 복제된 예술은 원래의 감동과 교감을 잃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가 논문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1936)을 발표했던 때는 기계복제가 극성을 이루던 때, 그러나 디지털 복제는 꿈도 꾸지 못했던 시대였다.

 이제는 복제와 패러디, 퍼나르기가 일상화됐다. 예술의 아우라(Aura)가 희미해졌다. 예외 장르가 있으니, 바로 미술이다. 원작의 유일성을 숭배하는 탓에 천정부지로 그림값이 오르고, 유럽 대도시 미술관들은 연간 수십만에 달하는 순례자들을 모은다.

 그런데 원화 없는 명화전, 디지털로 보는 명화전이라는 모험이 시도된다. 12일부터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에서 열리는 ‘시크릿 뮤지엄(Secret Museum)’전이다. 다 빈치부터 반 고흐에 이르기까지 서양 미술사의 혁신을 이끈 주요 회화들을 디지털 재현을 통해 소개한다.

 고성능 카메라로 촬영된 이미지들을 토대로 애니메이션, 특수효과, 3D, 멀티스크린, 음향을 활용해 작품의 디테일과 숨은 의도를 보여준다. 2010년 파리 프티팔레(Petit Palais)에서 ‘폭로(revelation)’라는 도발적 제목으로 열렸던 디지털 명화전의 첫 해외 나들이다. 감정사들이 독점했던 명화의 비밀을 폭로하겠다는 실험적 기획이었다.

 한국 전시에는 17세기 피터 폴 루벤스의 ‘페르세포네의 납치’(프티팔레 소장), 유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루브르 박물관) 등을 담은 영상 35점이 나온다. 작품 이해를 돕는 보조영상과 텍스트, 그리고 명화를 재해석한 한국 작가들의 작품도 배치된다.

출품작 중 32점은 효과음 혹은 배경음악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예컨대 반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1888)에서는 잔잔히 흐르는 강물 소리, 한밤의 귀뚜라미 울음, 멀리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들으며 아득히 빛나는 별빛에 몰입하도록 했다.

 프티팔레의 학예사 샤를 빌뇌브 드 장티는 “많은 이들이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루브르박물관으로 몰려온다. 그러나 일상화된 이 성지순례는 관객이 그림 앞을 지나갈 뿐 왜 여기에 왔는지 이유조차 모른 채 낙심한 상태로 떠나게 한다. 그림 감상법은 단련되는 것이며,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디지털 전시는 관람객들이 스스로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그들에게 문제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주요 공립미술관서 원작도 없이 전시를 열어도 될까, 새로 만든 영상이 작품을 왜곡하진 않을까. 전시 당시 평단은 논쟁했고, 대중은 열광했다. 한 달 간 열린 프티팔레의 전시엔 6만 명이 몰렸다.

 그렇다면 서울에서는 어떨까. 관객들이 영상을 보고 원작에 애정과 궁금증을 갖게 될까. 이같은 전시 방식은 또한 ‘미래의 미술관’ 맛보기가 될 수 있을까. TV와 스마트 기기로 가정용 ‘개인 미술관’‘손안의 미술관’을 즐기는 세상 말이다. 9월 22일까지. 성인 1만2000원, 중고생 1만원. 02-580-1300.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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