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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품 같은 무대 의상들 우린 언제나 …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26호 21면

런던 빅토리아 & 앨버트 뮤지엄의 데이비드 보위 전시장. 이번 회고전은 구찌가 공식 후원했는데, 이는 디자이너 프리다 지아니니가 그에게서 영감을 얻은 수많은 컬렉션을 선보였다는 이유로 이뤄졌다. 오른쪽 사진은 1973년 간사이 야마모토가 디자인했던 보위의 보디슈트. 사진 구찌.

지난주 런던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데이비드 보위 이즈(David Bowie is)’ 전시를 봤다. 우리로 치면 조용필에 맞먹는, 비틀스와 함께 20세기 영국 최고의 뮤지션으로 꼽히는 데이비드 보위(66)의 50여 년을 돌아보는 행사였다. 평소 음악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고, 가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지만, 4만7000장 티켓이 선판매되며 박물관 개관 이래 최단기 판매 기록을 세웠다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스타일#: 런던 데이비드 보위 전시를 보고

데이비드 보위가 누구이길래 이런 인기가 있을까 싶은 분을 위해 잠시 말씀드리면, 그는 올 초 26번째로 발표한 신보가 아직도 차트 순위에 오르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1967년 데뷔한 그는 72년 발표한 네 번째 앨범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로 글램록의 대표주자가 됐다. 이 앨범은 세상의 종말을 5년 앞두고 화성에서 날아온 외계인 로커 ‘지기 스타더스트’가 인류를 구원하고 죽는다는 이야기를 담았는데, 그는 스스로를 ‘지기 스타더스트’로 연기하며 월드투어 공연을 펼쳤다. 그리고 그때마다 의상과 화장, 무대장식으로 시각적 연출을 극대화시켰다. 이것이 바로 패션과 장식 전시가 위주인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에서 가수의 회고전이 열린 까닭이며, 또 지금껏 많은 디자이너들이 데이비드 보위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 이유다.

전시에선 사진·가사집·뮤직비디오 등 이 역사적인 팝스타와 관련된 300여 점 이상의 아이템이 연대기별로 등장했다. 3년 전부터 기획한 전시답게 그가 썼던 휴지조각까지 보여줄 정도로 ‘깨알 같은’ 소품이 총출동됐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역시 그가 무대에서 입었던 50여 벌의 의상이었다. 한 벌 한 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역사적 디자이너들과 광범위한 협업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무대 의상의 퍼레이드였다. 72년 프레디 버레티가 디자인한 언밸런스 스타일 보디슈트, 73년 공연 투어를 위해 간사이 야마모토가 디자인한 줄무늬 보디슈트, 97년 ‘어슬링’ 앨범 커버 촬영을 위해 알렉산더 매퀸과 함께 만든 ‘유니언 잭 코트’ 등은 지금 봐도 ‘어떻게 입을 생각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쇼킹했다. 엉덩이에 술을 단 재킷, 금줄 망사로 만든 레깅스 등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레이스 셔츠와 짝지은 검정 슈트, 클래식한 코트 등 그가 시상식에서 입었던 의상들 역시 전시장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극과 극을 달리는 스타일을 보며 진정한 패셔니스타의 역사다 싶었다. 그것도 각각의 옷을 입었을 때 불렀던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들으면서!

감탄만 연발하다 국내 가수들을 떠올렸다. 우리나라에서 무대 의상이 화제를 낳는 경우가 언제일까 싶었는데, 대개는 걸그룹이 얼마나 ‘벗었냐’라는 노출 수위와 관련이 깊었다. 그때마다 레퍼토리도 비슷해서 10대 가수들의 지나친 섹시 경쟁이 문제라는 지적과 아티스트의 표현 자유라는 옹호가 맞서곤 했다. 무대 의상 그 자체를 두고 ‘얼마나 노래와 잘 어울리는지, 스타일이 창조적인지’라는 얘기는 과문한 탓인지 들어본 적이 없다. 가수 박진영이 활동 초기에 입고 나왔던 비닐옷조차 노출로밖에 회자되지 못하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최근 이효리가 신곡 ‘미스코리아’를 부른 방송에서 수영복을 입은 것도 큰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파격적이라는 극찬 속에 일부에선 보기 불편한 노출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정작 꼬집을 건 노출 문제가 아니라 창의적이지 못한 무대 의상이었다는 점이다. 노래 제목대로 실제 미스코리아 대회 복장을 하고 등장하는 ‘전형적 수법’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게 더 아쉽다는 얘기다.

데이비드 보위가 선구자로 불리는 건 가수의 생명력이 오디오만이 아닌 비주얼에도 있음을 일찌감치 감지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단, 명심할 건 비주얼의 무기가 성형과 다이어트로 다듬은 미모가 아니라는 것. 그것은 바로 음악과 짝을 맞춘 남다른 스타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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