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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특유의 군대 경험이 창업 밑거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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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호 06면

다니엘 바이스 이스라엘 과학계의 대부로 통하는 바이스 교수는 73년부터 테크니온에 몸 담으며 무인정찰기 등 국방 관련 기술을 개발해 왔다. 테크니온 대학이 수여하는 최고 영예인 ‘특훈교수(distinguished professor)’로 선정되기도 했다. 바이스 교수는 학계뿐 아니라 정부 경험도 두루 쌓았다. 지난해까지 이스라엘 과학기술부가 ‘최고 과학자(chief scientist)’로 초빙해 정부와 과학계의 가교 역할을 맡겼다.
김대식 교수

테크니온 이스라엘 공과대학(Technion Israel Institute of Technology)은 지난해 개교 100주년을 맞은 이스라엘 최고 명문대 중 하나다. 이스라엘 초대 총리인 다비드 벤구리온이 건국 선언을 한 해가 1948년이어서 국가보다 역사가 더 오래된 셈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이 주도해 설립된 테크니온은 이스라엘이 ‘창업국가(start-up nation)’로 발전하는 데 엔진 역할을 해왔다. 학생들의 창업을 돕는 ‘T3 기술이전센터’ 등 다양한 지원 환경을 갖추고 있어 졸업생의 60%가 창업에 뛰어들고 있으며 이스라엘 100대 기업의 CEO가 대부분 이 대학 출신이다. 박근혜정부 창조경제의 핵심 롤 모델인 셈이다. 중앙SUNDAY에 과학칼럼 ‘Big Questions’을 연재하는 김대식 KAIST 교수가 이스라엘 북부 하이파에 있는 테크니온을 찾아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과학자 다니엘 바이스(71·사진) 교수에게 테크니온의 비밀을 물었다. 김 교수와 KAIST는 이 대학 학자들과 공동 연구를 진행해 왔다.

‘창업의 산실’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 바이스 교수

바이스 교수는 “전쟁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정학적 위치가 창업문화를 두텁게 하는 자양분이 됐다”며 “정부의 효율적 뒷받침이 있는 창업문화는 일자리 창출뿐 아니라 고령화 사회의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대담은 지난달 27일 오후 바이스 교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테크니온 대학이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발행한 우표. 바이스 교수가 개발한 초소형 화학물질 감지기 ‘나노 낙하산’이 실렸다.

김대식 교수(이하 김)=한국의 정부·학계뿐 아니라 일반 국민도 ‘창업국가’ 이스라엘의 성공에 관심이 많다. 많은 나라가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벤치마킹해 나름의 ‘밸리’를 만들었지만 실패했다. 이스라엘의 성공 비결은 뭔가.

다니엘 바이스 교수(이하 바이스)=전쟁의 압박을 겪다 보니 이스라엘에선 자연스레 국방안보와 관련한 다양한 기술이 발달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통신 기술도 발전했다. 그러면서 많은 이가 국가안보를 위해 군용으로 개발된 기술을 민간 영역에서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면서 창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군용으로 개발된 통신 기술을 민간 휴대전화에 응용하는 식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문화다.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했다면 원인을 분석해야지, 창피해해선 안 된다. 창업 기업 10개 중 하나 정도만 성공을 하는데 실패를 두려워하는 문화라면 아예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창업 자금 6분의 1만 있으면 나머지는 지원
김=창업 생태계에선 정부 지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스라엘 정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지원 체계를 갖추고 있나.

바이스=이스라엘 정부는 90년대에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여럿 마련했다. 펀딩도 정부를 통해 받을 수 있다. 경제부에 창업 지원 펀드가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창업자들이 좋은 아이디어와 함께 필요 자금 중 6분의 1만 제시하면 정부가 나머지 6분의 5에 해당하는 자금을 대주고 대개의 경우 저작권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인큐베이터 시스템도 있다. 창업자들에게 관련 법규나 규제 관련 도움을 주는 것이다. 회계나 서류작업에 매달리지 않고 사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이후에도 대학과 기업을 창업자들과 연결해 준다. 몇 년 전 나도 위성 통신 관련 기업을 창업하는 데 관여했는데 정부 지원 아래 대학과 기업이 함께 움직였고, 그 기업은 업계 최대 규모로 성장했다.

김=창업을 하려면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해야 하는데, 이스라엘인들은 그런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왜 그런가? 이스라엘의 군대 문화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스라엘 친구가 여럿 있는데 군에서 전투기 조종사나 정보 장교로 근무했다. 지금은 각자 기업을 운영하는데, 다들 군대 경험이 창업에 도움이 됐다고 하더라. 18세에 입대해 책임감을 갖고 임무를 완수해 내며 인생에 대한 훈련을 쌓을 수 있었다는데.

바이스=바로 그거다. 이스라엘 군에서 중요하게 가르치는 것이 주도권을 잡고 일하는 방식이다. 받은 명령은 당연히 수행하되, 명령을 무작정 기다리지 말고 자신만의 방식을 찾으라고 가르친다. 이런 훈련은 창업에도 훌륭하게 적용된다. 실제로 전투기 조종사나 장교 출신들이 창업을 많이 한다. 여기에 이스라엘 특유의 교육열이 더해져 자기주도권을 갖는 창업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다(이스라엘에선 남성은 3년간, 여성은 2년간 현역 의무복무를 한 뒤 40세까지 예비군으로 강도 높게 근무한다).

김=유대인 어머니들의 교육열은 유명하다. 한국 어머니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국 아이들은 교수나 의사, 변호사로는 성장하지만 사업가는 못 된다는 점이 문제다. 이스라엘에선 위험을 무릅쓰고 창업을 하는 게 일종의 미덕으로 굳어졌는데, 그 배경은 무엇인가.

바이스=이스라엘 국민이라면 남녀 모두 17세부터 입대 준비를 하는데, 이때부터 독립심을 기르는 훈련에 들어간다. 입대를 하면 다양한 부대에서 테스트를 거치고, 주도권을 갖고 생활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결정을 빨리 내리고 그에 대해 책임지는 법을 배우는 훈련을 하는 셈이다. 여기에다 교육열이 높다 보니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압박이 심하다.
이런 요소들이 합쳐져 이스라엘만의 창업문화를 빚어냈다고 본다. 누군가 하라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일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아직 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미국에서 생활하며 만난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더 자기주도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아마 한국과 이스라엘이 공통으로 가진 교육열 때문이 아닐까 싶다.

김=이스라엘 창업 문화 발전에서 테크니온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10세 안팎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는데.

바이스=테크니온은 이스라엘 최고 공과대학으로, 이스라엘 창업 문화의 주춧돌이 됐다고 자부한다. 비결은 학교를 소수정예로 운영하는 것과 어린 인재를 발굴하는 데 있다. 최고의 학생만 가려뽑기 때문에 학부생은 약 9000명, 대학원생은 약 3000명으로 제한한다.
그리고 10~13세 아이들을 위한 과학 프로그램을 성과 프로젝트 위주로 운영한다. 과학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골라내고 그 아이들을 프로젝트를 통해 경쟁하게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기업가 정신을 교육한다. 장르 간 융합도 중요하다. 공과대로서는 드물게 우리 대학에 의대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첨단 기술 프로젝트를 의학과 연계시켜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땅덩이가 작은 나라는 기술이 중심 돼야
김=테크니온의 역사가 이스라엘 건국 이후 역사보다 길다는 점도 놀랍다.

바이스=국가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경제다. 땅덩이가 작은 국가에서 농업을 핵심 산업으로 삼을 수 없다. 기술과 공학이 중심이 돼야 한다. 이스라엘이 공과대인 테크니온을 일찍이 세운 이유다. 건국 1년 후 초대 (벤구리온) 총리는 이스라엘의 미래는 첨단기술에 있다고 천명했고, 따라서 우린 당시의 첨단기술인 항공우주공학에 집중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위성·로켓, 군용 및 민간 항공기는 최고의 수출품이 됐다.

김=정부에서 ‘최고 과학자(chief scien tist)’로 일해 본 경험은 어땠나.

바이스=모든 사람이 과학적 사고를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알았다(웃음). 여러 프로젝트에 관여했는데 그중엔 21세기의 골칫거리인 고령화에 관련된 것도 있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정년은 65세라고 되어 있지만 이는 수십 년 전 독일에서 정한 것으로, 평균 연령이 늘어난 지금은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 문제는 일자리 창출이다. 정년이 늘어났으니 일자리도 늘어야 한다. 여기에서 창업의 중요성이 다시 나온다. 대기업들은 규모의 경제 때문에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지 않는다. 값싼 노동력을 찾아 공장을 이전하거나 자동 조립 시스템을 갖추기 때문이다. 작지만 튼튼한 기업을 창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건강한 일자리도 만들어진다.

작지만 튼튼한 기업 늘어야 일자리도 늘어
김=한국과 이스라엘의 공통점은 또 있다. 우호적이지 않은 나라에 둘러싸여 예측불허의 도발에 항상 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위협 아래서 정상적인 생활을 꾸려나가야 한다. 국가를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없는 이상 이 상황을 바꿀 순 없다. 이런 국가에서 사는 국민으로서, 학자로서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까.

바이스=인간의 적응력은 뛰어나다. 한국인들도 그렇겠지만 이스라엘인들도 이런 상황에 익숙해졌다. 집에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두려워하며 울 게 아니라 계속 살아나가야 한다. 상황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경계심을 늦추지 말되 최대한 평범한 생활을 꾸려 나가야 한다. 이스라엘에선 전쟁포로가 한 명만 생겨도 그를 구출하기 위해 전 국민이 한 가족처럼 단결한다.

김=시리아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내전이 인접 레바논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지금 이 연구실도 (시리아 사태로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레바논에서 멀지 않은데.

바이스=40㎞ 정도라 아주 가깝다. 창문 밖으로 보일 정도다. 오늘도 대비태세를 갖추기 위한 항공훈련이 있었다. 한국의 경우는 (북한이라는 상대만 있는) 1대1 상황이지만 이스라엘 정세는 더 복잡하다. 소위 ‘아랍의 봄’ 이후 상황은 더 변했고 예측 불가능해졌다.

김=‘아랍의 봄’이라기보다 ‘아랍의 가을’ 같다.

바이스=그럴지도 모른다.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사이버 안보라는 새로운 영역도 나왔다. 육·해·공, 그리고 사이버 공간에서의 국가 안보가 새로운 문제로 대두했다. 하지만 새로운 문제는 새로운 기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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