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임대차 보호 강화는 필요 … 임대료 치솟을까 걱정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26호 08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을(乙)지키기 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과 중소 상공인들이 ‘전국 중소상인 살리기 운동본부’ 발족식을 갖고 있다. [뉴시스]

6일 오후 4시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곱창가게 '우장창창'. 주인 서윤수(36)씨, ‘맘 편히 장사하고 싶은 상인 모임’(맘상모) 임영희 사무국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김남주 변호사 등 20여 명이 곱창집 명도소송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을 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83단독 재판부는 힙합 가수 리쌍의 멤버 길(36)과 개리(35)가 임차인 서씨를 상대로 낸 건물 인도 청구소송에서 “리쌍은 서씨에게 4990만원을 주고 임차인(서씨)은 건물을 비워줘라”는 요지의 판결을 했다.

힙합가수 리쌍 소송전으로 본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 논란

서씨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적용 대상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며 제기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도 기각했다. 재판부는“서씨의 가게는 환산 보증금이 3억원을 넘기 때문에 이 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보증금을 기준으로 보호 대상을 나눈 건 사회경제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법의 취지를 고려할 때 합리적 근거에 따른 차별”이라고 설명했다.

서씨는 2년 전 이전 건물주와 보증금 4000만원, 월 임대료 300만원에 계약하고 음식점을 운영해 왔으나 새 건물주 리쌍과는 계약하지 못했다. 서씨는 권리금·시설투자비로 각각 2억7500만원, 1억150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이를 건지지 못한 채 나가야 하는 것이다. 김남주 변호사는 “패소는 예상했다. 하지만 그것이 정당한 것인지 되묻고 싶다”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서씨는 “리쌍은 법대로 한 것이지만 나로선 정말 억울하다”며 “장사를 계속하고 싶다. 나가야 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장사하겠다”고 말했다.

“보호 기준, 보증금 3억과 5년으론 부족”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맘상모’ 같은 모임이 생기고, 법 개정을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진다. 정치권에선 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발의가 줄을 잇는다. 정부도 관련 시행령 개정을 위한 검토에 나섰다.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에 대한 관심은 자영업자의 증가와 무관치 않다. 상가 임대차의 주요 수요층인 자영업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감소세를 보이다 50~60대 인구가 늘고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다시 증가하고 있다. 자영업자는 2010년 559만 명에서 지난해에는 570만 명으로 늘었다. 경기 불황에 임대료를 적게 내려는 임차인과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임대인 사이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일정 보증금액 이내의 계약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보호한다. 보증금 한도는 현재 서울시의 경우 3억원 이하다. 보증금은 월세를 고려한 이른바 환산보증금이다. <아래 기사 참조>

임차인들은 시대가 변하고 임대료가 오른 만큼 보증금 제한 규정을 아예 없애거나 한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기간도 현행 5년보다 더 길게 해야 한다는 얘기다. 5년은 시설투자비와 권리금 회수에 충분치 않다고 한다. 최우선적으로 변제받을 수 있는 대상과 금액도 늘려야 한다고 요구한다.

조사 대상과 범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상가임대차보호법의 적용을 받는 상가가 감소하는 추세는 분명하다. 부동산정보 전문업체 FR인베스트먼트가 최근 서울시내 상가 밀집지역 가운데 중급 상권 이상으로 분류되는 지역에 있는 1층 5206개 점포의 환산 보증금을 조사한 결과 1368개만이 보호 대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의 27% 수준이다. 중소기업청의 2008년 ‘상가건물 임대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6892개 조사 대상 가운데 83.1%가 보호 대상으로 2004년보다 7.3%포인트 낮아졌다.

권리금과 시설투자비를 둘러싼 분쟁도 적지 않다. 권리금은 임차인 간의 문제로 임대인과의 법적 분쟁에서 보호받지 못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보상받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맘상모의 임영희 사무국장은 상가임대차보호법 10조의 단서도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했다. 10조에는 재개발·재건축, 리모델링을 할 경우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카페를 운영하는 이선민(37)씨는 “서울 방화동에 6000만원을 투자해 카페를 열었는데, 최근 건물주로부터 재건축을 해야 하니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았다”며 “계약 당시에는 10년을 구두로 약속했는데 지금 나가라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임 사무국장은 “임대인의 재산권도 보호해야 하지만 임차인을 내보낼 수 있는 재건축의 사유를 천재지변, 중대한 안전사고의 이유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2년 시행 앞두고 임대료 크게 올라
정치권의 최근 법 개정안은 상인들의 이런 목소리를 반영하는 쪽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부작용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법 개정은 야당이 주도하지만 여당 의원도 있다.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은 최근 임차인 보호 강화를 위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보증금 인상 범위를 현행 연 9%에서 7% 이내로 낮춘다. 임차인이 계약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기간은 5년에서 7년으로 연장한다’는 내용이다. 보증금 인상 등과 관련해 임대인과 임차인의 분쟁이 생길 경우 이를 조정토록 하는 상가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제도를 도입하는 근거도 마련했다. 지금은 임대차분쟁 조정기구가 없어 분쟁이 생기면 소송에 의존해야 한다.

민주당 임내현 의원은 상가임대차보호법의 적용 대상을 모든 상가 임대차로 확대하고 우선변제 금액도 임대건물가액의 2분의 1 범위에서 정하는 개정안을 냈다. 현재 최우선 변제 상한액은 임대건물가액의 3분의 1 이내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돼 있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과 진보정의당 서기호 의원 등도 국가·지방자치단체·대기업·사행업종·유흥업종 등을 제외한 모든 상가로 보호 대상을 확대하는 법안을 냈다.

임대차보호법의 대상을 결정하는 환산보증금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데, 정부는 최근 보증금 실태조사에 나섰다.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관계자는 “보증금 실태조사 결과가 9월께 나오고, 관련 연구결과가 12월께 나오면 되도록 빨리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야 모두 상가임대차 보호 대상을 늘려야 한다고 원칙적으론 같은 입장이지만 온도차가 있다. 민주당 장병완 정책위 의장은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서민생활을 위해 우선 처리해야 하는 법안”이라며 “신속한 통과를 위해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나성린 정책위 부의장은 “임대차 보호 대상은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있을지 모르는 부작용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가임대차 보호가 강화되면 임대료가 더 오르고 점포를 구하기 힘든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2년 상가임대차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임대료가 대폭 올라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상가임대차보호운동본부에는 ‘새 법의 적용을 피하기 위해 임대료를 크게 올리는 건물주들이 속출하고 있다. 새 임대차보호법과 관계없이 재계약하겠다는 내용의 각서 작성을 요구하는 편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신고가 줄을 이었다.

당시 민주노동당도 ‘법 시행에 앞서 임대료 상승을 억제할 수 있는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세입자를 괴롭히는 법안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맘상모 임영희 사무국장은 “일시적으로 오를 수 있지만 우려하는 만큼의 급격한 상승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법 개정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업계 전문가들도 보호 대상의 확대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우려의 목소리도 낸다. 임윤수 서일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보호를 지나치게 강화하면 임대인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명근 변호사는 “최우선 변제 금액을 늘릴 경우 건물 소유주의 담보 설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차인 보호 차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임차인 보호만 강조하면 상가 임대시장에 공급 부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심교언 교수는 “과거의 부작용을 고려할 때 제도를 확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법 개정과 함께 정부가 건물주에게 세제상의 혜택 같은 일정한 인센티브를 주면서 자율적으로 계약보호기간을 늘리는 등의 방안도 함께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