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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원 "서양화가 고희동 옛집 보존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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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지난 주말, 서울 종로구 원서동 창덕궁 서쪽 담장 부근에 위치한 서양화가 춘곡(春谷) 고희동(高羲東.1886~1965) 선생의 옛집.

철거를 위한 인부들의 움직임은 끊어지고 공사용 철제 울타리 위로 뜯다 만 기왓장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봄을 재촉하는 가랑비가 을씨년스러움을 더했다.

이 고택(古宅)의 철거를 둘러싼 논란이 새 국면으로 들어설 전망이다. 대한민국예술원(회장 차범석)이 지난 8일 서울시와 종로구청에 이 집의 보존을 촉구했기 때문이다.

"근현대 미술사에 대한 사료가 미약한 현실에서 고희동의 한옥이 보존돼 미술 선각자를 기리는 문화공간이나 역사교육의 장소로 활용되기를 바란다"는 게 요지였다.

예술원 발표에서 주목할 대목은 문제 해결의 주체로 디자인연구소 부속 건물과 주차장 공사를 진행 중인 ㈜한샘이 아니라 서울시와 종로구청을 들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서울시는 부정적인 입장으로 일관했다.

"보존 가치가 그리 높지 않을 뿐 아니라 사들일 예산이 없다"는 게 공식 코멘트였던 것. 이날 예술원의 발표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직접적인 언급을 삼간 채 "재검토하는 계기로 삼겠다"고만 말했다.

논란은 지난달 28일 공간문화센터와 도시연대.문화연대 등으로 구성된 북촌지역 단체협의회(북단협)의 기자회견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단협은 그날 고희동 고택 앞에서 기자들을 모아 "건물을 철거하려는 한샘의 시도는 문화적인 흔적을 없앨 우려가 있어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샘 측은 "서울시가 북촌 보존 차원에서 땅을 사겠다면 기꺼이 팔겠다"고 응수했다. 다만 가격은 한샘이 사들일 때 가격과 같은 수준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택은 고희동이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1918년에 지어 41년 동안 살았던 곳이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이 한옥을 우리 전통가옥의 틀을 유지하면서 일본식의 형태를 가미한 의미 있는 건축물로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이곳을 북촌의 분위기에 맞는 문화공간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당초 한샘이 이 집을 사들일 때 고희동과의 관련성을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논란으로 어려움을 당하기로는 설계를 맡은 아키반의 김석철 대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북촌의 문화 공간화에 나름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실천 방안까지 제시하고 있는 건축가 중 한 명이다.

이와 관련, 김석철씨는 "종로구청의 요청을 받아들여 대여섯 차례 설계를 변경하면서까지 북촌과 어우러지는 한옥 목조 건축물을 만들려고 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건축계는 이번 논란을 두고 '건축가의 사회적 의무와 실천의 범위를 돌아보게 하게 하는 대표적 사례'라고 말하고 있다. 건축주인 한샘과 설계회사인 아키반이 고민에 빠진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북촌에 거주하는 서지학자의 말에서 해법의 큰 갈래를 찾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개발과 보존의 이해 관계가 여기처럼 집단적으로 상충되는 곳은 없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서울시와 종로구청, 그리고 시민단체와 북촌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진 건축가들이 종합적인 토론을 해볼 필요가 있다."

아무래도 북촌의 새 담론이 필요한 듯하다.

허의도.신준봉 기자 <huhed@joongang.co.kr>

*** 고희동은…

고희동은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뒤 관리생활을 그만두고 소림 조석진과 심전 안중식 문하에 들어가 동양화를 배웠다. 1909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해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가 됐으며, 1918년 서화협회를 창립하는 등 신미술운동을 펼쳤다. 초대 예술원 회장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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