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개성 … 남북 접촉장소 핑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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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8시간 동안 네 차례의 제안과 수정 제안. 6~7일 이틀간 남북 간엔 당국대화 재개를 둘러싼 숨가쁜 핑퐁게임이 벌어졌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7일 오전 9시43분 우리 정부가 제안한 ‘12일 남북 장관급 서울회담 개최’ 방안을 사실상 수용하면서 “장관급 회담에 앞서 그를 위한 북남 당국 간 실무접촉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실무접촉을 9일 개성에서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통일부는 6시간 뒤인 오후 4시 류길재 장관 명의의 전화통지문을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대남 비서)에게 보냈다. 북한은 전날 예고한 대로 이날 오후 2시부터 판문점 적십자 직통전화선을 3개월 만에 재가동했고, 이를 통해 류 장관의 대북 전화통지문을 받았다.

 이로써 통일부 장관과 북한의 카운터파트인 통일전선부장 간의 이른바 ‘통-통 라인’이 복원됐다. 2009년 8월 김대중 대통령 서거 당시 조문을 위해 서울을 찾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현인택 당시 통일부 장관과 만난 이후 4년 만이다.

 류 장관은 전통문에서 “북한이 우리의 장관급 회담 제의를 수용한 걸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다만 실무접촉 장소는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으로 하자”고 수정해서 제의했다. 9일 오전 10시 통일부 국장을 수석대표로 한 3명의 대표단을 보내겠다는 내용도 함께 밝혔다.

 앞서 북한은 6일 오전 11시56분 조평통 특별담화로 남북 당국 간 회담을 전격 제의했다. 류 장관이 지난 4월 제안한 당국 회담에 대해 북한이 6일 수용 의사를 밝힌 것을 계기로 장관급 서울회담 제안(남)→개성 실무접촉 제안(북)→판문점 실무접촉 수정 제안(남)으로 제안이 전개되고 있는 양상이다.

 남북한이 당국 회담 재개를 놓고 주도권을 잡으려 기싸움을 하는 인상을 주곤 있지만 상대방에 공을 떠넘기려 하는 과거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어떻든 논의가 조금씩 구체적인 진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9일 판문점 실무접촉’ 제안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북한이 수용할 경우 다음 주부터는 곧바로 당국 간 대화 국면으로 접어든다. 통일부 당국자는 “장관급 회담을 준비해야 하는 우리 상황에서 개성보다는 판문점 남측 지역이 편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북측의 수용을 낙관했다. 북한은 남북 당국자 회담 장소와 일정을 우리 측에 일임했을 뿐 아니라 과거와는 달라진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날 조평통 대변인 명의의 특별담화에선 “우리는 남측이 우리의 당국 회담 제안을 긍정적으로 즉시 받아들인 것을 평가한다”는 이례적인 문구를 포함시켰다. 개성 실무접촉을 제안할 때도 “수년 동안이나 중단되고 불신이 극도에 이른 현 조건을 고려하여 남측이 제기한 장관급 회담에 앞서 실무접촉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북한의 실무접촉 제안에 담긴 의도를 파악 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재 북한은 개성공단 문제 등의 기본의제 외에 6·15 선언 공동 기념행사 개최에도 비중을 두고 있다. 12일 서울회담 이전까지 6·15 공동행사와 관련한 논의를 하려면 시간이 빠듯하다. 9일 실무접촉에서 이 문제를 이슈화하는 쪽으로 전략을 세웠을 경우 자칫 실무접촉의 횟수를 늘려야 하고, 이 경우 장관급 회담 성사가 난항을 겪을 수도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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