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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처럼, 인천 그날을 기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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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노르망디의 추모행사 제2차 세계대전의 방향을 바꾼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현장에는 각종 기념시설이 마련돼 있다. 사진은 2009년 6월 6일 미군 전몰자 묘지에서 열린 65주년 추모행사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연설하는 장면. [콜빌쉬르메르=블룸버그]

한국전쟁 발발 50주년이던 2000년 국방부는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한 미 해병 등 600명과 가족 3000여 명을 초청했다. 상륙작전 D데이인 9월 15일 작전 현장인 인천 월미도 해안에서 그때 그 용사들이 작전을 재현한다는 계획이었다. 인천시는 박상은 당시 정무부시장(현 국회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기획단을 만들어 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6월 말께 갑자기 행사가 취소되고 초청도 없던 일이 됐다. 그 얼마 전 평양에서의 남북 정상회담과 6·15 선언이 몰고온 파장이었다.

 그해 9월 15일 박 의원은 미국 출장길에서 TV를 보다 소스라치게 놀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맥아더기념관이 있는 버지니아주의 노퍽 해안에서 미 해병 노병 200여 명이 상륙작전 재현 행사를 하는 장면을 본 것이다. 50년 전 인천 앞바다로 쇄도했던 LST(상륙주정)도 보였다. 박 의원은 “정작 인천에선 아무 기념행사도 못 했다는 자괴감 때문에 얼굴이 달아올랐다”고 회고했다. 박 의원은 해군 학사장교를 거쳐 월미도(대한제당)에서 30여 년을 보냈다.

 2000년 노퍽 해안의 인천상륙작전 재현에 충격을 받은 박 의원은 2008년 국회의원 당선과 함께 인천상륙작전 기념사업에 착수했다. 상륙작전의 현장인 인천 월미도에 상륙작전기념공원을 포함해 각종 기념시설을 세우는 사업이다. 정부와 인천시를 설득해 2009년에는 인천시 견학단이 노르망디를 다녀오기도 했다. 프랑스의 노르망디 해안에 못지않은 ‘전쟁과 평화의 명소’를 조성하기 위해서였다. 이듬해 인천시는 보훈처에 700억원 규모의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그해 6월 지방선거에서 야권연합의 송영길 후보가 당선되자 사업계획서는 휴지조각이 됐다. 야권연합에 참여한 시민단체들은 “전쟁을 왜 기념하느냐”며 반대했다.

 이렇게 엎치락뒤치락하던 기념사업이 비로소 실현될 전망이다. 기념사업에 소극적이던 인천시는 부지만 제공하고, 시설사업비는 전액 국비로 한다는 조건으로 지난 3월 정부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인천시 관계자는 “63년 전 벼랑 끝 대한민국을 건져낸 세기적 상륙작전을 늦었지만 제대로 기리려는 것”이라며 “지난달 정부의 사업타당성 1차 심의를 통과했다”고 전했다.

 기념공원의 부지는 월미도 서남 해안 매립지 2만5000㎡다. 1950년 9월 15일 오전 6시33분 미 해병 제5연대 등이 밀어닥친 작전 지명 ‘그린 비치’ 현장이다.

 사업비는 450억원이다. 연면적 3400㎡의 기념관에는 기록사진, 장비 등 인천상륙작전의 모든 자료가 담긴다. 초토화된 국토 등 전쟁의 참상도 생생히 전시된다. 기념관 바깥으로는 16개 참전국과 5개 의료 지원국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세워진다. 한국이 그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징표다. 1만㎡ 규모의 공원과 광장에는 당시 상륙작전의 긴박한 장면을 보여주는 부조 작품들과 한·미 해병 전승기념비 등이 세워진다. 당시 작전에 참가한 함정들도 상륙주정까지 모두 전시된다. 광장은 해안에 바로 접해 있어 대규모 병력의 상륙 재현 등에 쓰이게 된다.

 이 같은 구상은 상당 부분 노르망디 해안을 모델로 하고 있다. 1944년 6월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일거에 제2차 세계대전의 전세를 뒤집었다. 이 해안에는 지금도 당시 작전에 쓰였던 임시부두와 부교, 잔교 등이 파래가 뒤덮인 채 보존돼 있다. 12㎞의 해안에는 주요 참전국 6개국이 상륙한 지점들마다 해안 기념관이 서 있다. 인근 도시 캉(Caen)에는 상륙작전 전체를 조감하는 전쟁기념관이 서 있다. 내부에는 당시 참전 병사들의 편지와 유서까지도 남겨져 있다. 월미도가 속한 인천 중구청은 지난 4월 주한 프랑스 대사를 초청하기도 했다. 캉시와 자매결연을 맺어 노르망디 기념관을 벤치마킹하기 위해서다.

인천=정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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