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금융의 양성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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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황 재무는 17일의 기자회견에서 금리재조정을 예정대로 9월중에 단행할 것을 밝히면서 사금융의 양성화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금융을 양성화 시킨다는 정책은 과거에도 기회있을 때마다 제시되었지만 한번도 실천된 일은 없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65년9월에 단행된 금리현실화 조치시에도 사금융을 공금융으로 흡수한다는 목표가 금리현보화의 주요목적인 것처럼 제시되었으나 결과적으로 사채시장은 여전히 건재하였다.
금융사상 전무후무할 역금리제를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채시장이 건재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사채시장의 조건이 구비되어 있기 때문이라 할 것이며, 사채시장이 존속할 수 있는 조건이 있는 한, 법이나 행정조치로 사채시장을 양성화시키거나, 공금융으로 완전 흡수시킬 수는 없는 것이라 할 것이다.
더욱이 사채의 본질적인 성격에 대해서 충분한 이해를 갖지 못한 채 정부가 그 양성화를 논의한다면 어떤 열매를 기대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금리 현실화조치 때에도 정부는 고금리로 사채를 금융기관에 흡수시킴으로써 내자를 충분히 증가시킬 수 있다고 오산하여 역금리제를 강행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채는 그것이 금융자산의 절대량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금융자산의 보유형태를 변경시킬 뿐이라는 금융「메커니즘」을 충분히 이해했다면 정부가 사채의 양성화를 통한 내자동원을 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사채업자가 자체의 금고를 가지고 독자적인 금융업을 하는 사람은 없다.
사채업자가 보유하는 유동자금은 어떤 형식으로든지 금융기관의 구좌를 통해 대금하는 것이므로 사채가 존재하든, 아니하든, 금융자산의 총액에는 변화가 있을 수 없는 것이며, 다만 통화성예금과 저축성예금의 대체관계만이 있다 할 것이다.
사채와 공금융 사이의 관계가 이와 같기 때문에 사채는 공공금리와 사금리 사이에 차이가 있는 이상 은행구좌를 통해서 유통되는 것이며, 결코 금융기관 밖에서 유통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대출의 결정을 은행이 하느냐, 사채업체가 하느냐하는 의사결정자가 다를 뿐인 것이다. 따라서 사채시장이 존재하는 것은 대출결정자의 이원화를 뜻하는 것이므로, 그 일원화라는 각도에서 사채시장을 다뤄야 할 것이다. 대출결정자가 이원화되었다는 것은 곧 공공금융기관이 자금수요에 응할 수 없을 만큼 약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며, 때문에 공금융의 발전이야말로 사채시장의 흡수와 표리관계를 형성한다 할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사채시장은 자금수요를 좌우하는 통화물가정책의 성패에 따라서 좌우되는 것이지, 결코 제도적인 것은 아니다. 초과투자에 따른 고도성장정책이 지속되는 한 물가가 상승하고, 투기적 소지는 존재하게 되며 그것은 더욱 많은 자금수요로 반영될 것이다. 이러한 자금수요를 방치해둔다면 「인플레」과정이 가속될 것이기 때문에 금융은 자금흡수기관으로 타락하게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금융기관이 자금흡수에나 급급하는 한 사채시장은 활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요컨대 사채양성화는 통화창조「메커니즘」의 정상화와 초과투자경향의 시정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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