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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 돕는 김도마 신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김도마 신부(35)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있던 신부와는 다른것같이 보인다. 그는 격식보다는 실질적인 면에 치중, 있는 그대로의 인간이다. 그는 신부이기 전에 인간임을, 종교인에 앞서 사회의 일원임을 항상 인식하고 있는것 같다. 김도마 신부는 1956년부터 63년까지「프랑스」의「리용」에서 철학및 신학을 전공, 신학사 학위를받은다음 곧「파리」로 올라와 젊은 학생들을 지도하는 재불 한국「가톨릭」회를 맡아 지금에 이르고있다.
재불 한인 3백 명중 학생 및 기술훈련을 받고있는 사람이 약9O%, 이들의 대부분은「파리」에 몰려있고 그 다음에「스트라스부르」「리용」「보르도」「그러노블」등지에 흩어져있다. 불어불문학을 전공하는 수가 지배적이며 다음으로 신학 예술부문등.
이중 약2O명이 불정부 장학금을 받고있고 불정부 기술훈련으로 초청되는 사람이 연간 30여명이 되며 나머지는 자비및 고학이다.
자비의 경우 3∼4년이 지나면 송금이 단절되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고학은 쉽지 않다.
미국과는 달라 임금이 싼 반면 생활비는 비싸 「아르바이트」하면서 공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장기유학자의 많은수가 학업을 중단하고 일자리를 얻어 우선 생활하지 않으면 안될 형편이다.
이렇게 가난한 유학생이 많은「프랑스」에는 자연히 여러가지 부작용이 생기게 마련이 다.「파리」에 도착하는 한국유학생의 급선무는 방문제다. 싼방은 물론 비싼방도 얻기쉽지 않다.
그래서 처음 도착하면 김신부 신세를 지는 수가 많다.
때로는 김신부는 젊은 남녀유학생의 고독을 달래기 위해 다정한 안내자와 친구 노릇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
「프랑스」엔 여학생을 위한 기숙사가 많아 한국유학생들은 몇명씩 어울려 한기숙사에서 다정히 지낼수있으나 남자기숙사라곤 대학촌 안의 20여개세계각국의 학생관이나 기숙사가 있을뿐 한국관이 없어 자연히 뿔뿔이 흩어져 살게 마련이다.
그래서 김신부는 「파리」대학촌에 한국관이 서는것을 최대의 소망으로 삼고 있다.<파리=장덕상 특파원<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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