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다시 우승 합작한 부녀의 감격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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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보경(오른쪽)과 아버지 김정원씨가 우승이 확정된 뒤 기뻐하고 있다. KLPGA 제공

5년 만에 딸이 다시 우승한 날, 김보경(27·요진건설)의 아버지 김정원(57)씨는 감격에 겨운 나머지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는 2005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 데뷔한 딸을 위해 9년째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캐디백을 메왔다. 2001년 심근경색 수술을 받았고 몇 해 전부터는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았다.

아버지의 헌신을 잘 아는 김보경은 한 눈을 팔지 않았다. 2008년 5월 두산매치플레이 챔피언십 이후 5년이 넘도록 우승을 못했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우승 없이 3번의 준우승과 4번의 3위. 스포트라이트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투어 9년차’ 김보경이 E1 채리티오픈에서 5년 만에 감격적인 생애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김보경은 2일 경기도 이천 휘닉스스프링스골프장(파72)에서 열린 최종 라운드에서 3언더파를 기록, 최종 합계 10언더파로 김효주(18·롯데)를 2타 차로 제치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대회 마지막 날, 5년 간 다져온 김보경의 내공이 빛을 발했다. 8번홀까지 김효주에 1타 차 공동 2위. 9번홀의 30cm짜리 버디로 공동 선두에 올라선 김보경은 10번홀(이상 파4)에서 버디를 추가해 단독 선두로 나섰다. 김효주가 11번홀(파5) 버디로 막판 추격을 노렸지만 흔들리지 않고 버디 2개를 추가해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김보경은 “그동안 우승에 대한 부담감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했다”며 “하지만 오늘은 전혀 떨리지 않았고 상대를 의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보경이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활짝 웃는 사이 아버지 김씨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김씨는 “누구보다 묵묵히 골프에 집중했지만 워낙 실력이 좋은 선수들이 많아 우승을 하기가 너무 어려웠다”며 “너무 좋아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김보경은 "우승을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2년 전부터 샷이 안 돼 힘들었다. 아빠와 많이 싸웠는데 올해부터는 '즐겁게 골프하라'고 말씀하시더라"며 "아빠의 고생에 조금이나마 보답한 것 같다.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모두 풀 수 있게 된 것 같다"며 기뻐했다.

우승 상금은 1억 2000만원. 김보경은 10%인 1200만원을 자신의 이름으로 기부했다. 컷을 통과한 선수들도 상금의 10%를 내놨다. 주최사인 E1도 '기부 문화의 확산'이란 취지를 살리기 위해 총상금의 10%인 6000만원을 따로 조성해 장애인 복지 시설 등에 전달하기로 했다.

이천=이지연기자 eas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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