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카페] '천재는 죽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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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죽었다/심상용 지음, 아트북스, 1만2천원

책 제목이 적잖이 단정적이지만, 그걸 이해못할 게 없다. 화가들의 전기물은 물론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등 각종 회화사.조각의 역사 서술이 '천재들의 신화'로 채워져온 것에 반기를 드는 젊은 미술사학자의 비판적 시선에 공감치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천재는 죽었다'는 심상용 동덕여대 교수의 선언은 천재라는 개념 자체가 신화.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규명하는 작업, 그 이상이다.

"천재들의 무덤과 거기에 붙어있는 봉인을 확인하는 것이 이 책의 궁극은 아니다. 괴테가 쉴러의 무덤에서 그랬던 것처럼 봉분을 열고 천재의 유골에 눈물짓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내 작업은 현대미술, 넓게는 현대문화의 배후를 차분하게 독해해내는 일이다. 천재 숭배의 오랜 관습에 얽힌 과거와 현재의 거짓들을 목격하고 진실을 밝히는데 유효한 단초가 되길 바랄 뿐이다."

인용문에서 암시되듯 심상용 문장의 특징은 다소 현학적이다. 또 복잡한 번역투의 복문(複文)이다. 그 바탕에는 냉소주의를 깔고 있다. 따라서 책 읽는 이에게 정독을 요구하지만, 흡인력있게 읽을 만한 예술사회학 분야의 고급 저술이 분명하다.

알고 보면 심상용 식의 냉소주의야말로 르네상스.낭만주의 이후 본격화된 '천재 숭배'의 전통을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뜻밖에도 그는 파리8대학 출신. 1989년에 프랑스로 건너가 조형예술학 석.박사 학위를 했다. 그러나 이 책은 물론 그의 예전 저술 '현대미술의 욕망과 상실' 등에서 일관되게 보이는 서양미술과 미술사에 대한 그의 비판적 거리두기 작업은 어떤 연유일까.

책을 보면 서양지성사를 유일한 진리가 아닌 '권력의 체계'로 비판한 철학자 미셸 푸코로부터 저자가 강렬한 지적 세례를 받은 흔적이 역력하다.

책은 이런 얘기다. 미켈란젤로에서 근현대의 피카소, 그리고 동시대의 잭슨 폴록.사이 톰블리에 이르기까지 미술사는 '천재의 게임'으로 채워진 것이 사실이다. '선천적으로 탁월한 소수'인 천재가 과연 존재하느냐는 질문부터 저자는 던진다.

그에 따르면 천재란 역사의 산물이어서 '인간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낳은 하나의 발명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숨겨진 차원은 따로 있다. 시장과 권력의 차원 말이다.

천재의 신화를 부추겨 미술시장을 키우고, 그것을 권력화하려는 미술과 현대문화 메커니즘 말이다. 저자는 그런 메커니즘은 거짓일 수 있으니 정신차리고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푸코를 인용한다. "미술사는 한 줌의 작가들을 신화화하고 영웅시하기 위해 대다수 작가를 매장해온 '권력의 연대기'에 불과하다."

매력있는 읽을거리 '천재는 죽었다'는 구조적인 흠이 없지 않다. 한국미술사라는 요소는 단 한줄도 언급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철두철미 서양미술사를 염두에 둔 서술인데, 그것이 영 공허하다. 알고 보면 그런 태도란 서구문화사에 대한 선망의 감정을 감춘 태도가 아닌지 궁금하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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