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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실패한 '청담동 개츠비'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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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점 1년 만에 그랜드 하루에 문을 연 주수암씨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집기를 하나하나 만지며 1년 반 걸린 인테리어 얘기를 하는가 하면, 이곳을 자주 찾던 유명인이 즐겨 앉았던 자리를 가리키며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한 남자가 있었다. 집을 떠나 사업을 했고, 꿈꾸던 백만장자가 됐다. 호사스러운 생활의 나날들. 그러나 어느 날 문뜩 허전함이 몰려왔다. 정작 사랑하는 여인은 옆에 없었기 때문이다. 갈등하던 남자는 모든 걸 뒤로 한 채 고향으로 돌아왔다. 늦었지만 옛 연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그는 그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 이전엔 어디서도 볼 수 없던 호화로운 카페를 냈다. 연일 사람들이 모여 세련된 인테리어와 고급스러운 음식을 즐겼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 버렸다. 잘나가던 카페는 이제 문을 닫았고, 그 역시 카페와 함께 쇠락의 길을 걸었다.

마치 ‘위대한 개츠비’를 연상시키는 이 스토리는 1996년 청담동에 카페 ‘하루에’를 냈던 주수암(61)씨 얘기다. 암 투병을 하는 그의 얼굴에서 화려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한화 김승연 회장 집 아래의 가회동 집에서 현대가(家) 2세인 정몽준(새누리당) 의원과 함께 어린 시절 추억을 나눈 그의 유복했던 유년의 모습은 더더욱 찾기 어려웠다. 요양차 태국에서 2년 머무르다 잠시 귀국한 주씨를 만났다. 그는 한 달 뒤 하와이로 떠난다.

-1990년대 청담동 문화의 시작을 ‘하루에’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하루에가 문을 연 95년만 해도 청담동은 그저 조용한 주택가였다. 굳이 청담동을 택한 이유는 뭔가.

 “78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 후 사업을 했다. 사업이 성공해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런데 옛 연인을 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을 다시 잡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 청담동을 선택한 건 그 여자가 살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여자 한 명 때문에 청담동에 고급 카페를 낼 정도라면 돈이 많았던 모양이다.

 “뉴욕에서 구두 사업을 했다. 리츠 슈즈(Ritz Shoes)라는 이름으로 소호와 매디슨 스퀘어 등 뉴욕에 매장 5곳이 있었다. 당시 뉴욕 멋쟁이의 단골집이었다. 수퍼모델 신디 크로퍼드와 샤넬 수석 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 패션 디자이너 도나 카란 등이 주요 고객이었다. 유명한 사람들은 신발을 꼭 두 개씩 사갔다. 오전과 오후에 발 크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 필리핀 영부인이었던 이멜다 마르코스도 있었다.”

-믿기 어렵다.

 “뉴욕에 오래 산 교민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안다.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왜 하나. 내가 당시 뉴욕 교민 중 돈을 가장 많이 번 사람 중 하나였다.”

-얼마나 벌었길래.

 “연 매출이 600만 달러였다. 내 사업 전성기인 83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최고 연봉이 200만 달러였다고 하면 상상이 가나. 지금 메이저리그의 최고 연봉은 2500만 달러 정도로 알고 있다. 많이 벌어 풍족하게 살았다. 차는 세 대였다. 특별한 날엔 페라리, 평상시에 벤츠, 눈이나 비가 오면 레인지 로버(Range Rover).”

-점점 더 믿기 어려운 말을 한다.

 “당시만 해도 뉴욕에서 고급 구두로는 페라가모와 발리 정도였다. 그런데 색상은 검은색·회색·군청색이 전부였고 디자인도 딱딱했다. 이탈리아에 가서 최신 유행하는 구두를 가져와 비싸게 팔았다. 색깔이 화려하고 디자인도 신선한데 품질까지 좋으니 장사가 잘됐다. 독일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 파리를 자주 오가면서 패션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한국에서 잠시 근무할 때도 의류무역업체를 다녔다. 그런 경험이 사업에 배어 나온 것 같다.”

지난해 문을 닫은 `그랜드 하루에`.

-그렇게 잘되던 사업을 뒤로하고 무작정 한국에 올 만큼 연인이 대단한 사람이었나.

 “음…. 실명만은 쓰지 말아달라. 톱스타 H다.”

 (※주씨와 H 관련 기사가 93년 신문과 방송에 이미 다 나왔으니 이름을 밝히면 안 되겠느냐고 재차 물었으나 거절했다.)

-어떻게 만났나.

 “친구 소개였다. 뉴욕에서 사업하고 있는데 친구가 괜찮은 사람을 소개시켜 준다며 연락처를 알려줬다. H의 서울 집으로 전화를 했다. 처음부터 서로 호감이 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쪽도 내 목소리가 좋았다고 하더라.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사람이 그렇게 톱스타인 줄 몰랐다. 78년부터 줄곧 뉴욕에 있어서 한국 소식을 잘 몰랐다.”

-H는 한국에, 당신은 미국에 있었는데 연애가 가능했나.

 “한 달간 전화만 붙잡고 있다가 내가 서울에 가겠다고 통보했다. 나에 대한 환상이 깨질까 봐 두려웠는지 ‘정말 올 거냐, 어떻게 생긴 분이냐’고 묻더라. 그래서 내가 ‘나이는 마흔이고 머리가 조금 벗겨졌다’고 말했다. 영 아닌 남자가 눈앞에 나타날까 봐 걱정하는 눈치더라. 그래서 내가 ‘걱정 마라, 여자 열을 만나면 아홉은 나한테 푹 빠진다’고 말해줬다. 실제 만난 뒤, 서로 깊이 빠졌다.”

-당대 최고 여배우를 친구 소개로 만날 정도면 당신도 이미 유명했던 건가. 아니, 어떤 매력이 있기에 여자들이 당신한테 그렇게 빠져들었다고 생각하나.

 “미국에서 자수성가한 젊은 사업가인 데다 패션업계에 종사하니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돈도 잘 썼고. 또 타고난 연애 감각이 있기도 하고.”

-그런데 왜 헤어졌나.

 “남녀 관계가 어느 정도 진전되면 결혼을 하든지 헤어지든지 선택해야 하는 때가 온다. 그런데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거다. 한때 결혼하려고 마음먹기도 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 결심이 안 서더라. 두 사람 다 이혼 경험이 있어 결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어머니도 연예인과의 결혼을 반대했고, 그렇게 헤어졌다. 나는 뒤늦게 H를 잡기 위해 청담동에 갔다. 거기서 한동안 머무르려고 하루에를 차린 거다. 그런데 결국 다른 사람이랑 결혼했지만.”

-하루에가 그렇게 성공할 거라고 예상했나.

 “처음에는 커피를 로스팅해서 하얏트·힐튼 호텔에 공급했다. 커피 볶는 곳이 메인 공간이었고, 카페는 건물 뒤편 작은 공간이었다. 그런데 카페가 잘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카페를 메인 공간으로 옮긴 후 벽을 헐고 통유리로 여닫을 수 있는 창을 만들었다. 신선한 커피를 만들기 위해 하루에 원두 1㎏씩을 로스팅했는데 이걸 다 판매하는 게 목표였다. 카페 이름 ‘하루에’는 거기서 유래했다.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미국으로 유학 갔던 강남 키즈가 돌아오기 시작한 때였는데, 미국 스타일이 그리웠던 유학파에게 잘 맞았던 것 같다. 샤넬 머리띠에 질샌더 원피스를 입고, 페라가모 신발을 신고, 루이뷔통이나 에르메스 가방을 멘 청담동 스타일이 막 유행했다. 문제는 이렇게 차려입고 갈 데가 마땅치 않았다는 거다. 때마침 차려입고 갈 만한 데가 생긴 거지. 다들 하루에로 왔다. 하루에는 공간이 넓은 데다 일단 들어오면 사람 찾는다는 핑계로 누구나 맘껏 패션쇼를 할 수 있었다. 내가 잘해서라기보다 시기가 잘 맞아떨어졌다.”

-하루에는 금세 명소가 됐다. 연예인들이 스스럼없이 찾아오는 곳으로도 유명세를 탔다.

 “기억나는 손님이 이정재·정우성·김남주·송혜교 등이다. 특히 이정재·정우성씨는 하루에 세 번을 찾아온 적도 있다. 두 사람이 친구들을 데려와서 팔아준 커피가 1만 잔은 될 것 같다. 임세령씨(대상 임창욱 명예회장의 딸)도 단골이었다.”

-하루에는 와플이 유명했다. 아이스크림과 과일을 토핑한 하루에 와플은 서울 곳곳에 퍼졌다.

 “와플은 벨기에가 유명하지만, 하루에 와플은 독일 뒤셀도르프 스타일이다. 유학 시절 1평짜리 작은 곳에서 한 할머니가 하던 와플 가게가 있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자주 가서 사 먹으면서 만드는 걸 쳐다봤다. 그 맛이 그리워 재현한 게 하루에 와플이다. 뒤셀도르프 스타일은 와플을 바삭바삭하게 하고 슈거 파우더를 뿌리는 게 특징이다. 휘핑 크림이나 과일 넣는 건 나중에 동생이 낸 아이디어다.”

-카페 하루에 맞은편에 낸 2호점 그랜드 하루에는 화려한 인테리어 때문인지 지금도 블로그에 많이 등장한다.

 “1784년 파리에서 문을 연 ‘르 그랑 베푸르’를 모델 삼아 신고전주의 스타일로 직접 인테리어를 했다. 화가들을 고용해 벽화를 직접 그렸고 수도꼭지 등 내부 집기는 모두 프랑스에서 공수했다. 인테리어 비용만 20억원, 기간은 1년 반 걸렸다. 그랜드 하루에는 정말 오래갈 줄 알았다.”

-청담동뿐 아니라 한남동·분당·삼청동 등에 분점을 낼 정도로 잘됐는데 2012년 문을 닫았다.

 “2011년부터 경영 상황이 안 좋아졌다. 설상가상으로 간암 판정도 받았다. 한 달에 1000만원씩 적자가 났다. 사실 돈보다 간이식 수술을 받으며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다. 하루에는 사실 돈 벌기 위해 만든 곳은 아니지 않은가. 언젠가 젊은 커플이 와서는 ‘여기서 소개팅한 후 결혼했다. 오늘이 결혼기념일이라서 왔다’고 말하더라. 그때 이 공간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가로수길·이태원 등이 뜨면서 사람들이 점차 발길을 끊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제 하루에의 수명도 다한 게 아닌가 싶더라.”

-많이 아쉬웠을 텐데.

 “괜찮다. H를 잡으려고 왔다가 만든 공간인데 다른 여자 만나 결혼했으니…. 하루에를 정리하는 게 자연스러운 과정일 수 있다.”

-지인들이 다 미혼으로 알고 있던데.

 “암 수술 후 태국에서 2년간 요양 생활을 하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29살 먹은 태국 여자다. 아내로부터 간을 이식 받았다. 의지할 곳 없는 사람끼리 잘 만났다. 요즘 네 살배기 딸 보는 재미로 산다. 아내가 데려온 애인데 너무 귀엽다. 딸바보가 된 것 같다. 오늘도 내가 외출한다니까 딸이 셔츠 단추를 잠가주더라. 이런 행복을 지금까지 몰랐다. 치료 때문에 잠깐 한국에 들어왔는데 곧 하와이로 이주할 생각이다.”

-인생에서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뉴욕에서 사업을 접고 청담동으로 온 것.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거기 그대로 있었으면 돈도 훨씬 더 많이 벌었을 거다. 아내랑 아이가 생기니 돈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럼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뭐라고 생각하나.

 “없다. 앞으로 할 일들이 잘한 일로 남았으면 좋겠다. 지금까지는 나만을 위해 살았다. 특별히 남에게 피해를 끼친 적은 없지만 돈을 많이 벌고도 자선활동 한 번 한 일이 없다. 하지만 이제 가족이 생겼다. 내가 길게 살아야 20년 정도일 거다. 나 없어도 가족이 잘살 수 있게 만들어주고 싶다. 사업 감각이 아직 남아 있으니 그것만큼은 해놓고 싶다. 그게 남은 생의 목표고, 세상을 떠날 때 가장 보람 있는 일로 기억될 거다.”

-처음 봤을 때는 ‘개츠비’ 같은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장발장’의 마지막 모습이 얼핏 보인다.

 “그런가. 사실 카페 하루에는 74년도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보고 만들었다. 거기서 로버트 레드퍼드(개츠비)가 자신에게 사업 노하우를 알려주는 구루(스승)를 몰래 만나는 카페가 있다. 그 장면이 좋아 수백 번을 되돌려보면서 만든 카페가 하루에다. 이번에 나온 영화는 좀 허접스럽더라. 74년판이 진짜다. 꼭 찾아서 봐라.”

주수암
1952년 61세
서울 출생(가회동)
1978년 미국 뉴욕에서 신발가게
리츠 슈즈(Ritz shoes) 창업
1996년 청담동에 카페 하루에 개업
1998년 레스토랑 그랜드 하루에 개업
2012년 하루에 폐점
학력
재동초 - 중앙중 - 중앙고 -독일 뮌헨대 - 한국외대 러시아어과
가족
부인: 미키(29세·태국), 아들: 6세, 딸: 4세

글=유성운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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