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예산 명분과실리|추예 "만장일치"통과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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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회는 금년도 제1회 추경예산을 여·야 합의로 정부원안에서 5억3천2백94만원을 삭감, 총규모 2천5백41억3천2백만원으로 확정했다. 7대 국회에 들어와서 「28파동」 「29파동」등 충돌로 일관해오던 공화·신민 양당이 이번 추경예산의 심의 과정에서는 원만한 타협을 이루어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추경 예산안을 통과시킨 것은 의회운영의 정상을 되찾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있다.
그러나 신민당이 처음부터 대중부담의 경감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공화당과의 협상 끝에 5억3천만원을 전액내국세에서 삭감한 것은 이에 상응한 세법 개정이 뒤따르지 않아 실제로는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가 문제이다.
왜냐하면 정부가 새로운 세원포착 혹은 행정력 강화등으로 증세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이것은 국세청이 최근 올해 내국세 징수목표를 추경예산의 내국세액 l천4백35억원보다 65억원이나 많은 1천5백억원으로 책정했다는 사실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협상예산을 야당측 입장에서 볼 때 형식상으로는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실질적으로 국민에게 안겨준 것이 무엇인지는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 예산이 또 세출면에서 관광공사 출자 5천만원, 재정자금 중 산업융자 1억원, 조선자금 5천만원, 차관이자 2억원등이 불요불급하다고 삭감되긴 했으나 내국세의 삭감으로 인해 의무교육 교부금 6천9백20만원, 지방 재정 교부금 1억3천80만원등 2억원의 교부금이 줄게 된 것은 엉뚱하게 야기된 부작용이다.
이 교부금 자동삭감이 여·야 협상과정에서 제일 문제된 것은 사실이었으나 내국세에서만 깎겠다는 신민당의 고집으로 부득이했으며 다만 의무교육 교부금만이 예비비에서 충당하기로 양해됨으로써 정부의 의무교육 사업은 지장을 면하게 됐다.
신민당은 이번 추경예산안 심의를 통해 예비군조직과 무장을 반대하는 당방침에 따라 예비군경비 7억5천만원을 전액 삭감할 것과 갑종근로소득세 면세점을 현 8천원에서 1만원으로 인상하고 이에 따른 내국세 32억원을 삭감한다는 2대 목표를 설정하고 예산삭감공세를 폈었다.
그러나 예비군법 페기 법안과 면세점 인상을 위한 소득세법 개정이 국방위·재경위에서 폐기되고 본 회의에서 부결됨에 따라 야당의 예산삭감공세는 벽에 부딪쳤으며 이런 과정에서 당초 재경위에서 벌인 72억원 삭감투쟁이 34억원으로 후퇴하고 다시 예결위에서 공화당이 제시한 5억3천만원 삭감안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같이 신민당이 삭감액을 대폭 줄이면서도 내국세삭감을 끝내 고집, 관철한 것은 대중부담을 줄인다는 명분 때문이라고 보는 측이 있다.
비록 신민당이 이번 추경예산의 삭감투쟁에서 예비군관계예산 삭감이나 갑근세면세점 인상등 당초의 목표를 성취하지는 못했지만 타협과 절충으로 매듭지은 것은 앞으로의 정국기상에 시사하는 바 적지 않을 것 같다. 이 같은 신민당 의원내 전략변화는 전당대회이후의 비교적 안정된 체제에서 극한투쟁을 피한다는 자세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되며 다른 한편 공화당에서도 김종비 전당의장 사퇴 이후의 당내사정을 감안, 야당의 의사를 가급적 존중해서 변칙상황을 회피한다는 실리의견을 택한 것 같다.
모처럼 나타난 여·야 협조 「무드」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 변형돼 나갈지 주목된다.<조남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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