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릴 뻔한 문화자산 관사촌 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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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인 1930∼40년대 지은 옛 충남도청 관사촌 전경. 짙은 파란색 지붕이 도지사 등 고위 공직자들의 관사였다. [프리랜서 김성태]

28일 오전 대전시 중구 대흥동 충남도청 옛 관사촌. 도지사 관사 정문을 중심으로 왼쪽엔 경찰국장(현 충남경찰청장)·도 행정부지사 관사가, 오른쪽으론 정무부지사 관사가, 아래쪽에는 자치행정국장·기획관리실장 등 관사 10개 동이 있다.

충남 도지사 관사 등은 1930년대에서 40년대에 걸쳐 지어진 것으로 관료들의 관사를 한곳에 모은 전국 유일의 관사촌이다. 도지사 관사 정원의 50년 이상 된 향나무 등 각 관사에는 각종 정원수 수백 그루가 심어져 있어 대전 도심에서 보기 드문 숲 속의 주택이다. 이들 관사의 외부는 신축 당시 유행하던 서구의 ‘아르테코’ 양식을 본떠 붉은 벽돌로 지었으며 내부는 일본식 목조 주택으로 꾸며 문화재적 가치를 보존하고 있다.

위 작은 사진은 1932년 당시 유행하던 서구의 ‘아르데코’ 양식을 본떠 지은 충남도지사 관사. [프리랜서 김성태]

충청지역 향토사학자들은 충남도청 관사촌은 조선시대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서열이 높았던 것처럼 권력의 위계 순위에 따라 관사를 배치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들 관사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안희정 지사 등 고위 공직자들이 거주했다. 그러나 충남도청이 지난해 말 내포신도시(홍성·예산)로 이전하면서 비어 있는 공간이 됐다. 충남도는 이들 관사를 활용하는 방안을 찾았으나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해 민간에 매각하는 절차를 밟기로 했다.

하지만 대전 시내 문화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최승희 대전 문화연대 간사는 “관사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곳은 전국에서 하나일 정도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곳”이라며 “민간에 넘어가면 대부분의 관사가 헐릴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문화단체의 반발이 거세자 이번엔 대전시가 나섰다. 대전시가 관사촌을 사들여 문화예술공간으로 조성, 시민에게 돌려 주겠다는 것이다. 대전시는 충남도의 옛 관사촌을 매입해 문화예술 공간으로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28일 밝혔다. 관사촌의 규모는 부지 1만345㎡, 건축면적 1650㎡로 도지사 관사를 비롯해 경찰청장, 부지사, 보건사회국장 관사 등 모두 10개 동으로 구성돼 있다. 관사촌의 재산가치는 현재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76억원가량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대전시는 이르면 이번 주 안으로 관계부처와 협의해 관사촌 매입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강철식 문화체육국장은 “충남도 옛 관사촌은 문화적인 가치 등이 커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며 “관사촌을 시에서 사들여 전시공간이나 게스트하우스,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 공간 등으로 사용하는 방안에 대해 여론을 수렴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서형식 기자

◆충남도 관사촌=1932년 지어진 도지사 관사는 2002년 대전시 지정문화재로 지정됐고, 행정부지사·정무부지사 관사 등 4개 동은 문화재청이 국가 등록문화재 101호로 관리하고 있다. 도지사 관사는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임시 거처로 사용됐고, 유엔군 참전을 요청한 ‘주한미군 지위에 관한 불평등 조약(대전협정)’이 체결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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