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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앞에 서다 나는 얼마나 왜소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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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열대우림을 두 시간 동안 헤치고 들어가 만난 산도발 호수. 오롯이 야생동물의 땅인 이곳에는 전기뱀장어·피라냐·독가오리가 헤엄치고 광활한 호수 주변으로 빽빽이 들어선 나무에는 원숭이·박쥐·앵무새 등 다양한 동물이 살고 있다. 인간이 철저하게 이방인이 되는 이곳, 아마존이다.

아마존의 아침은 자연과 함께 시작한다. 고요한 새벽 동이 터오면 온갖 새들이 가장 먼저 일어난다. 지저귀는 새소리에 눈을 뜨고 창문을 비집고 들어온 햇살을 따라 몸을 일으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잠에서 깨는 것이 이리도 상큼하고 상쾌하며 감사할 수 있을까. 사람의 생체리듬이 완벽하게 자연에 맞춰 설계돼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는 데는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마존 하면 보통은 브라질을 떠올리지만 페루에도 아마존 열대우림이 있다. 남한의 13배 정도 되는 페루 영토의 60%를 아마존 열대우림이 차지한다. 아마존 강의 발원지도 페루에 있다. 최근에 밝혀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마존 강의 발원지는 안데스 산맥에 얹힌 페루 남부 도시 아레키파(Arequipa)의 네바도 미스미산(Nevado Mismi·5825m)이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페루 아마존 열대우림 지역에는 다양한 동식물이 살고 있다. 매년 새로운 종(種)이 수시로 발견될 만큼 아직 연구도 덜 돼 있다. 지금도 인터넷 검색창에 ‘페루’를 치면 흡혈박쥐, 피부가 투명해 뼈와 내장이 훤히 보이는 개구리, 나무를 먹고사는 물고기 등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생물이 쏟아져 나온다.

이 신비로운 세계를 여행하기 전 한 가지 참고할 사항이 있다. 아마존은 인간에게 보여주기 위한 동물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희귀하고 다양한 동물을 눈앞에서 맞닥뜨리기란 쉽지 않다. 겸손한 방문객의 마음으로 그들의 삶을 잠깐 지켜보다 온다고 생각하면 조바심도 덜하다.

시내를 이동할 때는 트럭을 개조해 만든 트럭을 이용했다.

페루 아마존 관광은 북쪽의 이키토스(Iquitos)와 남쪽의 푸에르토 말도나도(Puerto Maldonado)가 유명하다. 아마존 본류와 직접 닿아 있는 이키토스가 널리 알려져 있는 장소이지만, 아마존 상류에 해당하는 푸에르토 말도나도는 대도시와 가까워 최근 각광받고 있다. 수도 리마(Lima)에서는 비행기로 1시간30분, 마추픽추(Machu Picchu)가 있는 쿠스코(Cusco)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 아마존에서 무엇을 보고 왔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날랜 재규어, 거대한 아나콘다 등을 기대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원초적인 정글에 머물면서 인간 역시 위대한 자연에 속한 작은 생명체라는 진리를 조금이나마 깨닫고 돌아왔다. 기억에 남는 건 아마존의 밤하늘이다. 맨눈으로 올려다본 성단은 자연과 우주의 경이로움을 가슴 깊이 느끼게 했다.

까만 얼굴에 노란 점이 찍힌 `사이드넥 터틀`이 따사로운 햇볕에 몸을 말리고 있다

페루 아마존에서 체험한 원시림 투어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도시 쿠스코를 지나자 비행기 창 밖의 풍경이 확 달라졌다. 빽빽한 나무 사이로 구불구불 흘러가는 강줄기가 보였다. 진한 황토색의 강, 아마존이다. 페루 국토의 60%가 아마존 정글지역이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광활한 초록의 땅이 끝을 모르고 펼쳐져 있었다.

전기·전화·인터넷과는 잠시 이별

수도 리마에서 비행기를 타고 페루 동남쪽에 있는 마드레 데 디오스(Madre de Dios)주의 주도 푸에르토 말도나도에 내렸다. 마드레 데 디오스 주는 브라질과 볼리비아 접하고 있는데 전체 면적의 4분의 1이 아마존 열대밀림이다. 이 지역을 마드레 데 디오스 강이 가로지르며 흐른다.

`잉카테라 리조트`의 로지(산장)는 아마존 원주민의 전통가옥을 따라 만들었다.

‘신의 어머니’라는 뜻을 지닌 마드레 데 디오스 강은 아마존 상류에 해당한다. 평균수심은 10m 정도, 강폭은 250m에 달한다. 적갈색의 강물은 시속 18㎞의 속도로 빠르게 흘러 볼리비아와 브라질을 거쳐 아마존 본류와 합류한다.

푸에르토 말도나도에 있는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고 45분이 걸려 탐보파타(Tambopata)에 도착했다. 페루 정부는 아마존 열대우림을 국립공원, 국립자연보호지구, 버퍼 존으로 지정해 관리한다. 가장 제재가 강한 지역이 국립공원이다. 이 지역은 연구 목적으로만 출입이 가능하고 페루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 국립자연보호지구는 에코투어만 가능하다. 이 두 곳에서는 사냥과 채집이 금지돼 있다. 농작물을 재배하고 채집할 수 있는 버퍼 존이 가장 규제가 덜하다.

탐보파타 국립자연보호지구(Tambopata National Reserve)의 면적은 27만5000ha에 달한다. 1990년에 지정됐고, 입장료는 1인 30솔(약 1만2000원)이다. 탐보파타 자연보호지구에는 1만 종의 식물, 포유류 200종, 새 600종, 파충류 100종 등 다양한 동식물이 살고 있다.

동굴이 아닌 나무 기둥에 붙어 잠을 자고 있는 긴코 박쥐.

페루 관광청이 추천한 ‘잉카테라 리조트(inkaterra.com)’를 베이스캠프로 삼아 아마존 투어에 나섰다. 페루의 환경보호단체 잉카테라어소시에이션과 협업하는 곳이다. 리조트 안에서는 전기 사용도 제한됐다. 오후 6~11시, 오전 4시~오후 3시30분에만 전기가 들어왔고, 전화나 인터넷도 리셉션 사무소인 에코하우스에서만 가능했다. 1인 541.5달러(2박3일 기준)부터다.

정글 농장 주변엔 난생 처음 보는 동물들

정글에 있는 농장을 투어하면 아마존 원주민의 삶을 엿볼 수 있다. 투어 중에 원주민을 만날 때도 있다. 얼굴에 분장을 하고 나뭇잎으로 대충 중요 부위를 가린 원시인을 상상했다면 틀렸다. 그들은 원주민이지 원시 부족민이 아니다. 이미 문명화된 사람이란 뜻이다. 그들은 우리와 똑같이 옷을 입고 정글에서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치면서 살아간다.

별 모양으로 생긴 `스타후르츠`.

정글 농장 투어 프로그램인 ‘하시엔다 콘셉시옹(Hacienda Concepcion)’에 참가했다. ‘하시엔다’는 대농장을 뜻하는 스페인어다. 식물정원과 호수를 돌아보는 프로그램인데, 호수 주변에서는 머리에 삐쭉하게 털이 난 새 호아친(Hoatzin)과 노란색 털이 어여쁜 트로피컬 킹버드(Tropical Kingbird), 사이드넥 터틀(Sideneck Turtle)과 더스키 티티 원숭이(Dusky Titi Monkey) 등 다양한 동물을 볼 수 있었다. 지구에서 가장 큰 설치류라는 카피바라(Capybara)도 있다. 발에 물갈퀴가 있어 수영도 잘해 워터피그라고도 불리는데, 큰놈은 몸무게가 60㎏까지 나간다. 주로 강 주변에서 먹이를 먹고 생활하다가 재규어나 퓨마 등의 천적이 나타나면 곧바로 강으로 뛰어든다.

칠면조처럼 큰 `호아친` 이 나무에서 날아오르면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온 숲에 울려퍼진다.

식물정원에는 코카(Coca)나무와 생강 등 약용 식물을 재배한다. 고산병 치료제로 쓰이는 코카나무는 마약 코카인의 원료기도 하다. 잎을 뜨거운 물에 우려 차로 마시면 고산병을 가시게 해준다. 드래건스 블러드(Dragon’s Blood) 나무 진액은 페루 사람이라면 다 아는 상처 치료제다. 나무 줄기에서 진액을 채취해 상처 부위에 바르고 문지르면 하얗게 변하는데 마치 연고 같다.

길가의 나무 ‘노터치’…손 대면 독 내뿜어

산도발 호수(Lake Sandoval)는 마드레 데 디오스 강에 있는 우각호(牛角湖)다. 구불구불하게 흐르던 강의 한쪽이 막히고 물길이 바뀌면서 형성된 지형이다. 둘레가 7㎞에 달한다. 산도발 호수에 가려면 편도 3.2㎞를 걸어야 한다. 우기(10~4월) 때 방문하면 40㎝까지 푹푹 빠지는 진흙탕을 걷는다. 길가에 있는 나무를 절대 만지면 안 된다. 나무 몸통에 가시가 있거나 스스로 독을 내뿜는 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진흙탕을 헤치고 걷느라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진흙이 튀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장화가 진흙에 빠져 여러 번 넘어질 뻔했다. 슬슬 볼멘소리가 나올 때 즈음 선착장에 도착했다.

산도발 호수로 가기 위한 길목인 선착장 주변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아마존의 이미지 그대로였다. 일명 ‘블랙워터’라고 불리는 밀림 속 웅덩이를 노 저어 갔다. 물속에 뿌리를 박고 자라는 다양한 나무가 하늘을 가려 어두컴컴했고 오묘한 기운이 엄습해 괜히 긴장이 됐다. 아나콘다가 등 뒤로 지나갈 것만 같았다. 가이드 아나벨은 “아나콘다는 물속에서 돌아다니다가 가끔 사냥을 하거나 햇볕이 좋은 날 볕을 쬐러 물 밖으로 나온다”고 설명했는데, 이날은 아쉽게도 볼 수 없었다.

블랙워터를 지나고 마주한 산도발 호수의 풍경은 또 달랐다. 호수 주변으로 커다란 아구아헤(Aguaje) 야자나무가 빽빽이 자라 있었다. 한 시간 정도 배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야생동물을 관찰했다. 호수에는 피라냐, 전기뱀장어와 독이 있는 가오리가 살고 있어 수영은 불가능하다. 먹자마자 그 자리에서 바로 잠들어 버린다는 레드 하울러 멍키(Red Howler Monkey)와 동굴이 아닌 야자나무 기둥에 붙어 지낸다는 긴코 박쥐(Long Nosed Bat) 등을 볼 수 있었다.

`캐노피 투어`는 공중 30m 높이에 만들어진 출렁다리를 건너며 아마존 숲을 구경하는 이색적인 경험이다

성단까지 보이는 아마존의 밤하늘

인공 불빛 하나 없는 강에 한 시간 동안 배를 띄워 야생동물을 관찰하는 야경 투어는 인기가 많다. 아마존 밀림에는 밤에 활동하는 동물이 많은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카이만(Caiman)이다. 악어과로 최대 2m까지만 자라는 미니 악어다. 동승한 가이드가 물가 쪽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물 밖으로 눈과 코만 내민 채 가만히 있는 카이만이 보였다. 왜가리도 나뭇가지에 앉아 밤을 지새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마존에는 신기한 나무와 식물이 많다. 뿌리의 일부가 지상으로 나와있는 `워킹트리` 는 햇빛을 따라 이동한다.

야경 투어의 백미는 밤하늘이다. 세상 모든 별을 다 이리로 끌고 온 듯했다. 마치 별을 가지고 불꽃놀이라도 벌인 것처럼 별들이 이리저리로 튀어 제멋대로 박혀 있었다. 달은 또 어찌나 오묘하게 빛나던지, 그 모습에 매혹돼 한참을 바라봤다. 별들의 운집인 성단까지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아마존의 밤하늘은 마치 꿈같았다.

또 기억에 남는 것은 캐노피 투어다. 캐노피(Canopy)는 아마존 식생을 나눌 때 25~35m에 해당하는 부분을 말한다. 잉카테라 리조트는 2004년 캐노피 레벨의 식생을 관찰할 목적으로 35m의 망루 2개와 나무와 나무를 연결하는 7개의 흔들다리를 설치했다. 공중 30m 위치에 매달려 있는 흔들다리 7개의 총 길이는 344m다.

캐노피 투어를 하면서 신기한 나무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워킹트리(Walking Tree)는 이름 그대로 걷는 나무다. 나무뿌리가 지상에서 약 2m 노출돼 있다. 새로운 뿌리가 나면 오래된 것이 자연스레 떨어져 나가는데 그것을 반복하면서 햇볕을 따라 이동한다. 스트랭글러(Stranglers)나무는 다른 나무를 숙주로 삼아 몸을 키운 뒤 원래 있던 나무를 죽여 버린다. 식물도 강한 놈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확고한 곳이 아마존이었다.

●여행정보=한국~페루 직항노선은 아직 없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나 애틀랜타를 경유해 리마로 들어간 다음 국내선을 타고 탐보파타 국립자연보호지구가 있는 푸에르토 말도나도까지 간다. 비행시간만 24시간 가까이 걸린다. 화폐는 누에보 솔(Nuevos Soles)을 쓴다. 1솔은 약 420원. 5~8월까지는 건기에 해당한다. 한낮 기온이 40도까지 올라 무척 뜨겁다. 자외선차단제와 햇볕을 가려주는 선글라스, 모자와 모기 퇴치용 스프레이는 필수 준비물이다. 통풍이 잘 되는 소매가 긴 옷을 챙기는 것도 좋다. 밀림에 들어가면 모기가 많고 벌레에 물리거나 풀에 쓸려 피부에 상처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페루관광청 한국대표홍보사무소 070-4323-2560.

글·사진=홍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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