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법인 5개 한 주소에 … 4곳은 팻말도 직원도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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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최대 번화가 완차이(灣仔)의 센트럴플라자 빌딩 30층에 위치한 ‘CJ차이나’ 사무실 입구. 22일 본지가 직접 찾아가 확인한 결과 CJ차이나를 제외하고 같은 주소로 돼 있는 4개의 홍콩법인은 실체가 없는 서류상 회사였다. [홍콩=김기환 기자]

22일 오후 홍콩 최대 번화가 완차이(灣仔). 빽빽하게 들어선 마천루 중 78층 높이의 센트럴플라자 빌딩에 들어서 30층으로 올라갔다. 3003호 사무실 입구에는 ‘CJ China Limited(CJ 중국유한공사)’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서류상 이 주소엔 ‘CJ글로벌 홀딩스’ ‘UVD엔터프라이즈 리미티드’ ‘CMI홀딩스 리미티드’ ‘CGI홀딩스’ 등 4개 법인이 더 등록돼 있다. 서류상 자산규모가 260억(CMI 홀딩스)~2400억원(CJ글로벌 홀딩스)에 달하는 법인들이다. 하지만 이곳엔 팻말조차 붙어 있지 않았다. CJ그룹의 홍콩법인 8개 중 5개 법인이 동일 주소지에 등록돼 있었으나 본지 취재 결과 무역업체인 ‘CJ차이나’를 제외한 4곳은 실체가 없는 ‘서류상 회사’인 것으로 확인됐다.

 150㎡(45평) 규모의 사무실 안에 들어섰을 때 18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었다. 모두 CJ차이나 소속이다. 법인 관계자는 “CJ차이나는 중국 영업을 하기 전 테스트마켓 삼아 홍콩에 물건을 파는 일을 한다”고 말했다. CJ차이나 대표는 한국 본사에서 파견한 부장급 직원이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채용한 직원이다. 이들 중 같은 주소로 등록돼 있는 4개 법인에 대해 아는 직원은 없었다. 법인의 한 관계자는 “그 회사들은 직원도 있고 정상적으로 운영 중인 법인 자회사로 알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 관계자는 “왜 이곳을 주소로 등록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팻말도 직원도 보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답하지 못했다.

 CJ그룹의 홍콩 현지법인들은 이재현 회장의 비자금 통로로 의심받고 있다. 검찰은 이미 CJ그룹이 이곳을 통해 70억원대의 자사주를 매입한 뒤 되팔아 차익을 얻은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을 매개로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VI)와 CJ 임직원들의 차명계좌를 거쳐 수백억원대의 자금이 국내외를 오간 정황도 포착했다.

 여기다 23일 CJ그룹이 2010년 홍콩 법인인 CJ글로벌 홀딩스를 계열사인 CJ제일제당에 전량 매도하는 과정에서 수백억원대의 이득을 취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검찰이 진위 파악에 나섰다. 당시 CJ글로벌 홀딩스는 자산이 230억원대였으나 매각 대금은 네 배가량인 917억원이었다. 세전 기준으로 680억원대의 이득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회장이 홍콩법인장과 CJ글로벌 홀딩스의 대표로 직접 발탁한 사람이 비자금 조성·관리의 ‘키맨(key man)’으로 꼽히는 신모(57) 전 부사장인 점도 흥미롭다. 신씨는 해외 비자금 담당 창구로 지목받고 있다. 그는 CJ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할 당시 재무담당 부사장으로 발탁됐다. 이 회장의 비자금을 관리한 이모 전 재무팀장이 재직 시 직속상관이었다.

검찰은 CJ그룹의 비자금 조성 및 탈세 과정에서 홍콩 현지법인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집중 수사 중이다. 이에 대해 CJ그룹 측은 “홀딩스컴퍼니(금융지주사) 특성상 투자나 계약의 주체로만 기능하면 되기 때문에 일반 법인처럼 직원이나 사무실을 둘 필요가 없다”고 해명했다. 그룹 측은 “CJ글로벌 홀딩스와 CMI홀딩스는 사료와 홈쇼핑 사업을 위한 금융지주사이고 CGI홀딩스와 UVD엔터프라이즈는 극장업 관련 금융지주사”라고 설명했다.

홍콩=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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