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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동참시키는 '윈-윈-윈' 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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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수경
한국P&G 사장

사회 고위층에게 따르는 높은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보편화돼 있는 미국에서 유명 인사의 거액 기부는 낯설지 않다. 미국 기부 문화의 창시자로 알려진 앤드루 카네기는 철강 사업에서 벌어들인 3억5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현재 가치로는 70억 달러(7조8500억원)에 달한다. 그는 2500개의 도서관을 짓는 등 미국 지역사회 발전에 일조했다. 지금도 이러한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 11억 인구가 사용하는 인기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을 창업한 마크 저커버그는 자기 재산의 50% 이상을 기부하기로 서약하면서 ‘세계 최연소 통 큰 기부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기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발휘하는 기업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함께 참여하면서, 더욱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로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기업 경영 패러다임이 소비자 중심으로 바뀌는 것과 같이 기업 기부 방법도 소비자 중심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기업들은 ‘어떻게 하면 성공한 만큼 사회에 환원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요즘은 ‘어떻게 하면 소비자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지역사회 발전을 함께 고민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기업들은 기부하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 모두에게 유익한 방법을 연구해왔다. 가장 실용적인 활동인 제품 구매를 통해서도 기부에 동참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개발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창출했다. 소비자의 감성을 깨워 참여를 유도했고, 소비자와 함께하는 기부활동을 통해 기업의 이익 창출까지 일구고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기금을 전달받는 수혜자만이 아니라 기업·소비자·수혜자에게 모두 이득이 되는 방식이다.

 소비자의 동참을 이끌어낸 기부 캠페인으로 유명한 브랜드 중 하나는 미국의 신발업체인 ‘탐스슈즈’다. 창업자 블레이크 마이코스키는 아르헨티나에서 맨발로 다니기 때문에 많은 질병에 노출돼 있는 아이들에게 신발이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지를 눈여겨보게 된다.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신발을 전달하고자 ‘내일을 위한 신발’(Shoes for Tomorrow)이라는 뜻을 가진 탐스슈즈(TOMS Shoes)를 만들었다. 사업 시작부터 신발 한 켤레가 팔릴 때마다 아이들에게 한 켤레를 기부하는 캠페인을 펼쳤다. 많은 소비자가 탐스슈즈의 편안함과 트렌디한 디자인에 끌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을 주고, 이 신발을 사는 소비자들의 마음속에는 ‘맨발의 아프리카 소년이 나와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면 아깝지 않은 가격’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지 않나 싶다.

 P&G의 일회용 기저귀 브랜드 팸퍼스가 펼친 ‘원 팩, 원 백신’ 캠페인도 좋은 예다. 팸퍼스는 유니세프와 함께 예방접종 기금 마련을 위해 소비자가 팸퍼스 하나를 구매할 때마다 파상풍 백신 하나를 지원했다. 젊은 주부들은 아이를 위해 일회용 기저귀를 구입하는 동시에 다른 아이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캠페인 취지에 공감했고, 2006년부터 1억 명의 산모와 아기를 파상풍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일회용 기저귀를 구입하는 소비자에게도, 파상풍 주사를 맞은 산모와 아이에게도, 매출 증대를 통해 이익을 얻은 팸퍼스에도 궁극적으로 혜택을 주는 ‘트리플 윈(윈-윈-윈)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미국 카드 회사인 아메리칸익스프레스(아멕스)의 사례는 ‘소비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기부’가 회사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기부보다 훨씬 더 성공적이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아멕스는 1983년 자유의 여신상 설립 100주년을 맞아 고객이 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1센트씩 기부해 보수공사 재원을 마련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해 아멕스 카드 사용량은 27% 증가했고, 총 170만 달러를 기부할 수 있었다. 이처럼 기업 이미지를 위해 단발성으로 거액을 기부하던 시대는 지났다. 경영이 소비자 중심이 되었듯, 기부도 소비자 중심이 되어야 한다. 기업과 소비자가 하나가 돼 소외된 이웃을 보듬을 수 있다면 더욱 큰 변화를 만드는 지속 가능한 기부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수 경 한국P&G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