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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로 걸려든 전직지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전육군준장이며 5·16혁명직후 경남지사를 역임했던 최갑중씨(43)는 쇠고랑을 찬채 9일상오 서울성북경찰서 취조형사앞에서 일본글로된 전술학 책을 읽고있었다.
5척단신인 어제의 장군인 최씨는 이날 김형섭씨(58)가 제기한 사기혐의의 고소장으로 구속이된몸-. 육사1기생이기도한 그는 지금에 이르게된 자기의 처지를 말하려 들지 않고 다만『괴로울뿐』이라고 조용히 한숨지었다.
최씨는 지난8일 서울성동구 논현동에 있는 국유임야 3만2천8백여평을 김씨에게 불하해주겠다고 교제비와 유흥비조로 70여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되었다.
일본「요꾜하마」전문학교 법과를 나온 최씨는 청운의 뜻을 품고 일본예비사관학교를 거쳐 일군소위에 임관되었으나 해방을 맞았다. 해방후 곧 군에 투신한 최씨의 군번은 10l12.6·25당시 육군중령, 8사단참모장직을 맡았었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영천전투를 비롯, 영주 강릉지구등 숱한·격전을 겪었던 역전의용사, 그는 53년12월 준장으로 승진했다.
초대 기갑학교 교장직을 맡을만큼 육군의 기갑부대전문가인 그는『기갑은 제일선 임』이라고 부끄러운 듯 머리를 숙였다.
6·25 당시 미국 기갑학교에 유학할때도 자기가 단장이었고 한국 육군기갑「베테랑」Y소장은 당시 단원으로 자기가 인솔한 처지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39사단장으로있을 때 5·16군사혁명을 맞았다.
군혁명동지들이 선배인 자기를 경남지사로 추대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그가 군복을 벗은 것은 63넌12월1일. 그 뒤 그는 부산시 위생조합회장을 맡아 사업에 손을 댔다.
그러나 기갑과 전술학의 전문가였지만 그는 사업에는 백지였다. 사업에 손을 대기만하면 모조리 실패. 고향이 충무인 그는『아부와 굴종을 모르기 때문에 위생조합회장직 1년만에 자리를 떠야했고 그후 동기들의 도움으로 개인회사 고문으로 전전했었으나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다』는 것.
3개월전 동기생 황모예비역소장의 주선으로 특수유류취급의「바달」회사고문으로 들어갔으나 평소에 빛이 너무 많았다.
빛더미로 부인과 자녀들과도 별거해야만했고 서울종로구혜화동 그의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떠돌이 신세가 됐다.
그는 52넌부터. 3년간 복무했던 육군작전국차장때가 가장 보람이 있었다면서 존경하는 선배로서는 이형근대장이라고 말하면서『자기에게는 관운이 없는가 보다』라고 과거를 되새겼다.
그의 이러한 화려한 경력때문인지 담당수사관이나 경찰서 간부들도 그에게는 조심성있는 대접.
그래서인지 그는 일체 범죄사실이나 70만원의 행방에는 말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감방에서 유명한「클라우비제츠」장군의 전술학을 공부하겠다』는 말 뿐.
그러나 경찰수사관자들은 앞으로 더욱 많은 피해자들이 몰려올 가능성이 있고 수사에 따라 여죄가 드러날것이라고 내다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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