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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피난처 계좌가 불법 아니지만 탈세·편법증여 여부 들여다볼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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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절묘한 시점에 파급력이 큰 이슈가 터졌다. 뉴스타파가 22일 공개한 조세피난처 재산은닉 한국인 명단 얘기다. 검찰이 CJ그룹의 역외탈세 및 비자금에 대한 고강도 수사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역외탈세 의혹자의 명단이 공개된 만큼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역외탈세 조사권한을 가지고 있는 국세청은 뉴스타파가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 등을 설립했다고 공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실확인에 나서기로 했다. 그간 국세청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에 한국인 명단 제공을 요청했지만, ‘정부 당국에는 주지 않는다’는 ICIJ의 방침에 따라 자료 입수에 어려움을 겪었다.

 국세청 고위 관계자는 “자료가 공개되면 당연히 들여다 볼 것”이라며 “국세청이 기존에 보유한 자료도 활용해 관련자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은 우선 이들의 재산 형성과정과 버진아일랜드 등 조세피난처로 빠져나간 돈의 출처, 세금 납부 여부, 해당 계좌의 성격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이후 탈세혐의가 드러나면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세금 등의 조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2011년부터 10억 원 이상 해외금융계좌를 신고받고 있다. 지난해까지 개인과 법인 650여곳이 18조6000억원을 신고했다. 그러나 버진아일랜드에 있는 계좌는 아직까지 신고된 게 없다. ICIJ가 공개한 명단이 사실이라면 탈세 목적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국세청은 조세피난처를 크게 세등급으로 구분하는데 버진아일랜드·라부안 등은 탈세 가능성이 가장 높은 A급으로 분류된다.

 걸림돌은 탈세혐의를 입증하는 것이다.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뒀거나 계좌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들이 모두 탈세를 저질렀다고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자금을 빼돌리고 세금을 탈루했거나 편법 증여 사실 등을 입증해야하는데, 이를 밝혀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국세청 관계자는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우거나 계좌를 가진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라며 “다만 거기에 ‘검은 돈’이 가거나 부당이득을 취했다면 문제이기 때문에 법리를 잘 따져봐야한다”고 설명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세금을 피하기 위한 역외탈세 수법은 갈수록 치밀해지고 있다. 해외펀드 투자나 물품 수입을 가장해 기업자금을 유출하거나, 조세피난처의 계좌를 활용해 여러번 돈세탁을 한뒤 비자금을 은닉하곤 한다. [그래픽 참조]

 백원선 성균관대 경영학과 교수는 “ 최근 경제민주화 분위기와 세수확보 차원에서 전 세계적으로 역외탈세를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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