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의민주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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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O일, 정부는 현안 중이던「농협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한다. 농민의 협동성을 제고시킴으로써 농민의 지위를 향상시기고 농업생산성을 높여 농가소득을 올리려는 농협의 취지와는 달리, 그동안의 농협은 일종의 관료적·행정조직적인 것으로 전락하여 농민과 농협사이에는 전혀 호흡이 맞지 않았던 것이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더우기 5·16후에는 농협임원이 임명제로 바뀌어, 농협은 농민의 의사를 반영하기보다도 오히려 정부농업정책의 충실한 집행기관으로 전락했던 것이다.
농민에게 불만이 있건 없건, 정부의 시책에 순응하기만 하는 농협이 진실로 농민의 협조를 받아 협동농업의 이상을 추구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그동안 농협의 민주화·자율화를 요청하는 소리가 농협 내외에서 크게 일고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할 것이다.
이미 농협제도심의위가 그 개편방안을 건의한지도 벌써 몇 해나 되고있으며, 경제과학심의회에서도 농협개편안을 건의한지 오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정부는 그러한 건의의 근본취지에는 별로 성실성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이번의 개편안을 보아도 그것은 오히려 진실로 농민을 위한 농협의 개편보다는 농정수행기관으로서의 개편만이 정부의 주 관심인 듯한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리·동조합을 경제권중심으로 통합한다는 것은 말로는 그럴듯한 것이지만, 그것이 무슨 실질적인 변동을 가져온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나라 농촌의 구조나 인습으로 보아, 단위부락의 경제적 활동능력은 미약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수개리·동이 하나의 경제권을 형성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비현실적인 견해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도시 주변의 경우가 아니라면 경제권 중심으로 리·동 조합을 통합한다고 자립조합이 형성될 수는 없을 것이다. 리·동조합의 포괄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협동성은 오히려 약화된다는 점을 간과하지말기 바란다.
둘째, 전체조합의 1할도 못되는 자립조합 및 준자립조합의 임원만을 선거제에 의해 선출되도록 하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다. 오히려 자립될 수 없는 조합이야말로 창의와 자율적인 노력으로 자립하도록 임원을 농민이 직접 선출하여야 할 것이다. 정부가 포육을 시켜 자립토록 한후에 민주화·자율화를 한다는 것은 농민의 의존성만 높여줄 뿐, 협동성의 제고에 의한 지위향상이란 협동조합의 근본취지에 어긋난다. 따라서 모든 조합의 민주화·자율화를 기하도록 하는 젓이 이치에 맞는다.
세째 정당인이 정당을 탈퇴함과 동시에 농협 임직원이 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은 농협의 사물화를 촉진시킬 염려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의 농협이 농민의 이익과 상관없는 사람들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있는 터에 더구나 언제나 정당과 농협사이를 왕래할 수 있도록 제도를 고친다면, 농협이 정치도구화 될 것도 자명한 것이다.
농협은 개편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 개편은 근본적으로 민주화·자율화하는 각도에서 행해져야 하는 것이지, 결코 정당인의 농협출입을 수월하게 하는 따위의 개편이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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