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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만큼 새로워졌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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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이달 14일 도심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RAV4 출시에 맞춰 방한한 일본 도요타의 카즈히코 마츠모토 부수석 엔지니어를 서울 서초구 도요타 전시장에서 만났다. 그는 “신형 RAV4의 핵심은 디자인과 핸들링”이라고 밝혔다. 특히 “디자인을 세 차례 수정하느라 출시를 1년 반이나 늦췄다”고 귀띔했다. 도요타가 기존 RAV4 오너 2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디자인이 불만 1순위로 꼽혔기 때문이다.

 이전 RAV4 디자인의 어떤 부분이 불만으로 제기됐는지 물었다. 마츠모토 부수석은 “존재감이 부족하다는 평을 접했다”고 말했다. 특히 멀리서 봤을 때 도요타인지, 그리고 RAV4인지 단박에 알아채기 어렵다고들 했다. 아울러 옆으로 여닫는 방식의 테일 게이트도 불편하다는 의견이 많았고 꽁무니에 단 스페어타이어 역시 ‘시대착오적’이란 쓴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변화를 위해 디자인 결정 과정부터 뜯어 고쳤다”고 말했다. 디자인 최종후보 선정엔 임원 40여 명이 참여한다. 그런데 과거엔 5점 만점에 평균 4점을 받지 못한 후보는 가차 없이 탈락시켰다. 이 때문에 개성 톡톡 튀는 디자인이 사장되곤 했다. 이 제도를 폐지하면서 훨씬 다양한 의견을 반영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스티어링 휠의 각도를 바로 세워 운전 자세 다듬는 등 기본에도 한층 더 충실했다.

 파격적으로 바뀐 신형 RAV4는 이처럼 뼈아픈 ‘자기반성’이 녹아든 결과다. 도요타는 현재 RAV4뿐 아니라 전 차종의 전신 성형에 나섰다.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인터뷰한 렉서스 인터내셔널의 후쿠이치 도쿠오 전무가 진두지휘 중이다. 그는 “100명이 그럭저럭 좋아할 디자인보다 한 명의 마니아라도 열광할 수 있는 디자인을 추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도요타가 극적인 변신을 꿈꾸는 덴 이유가 있다. 지난 몇 년 간 리콜과 엔고 등 대형 위기를 연거푸 겪으며 잃은 경쟁력과 인기를 만회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위기에서 벗어나거나 정체성을 새로 다질 때 디자인만큼 효과적인 수단도 없다. 변화가 바로 눈에 띄기 때문이다. 때론 충격 요법도 서슴지 않는다. 렉서스 신형 IS의 으스스한 앞모습이 좋은 예다.

 자동차 업계에선 이 같은 파격 변신의 성공 사례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BMW 수석 디자이너 크리스 뱅글이 2001년 선보인 BMW 7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오랜 팬들로부터 “용서할 수 없다”는 감정적 반응이 줄을 이었다. 자연스레 7시리즈는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당시 BMW의 고민은 서서히 식어가는 인기. 그런데 찬반양론의 불씨 당긴 7시리즈로 상황을 반전시켰다.

재규어의 신형 XJ 역시 극적인 성공 사례다. 전통은 재규어의 최대 강점이자 약점이었다. 고풍스럽고 우아한 디자인은 수많은 재규어 팬을 낳았지만, 새로운 수요층을 쉬 껴안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X와 S-타입, XJ까지 크기만 다를 뿐 네 개의 눈망울과 이랑 진 보닛이 서로 판박이였다. 그럼에도 재규어는 골수팬을 의식해 획기적 변화를 꺼렸다. 애스턴마틴 출신의 재규어 수석 디자이너 이안 칼럼은 모든 걸 바꿨다. 보닛에서 도약하는 재규어 엠블럼도, 섬세한 주름도 과감히 지워 버렸다. 다듬는 수준의 진화로는 변신을 엄두 낼 수 없어서였다. 그 결과 신형 XJ가 태어났다. 이전 세대와 연결고리가 없지만 누가 봐도 재규어다운 디자인으로 거듭났다. 이안 칼럼의 극약 처방은 해피 엔딩으로 귀결됐다.

 현대 YF 쏘나타도 비슷한 경우다. 국내에선 디자인을 놓고 찬반논란이 일었다. 반면 미국에선 “신선하다”는 평과 함께 주목받았다. YF 쏘나타로 도약에 성공한 이후 현대차 디자인은 본격적으로 자동차 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해 인터뷰한 현대차의 오석근 디자인 센터장의 평가는 냉정했다. “성공은커녕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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