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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앞두고 여의도는 지금 협동조합 쟁탈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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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내년 6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협동조합을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면서 설립 요건이 완화되자 전국엔 조합 설립 열풍이 불고 있는 상태다. 기본법안이 통과되기 전엔 조합을 설립하려면 출자금이 3억원 이상, 설립 동의자가 200명 이상이어야 했다. 그러나 현재는 출자금 제한이 없어졌고, 설립 동의자도 5명으로 줄었다. 규제의 문턱이 사라지자 5개월 만에 1000개에 가까운 조합이 결성됐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1087개 조합이 설립신고를 했고, 이 중 943개가 인가됐다.

 과거엔 농협·수협·축협 등의 거대 협동조합이 조합의 대명사였으나 이젠 새로운 형태의 조합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부산에선 106개의 골목가게가 대형마트에 대항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조합으로 뭉쳤고 동네 빵집, 시장 상인, 퀵서비스 기사도 조합을 결성했다.

 조합은 더욱 늘어날 기세다. 민주당 소속 박원순 서울시장은 가장 적극적으로 조합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박 시장은 조합을 ‘착한 조직’이라고 명명한 뒤 2022년까지 8000개의 조합이 나오도록 하겠다는 내용의 ‘협동조합 활성화 기본계획’을 최근 내놨다. 조합 설립 상담과 교육 컨설팅을 위해서만 올해 86억원의 예산을 책정하기도 했다.

 민주당에서 조합에 관심을 가진 이는 박 시장만이 아니다. 문재인 의원이 대선 패배 이후 칩거에서 벗어나 처음 연 토론회 주제도 협동조합이었다. 그는 대선 당시 이미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사회적 경제’를 육성시켜 일자리와 성장동력을 만들겠다고 공약했었다. 김한길 대표는 대표 경선 출마 선언문에 “협동조합을 통해 당이 지역공동체에 뿌리내리도록 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민주당은 협동조합이 잠재적 우군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 조합은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성격이긴 하지만 공동 가치로 묶인 결사체의 성격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김성주 의원은 “조합은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 공공성과 연대의 가치를 내포하고 있어 진보정치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새누리당에서도 당과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지지세력화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남경필 의원은 지난달 전·현직 의원 61명을 모아 ‘대한민국 국가모델 연구모임’을 열었다. 이 모임의 주요 연구 주제가 협동조합이다. 김재원 전략기획본부장도 ‘협동조합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정책토론회를 주최했고, 이이재·유승우 의원도 지난달 잇따라 협동조합에 관한 세미나를 열었다.

 이이재 의원은 “조합은 두레·품앗이 등 우리의 전통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어 오히려 보수가 주도해야 할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며 “새마을운동이 협동조합 운동으로 계승돼야 한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이 정치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기본법상 협동조합의 정치활동은 불법이다. 그러나 농·수·축협 등 기존의 조합이 단위 조합장의 영향력을 이용해 불법으로 사람과 돈을 동원하거나, 조합장이 정치인으로 변신한 경우가 작지 않았음을 감안할 때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성격이 변질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얘기다.

 김기태 협동조합연구소장은 “조합은 경제적 활동에 있어서의 상대적 약자들이 모여 조직력을 발휘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정치인들로선 협동조합을 만드는 데 참여하거나 활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라며 “협동조합이 특정 정당과 연계되는 순간, 이윤추구라는 본연의 경제적인 기능이 퇴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인식·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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