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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두고 가시려면 비싼 걸…" 저가 항공사, 유머로 떴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① 네덜란드 한스브링커 호텔은 이불을 싸매고 떨고 있는 고객의 모습을 포스터에 등장시켜 다른 요소를 다 빼고 저가 가격 본질에만 충실하다는 면을 유머러스하게 전달했다. ② 남아프리카 저가항공 ‘쿨룰루 항공’은 항공기마다 다른 디자인과 위트 있는 기내 방송으로 승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사진은 비행기의 각 부분 이름을 전면에 표시한 쿨룰루 항공의 ‘플라잉 101’기. ③ 벨기에 초콜릿 브랜드 ‘고디바’는 백성의 세금을 깎아주려 나체로 말을 탄 ‘고디바 부인’의 전설을 스토리로 활용한다. 초콜릿 포장에도 고디바 부인을 그려 넣었다.
허웅
오리콤 브랜드전략연구소 소장

“짐을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만약 두고 내리시려면 저희가 좋아할 만한 물건만 두고 내려주세요.” “연인과 헤어지는 방법은 50개 정도 됩니다. 그러나 이 비행기의 출구는 단 4개뿐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저가 항공 ‘쿨룰루(줄루족 언어로 ‘쉽게’를 뜻함) 항공’을 타면 이처럼 일반적이지 않은 안내방송을 들을 수 있다. 쿨룰루 항공은 저가 항공 중에서도 약자에 속한다. 이 ‘브랜드 약자’가 살아남기 위해 택한 방법은 일반적인 기대를 깨는 위트 있는 기내 방송이었다.

 불황이라 기업이나 개인 모두 “어렵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런데 어려울수록 강자가 갖고 있는 관성의 힘이 더 크게 작용한다. 명성과 인지도를 갖춘 브랜드 강자에만 고객이 더 몰리는 것이다. 자원이 빈약한 브랜드 약자는 어려운 시기일수록 약해지기 쉽다. 이 상황에서 브랜드 약자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브랜드 강자보다 적은 마케팅 자원으로 강한 존재감을 만들려면 고정 관념을 깨고,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쿨룰루 항공 타는 이유, 개그 안내방송

쿨룰루 항공은 딱딱하고 정형화된 항공사 이미지를 벗어난 경우다. 항공사의 상징 색인 녹색을 기본으로 항공기마다 다른 디자인을 선보인다. 그중 가장 유명한 ‘플라잉 101’기는 조종석·앞문·연료탱크 등을 문패처럼 비행기 전면에 도안으로 그려 넣었다. 이런 발상의 전환이 먹혀 창립 5년 만에 승객수 500만 명을 넘어섰다. 국내에서도 이런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동네 조그만 야채가게로 시작해 전국으로 퍼져 나간 ‘총각네 야채가게’다. 이 가게에 가면 “누나·엄마, 오늘 나온 싱싱한 딸기 한 박스 떨이로 들여가세요”라고 소리지르는 청년들이 주부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동년배인 아주머니들이 야채를 다듬고 팔 것이란 주부 소비자의 기대를 깬 점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일본의 ‘아마다나 가전’ 또한 어렵고 지루한 제품 사용 설명서에서 벗어나 만화 형식의 웃기고 재미있는 설명서로 고객에게 어필했다. 사소하고, 돈도 별로 안 드는 서비스지만 고객의 일반적인 기대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여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전략이다.

한스브링커 호텔엔 히터·샤워기가 없다

장사 잘되는 내로라 한 전통의 맛집들은 한 가지 메뉴에 집중한다. 서울 이문동 소머리국밥집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인테리어도 없고, 메뉴도 한 가지, 반찬도 한 가지, 물도 셀프지만 국밥이 맛있어 자주 가게 된다. 잘하는 것 하나에만 집중하는 전략이다.

유럽의 별볼일 없는 저가 호텔이지만 여행하는 젊은이들의 성지로 인정받는 네덜란드의 한스브링커 호텔도 마찬가지다. 엘리베이터·샤워기·히터 같은 필수 시설까지 모두 빼고, 저가 호텔의 본질인 싼 가격에 집중해 젊은이들의 입소문을 탔다.

독일 외팅어 맥주는 다른 맥주들이 추구하는 화려한 레이블과 패키지·유통망 등을 과감히 버리고 맛의 본질에만 집중했다. 외팅엔 지방의 작은 맥주 회사에서 출발해 지금은 크롬바허와 자웅을 겨루는 독일 맥주시장 점유율 2위로 성장했다.

필드 안 나가도 된다, 스크린골프 골프존

프랑스 한 지방의 값싼 와인에서 매년 11월이 되면 전 세계인이 기다리는 와인이 된 보졸레누보는 단점이라 할 수 있는 자신만의 특성을 강점으로 바꾼 경우다. 와인의 품질은 숙성도에 의해 좌우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빠른 숙성을 활용해 매년 가장 처음 맛볼 수 있는 와인으로 소비자에게 어필했다.

일본의 아이모리현 사과도 마찬가지다. 한 해 큰 태풍으로 사과가 익기도 전에 떨어져 수확량도 대폭 줄고, 품질도 떨어졌다. 그런데 한 농부가 나무에 달린 얼마 남지 않은 사과에서 특별함을 찾아냈다.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은 행운의 사과’로 알리고, 대학입시 합격기원 상품으로 선보인 것이다.

국내 기업 중에는 ‘골프존’이 이런 경우다. 골프장을 지을 넓은 땅은 없지만 자신만의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스크린 골프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때로는 약점이나 한계로 보이는 자신만의 특성이,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존재감을 높여주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벌거벗은 고디바 부인이 초콜릿 살렸다

주장보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대학생 단합회 장소에서 연간 240만 명 이상이 찾는 관광지로 탈바꿈한 남이섬의 ‘미친 존재감’은 바로 스토리의 힘이 비결이다. ‘겨울연가’라는 러브 스토리를 접목한 것이다.

글로벌 화장품 회사 ‘메이블린’은 약사였던 창업자 윌리엄스가 여동생의 실연 아픔을 달래주기 위해 발명한 마스카라 개발 스토리로 수많은 화장품 브랜드 속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1926년 생긴 벨기에 브뤼셀의 수제 초콜릿 전문 가게에서 세계 3대 초콜릿 브랜드가 된 ‘고디바’는 영국 고디바 부인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했다. 수백 년 전 영국 코벤트리 영주의 부인이던 고디바가 백성들의 세금을 깎아주기 위해 벌거벗고 말을 탔다는 전설을 고결함과 품격의 상징으로 삼았다. 포장에도 말을 타고 있는 고디바 부인의 모습을 새겨 넣었다.

레드불의 우주점프 같은 미친 짓을 하라

일정 수준 이상 자극을 줘야 소비자들이 더 유쾌함을 느끼고 기억한다. 전 세계 시청자들은 지난해 10월 오스트리아의 펠릭스 바움가르트너가 고도 38㎞가 넘는 성층권에서 스카이다이빙해 초음속으로 하강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국제 뉴스를 장식한 이 ‘상상초월 이벤트’는 오스트리아 에너지 음료 ‘레드불’의 작품이었다. 레드불의 웹사이트인 레드불TV를 통해 전 세계 생중계됐고, 유튜브를 통해 800만 명이 동시에 시청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뉴멕시코에 안전하게 착륙한 바움가르트너의 사진은 30분 만에 3만 명이 레드불 홈페이지에서 퍼날랐다. 레드불은 87년 출시 첫해엔 11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데 그쳤지만 이런 극한 스포츠 이벤트 후원을 통해 꾸준히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은 29억5000만 달러(3조2900억원).

미국의 대표적인 구두 브랜드 락포트는 정장 구두 모양의 편안한 신발을 표방한다. 브랜드는 71년 생겼지만 90년 토니 포스트 부사장이 자사 신발을 신고 뉴욕마라톤을 완주해 유명해졌다. 영국 항공사 버진그룹은 새로운 브랜드를 내놓을 때마다 회장이 직접 기인열전에 나올 법한 이벤트를 벌인다.

허웅 오리콤 브랜드전략연구소 소장

◆허웅(41) =브랜드에 관한 모든 것을 일반인과 기업에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신방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광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부터 국내 광고대행사 최초의 브랜드연구소인 ‘오리콤 브랜드전략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사이버한국외대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며, 고대·외대·서울여대·국민대에 출강하고 있다. 국내 광고대행사가 내는 유일한 브랜드 전문 저널 ‘브랜드 저널’을 분기별로 편찬하고, 한 해 30여 회 이상 기업·기관들을 대상으로 브랜드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출장 강의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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