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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카」의 시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국민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학교에서 써오란다고 가정환경조사서를 내민다. 스무개가 넘는 설문중에는 자가용차가 있느냐와 자기집이냐는 것이 나란히 적혀있었다. 자가용차의 유무가 아동교육과 무슨관계가 있는지 통 납득이 가지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텔리비젼」이나 전기냉장고가 있느냐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전에는 전화가 있느냐는 것이 제일 큰 설문이었다. 그러고보니, 해방전에는「라디오」가 있느냐를 가렸던 것 같이 기억된다. 할머니네들은 또 장독대에 독이 얼마나 많은가로 그집의 살림형편을 알아냈었다.
이렇게 보면 그 동안에 었었던 우리나라의 엄청난 발전에 새삼 놀라게 된다. 「라디오」가 없어서 어깨를 펴지못하던 아버지가 이제 아들의 어깨를 펴주기 위해서는 자가용차를 마련해야만할 판이다. 좌우간 차란 이젠 하나의 「스테이터스·심벌」이 되었다. 내년쯤되면 같은 자가용이라도 「세단」차냐 「지프」차냐를 가려 적으라고 선생이 아이들에게 이를지도 모른다.
자기집도 못가지고 있는 아이에게는 언제까지나 자동차란 그림의 떡이다. 그런 아이도 쌀밥을 모르는 벽촌의 아이들에게는 역시 그림의 떡 일는지도 모른다.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 군에 하나도 없더라고 최근에 일선지구를 시찰하고 돌아온 누가 말했다.
그런 「언밸런스」에 머리를 쓸 필요가 우리에게는 없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어느 사회에나 앞장서는 사람이 있고, 뒤지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뒤지는 사람이 쫓아올때까지 기다리다간 영 발전이고 근대화고 기대할 수 없는 일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언밸런스」에는 눈을 가려도 좋다. 할수만 있다면 「크라운」차 아니라「포드」도 좋고 「벤츠」도 좋다. 위신을 차려야할 때에는, 특히 후방에서는 「지프」보다는 타기 싫어도(?) 「코로나」를 타야될 것이다.
다만 그렇게해서 지급되는 차를 가정조서에 자가용차라고 쓸것인지 공연한 궁금증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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