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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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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해방후 우리나라의 금생산량은 62년에 3천3백14킬로그램까지 올라 갔었으나 그후 매년 줄어들기시작, 67년에는 2천킬로그램도 안되는 1천9백70킬로그램.
1939년 남·북한의 산금총량은 29톤 (남한만도10.2톤)에 이르러 세계 제7위였고 37년부터 42년사이에 연간20톤이상(남 북한총계)을 캐냈던 영화로운 산금실태에서 엄청나게 후퇴한 것이다.
전체 생산량의 3분의2를 차지했던 이북의 광산이 모두 떨어져 나간탓도 있겠지만 65년현재 우리의 산금실적은 세계총 금생산량인 1천2백80톤에 비해 1.95톤에 불과한 정도. 우리나라는 삼한시대부터 금을 캐기 시작, 신라시대에 번창했던 흔적이 있으나 이조말기에는 이렇다할 금광이 없었고 청·일전쟁이후 외국인들의 손에 의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그당시 미국 독일 영국 일본인등이 광산개발권을 얻기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었으나 한·일합방이후 대부분의 금광은 일본소유로 넘어가 한때 일본이 세계 제3위의 위치에까지 올라갈수가 있었던 것.
일제는 각종법령제정과 지정책을 적극추진, 1910년∼45년까지 3백90톤의 금을 생산케하여 이중 일본으로 반출해간 것만도 64%에 해당하는 2백49톤.
그러나 이러한 산금정책의 후광은 8·15해방을 계기로 끊어졌고 더구나 주요금광이 국토양분으로 떨어져나가 오늘의 산금침체를 가져온것.
현재 우리(남한)의 금매장량추정은 약4천톤.
우리나라의 토질이 80%가 화성암에서 나오는때문에 전국 어느곳에 가도 금매장이 없는곳이 없다는 것. 단지 개발가능성과 개발가치가 있느냐 하는데 문제가있다.
가행광산수는 약80개로 석탄을 뺀 30여광종의 총광산수 약5백개의 16%를 차지하고 있다. 금의 연간거래량은 10톤정도이며 신규수요는 2.5톤 안팎이라는게 관계전문가들의 분석.
최근에와서 시국불안이 금값 오름세에 자극, 퇴장용(가치저장목적)금의 수요가 부쩍 늘어나고있는 형편이다. 정부는 지난연말 금값안정을위해 금3백40킬로그램을 빼낼수있는 동광석6천톤의 수입을 추진, 오는 5월말까지 모두 도착 할예정인데 우리가 공식적으로 수입하긴 이번이 처음.
이러한 금부족현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위해 정부는 지금까지 수출광물에만 힘써오던 광업정책을 금·은광으로 바꾸어 금광개발에 중점적으로 기술지원을 하기로 급전환했다.
올해의 금생산목표는 2.4톤, 그리고 71년의 목표는 3.8톤. 그러나 구봉·극무·광양등 굵직한 광산들이 캘것이 얼마 남지않은것으로 나타나고있어 계획목표량을 달성할수 있을는지는 의문.
제련된 금은 성냥값 크기만한 2킬로그램짜리 금괴로 만들어져 한달에 두 번씩 제련공사와 대명광업을 통해 공매되는게 공식화되어있으며 나머지 작은 금광들은 직접 금·은상에 전도금을받고 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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