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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국회연구원 왜 필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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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5일 개회된 임시국회는 내용 면에서는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와 임명동의안 처리 등 새 정부 출범을 준비하는 국회이고, 형식 면에선 지난 1월 22일 통과된 새 국회법에 따라 운영되는 첫 국회다. 의장 취임 이래 반년간 노심초사하며 국회법 개정을 추진했던 입장에서 '새 국회법 첫 국회'라는 측면에 관심이 크다.

그동안 정쟁의 빌미가 되었던 일방적 대정부질문이 일문일답식으로 바뀌고 나서 실제로 어떻게 운영될지, 속기록 삭제를 하지 못하도록 고친 것이 과연 막말과 욕설을 막아줄지, 감사원에 대한 감사청구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행될지 등등이 궁금한 것이다.

*** 국회법 개정후 두번째 개혁

그런데 국회법 개정은 이미 끝난 일이니 어떻게든 자리를 잡아나갈 것이고 정작 요즘 가장 신경쓰이는 일은 국회 내 연구원 설립이다. 연구원 설립은 국회법 개정과 동시에 추진해온 국회 개혁의 양대 축이다.

국회법 개정이 도로를 넓고 반듯하게 고치는 일이라면, 연구원 설립은 그 넓어진 도로를 달리는 차의 성능을 개선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국민들은 국회의원들의 정책능력 부족을 늘 질책하지만,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국회의원들에게 전문성까지 갖추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특히 1백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예산안을 보고 그 숫자의 산더미 속에서 각 항목의 의미를 파악하고 잘못된 것을 골라내는 일은 전문가에게도 힘든 일이다. 그런데 우리 국회는 그 엄청난 작업을 단 며칠 만에 해낸다. 결산은 예산보다 더 빨리 해치운다.

이번에 결산 결과에 따라 정부에 책임을 묻는 권한을 헌정 사상 처음으로 도입했으나 현행 시스템으로는 이 권한을 실효성 있게 사용하기 힘들다는 것이 솔직한 판단이다.

결국 국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재정통제권이 제대로 행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국민의 혈세를 거의 통제받지 않는 가운데 쓰고 있고 잘못이 있어도 제대로 책임 추궁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인력과 정보, 자료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이 따지려야 따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국회 연구원은 그 일을 하기 위한 기구다.

현재 제출돼 있는 연구원법안에 따르면 의정연구원(가칭)은 석.박사급 연구원 50여명이 1년 3백65일 동안 정부예산안이 만들어지고 집행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잘잘못을 따져 그 결과를 국회의원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 4급 보좌관 2명 등 취약한 인력과 제한된 정보로 공룡 같은 거대 행정부에 맞서던 국회의원들에게는 천금 같은 지원이 될 것이다.

연구원을 만든다 해도 미국 입법지원 조직의 규모와는 아예 비교가 불가능하다. 미국의 경우 세계 최고의 예산 분석기관인 의회예산처(CBO: Congressional Budget Office)에 2백30여명의 직원들이 의회 건물의 한 층 전체를 쓰고 있다.

처장을 비롯해 전문직 직원의 70% 이상이 경제학이나 공공정책 분야의 석사학위 이상 소지자로, '경제학자들에 의해 지배되는 기관'으로 불리며 직원들은 의회 마크보다 CBO 마크에 더 자긍심을 가진다고 한다.

세계적인 차원의 정보수집 능력으로 유명한 입법조사국(CRS: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은 7백여명의 연구인력이 의원들의 질문에 따라 입법활동을 지원하고 있는데, CRS 자료 중에는 미 중앙정보국(CIA)을 능가하는 것도 적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 석·박사 50여명이 예산안 감시

이에 비해 우리는 예결특위 전문위원실(12명), 사무처 예산정책국(사무관 이상 24명), 국회도서관(18명)에서 입법 지원과 관련된 일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정기국회가 끝나고 예결특위 직원 12명 중 10명이 과로로 병원 신세를 졌다.

반면, 국회가 상대하는 정부의 경우 기획예산처 직원은 2백90여명이고 행정부 산하 연구소는 46개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 무능만 질책받는 것은 억울하다.

국회가 정부예산을 효율적으로 감시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할 수 없어서이다. 연구원이 만들어지면 한층 업그레이드된 국회의 실력을 보여주겠다는 것을 약속드린다. 연구원의 1차 수혜자는 국회의원이지만 최종 수혜자는 국민이다.

朴寬用 국회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