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기미' 정책이 대안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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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수천억원에 달하는 대북 송금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남북 간의 화해를 위한 '통치행위'다, 아니다" 혹은 "노벨상을 받기 위한 공작이다"는 둥 각종의 주장과 의혹이 난무하고 있다.

자세한 속사정을 알 수 없는 국민으로서는 확실한 사실규명이라도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을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나라 밖으로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미국이 최근의 북핵 사태와 관련해 한반도 주변에 병력을 증강 배치키로 결정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최악의 경우에는 군사적 대결로 치달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漢-흉노 형제맹약 맺었지만

분단 이래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혀 오던 남북문제가 요즘처럼 첨예해진 적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나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이 난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상 어느 누구보다 오랫동안 남북문제로 고민했던 중국의 경우는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오늘날에는 관광지가 돼 버린 만리장성이야말로 끊임없이 북방의 기마민족과 대치할 수밖에 없었던 중국의 고민과 과오가 남긴 유산이기 때문이다.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 진(秦)이 무너진 뒤 항우를 거꾸러뜨리고 천하를 통일한 한(漢) 고조 유방(劉邦)은 북방의 강력한 유목국가 흉노를 치기 위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원정에 나섰다.

적진 깊숙이 들어간 그는 매복한 적군에게 완전히 포위돼 꼬박 일주일을 갇히는 신세가 됐다. 결국 흉노왕의 부인에게 최고급 모피 코트를 뇌물로 주고 풀려나긴 했지만 흉노에게 매년 막대한 양의 금은.곡물.옷감을 바치고 그것도 모자라 공주까지 시집보내기로 약속했다.

양측은 형제맹약을 하고 국경을 설정했으니 말하자면 우호 불가침조약인 셈인데 듣기 좋게 '화친'이라 이름했다.

그러나 '화친'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몇 년 지난 뒤 흉노는 변방을 공격해 양민을 학살하고 농토와 민가를 파괴했다. 그리고는 곧 사신을 보내 '화친'을 재개하자고 청했다.

대신 한나라가 보내주는 지원금을 증액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변경의 안정과 평화관계를 바라던 한나라 조정으로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고 해마다 지원금은 늘어만 갔다.

'화친'이라는 미명 아래 추진됐던 '매수' 외교는 결국 한계에 다다르게 됐고, 무제(武帝) 때에 이르러 종래의 정책을 파기하고 과감한 강공책으로 선회하게 된 것이다.

한 무제는 한반도에 한사군을 설치한 인물로도 유명하지만 그것도 실은 북방의 흉노를 제압하기 위한 거대한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는 치욕의 역사를 씻기라도 하듯 수십만 대군을 동원해 반세기에 걸쳐 맹공을 감행했다.

그러나 그것은 승패 없는 전쟁이었다. 전쟁이 남긴 유산은 흉노의 피폐, 바닥난 중국의 재정, 수많은 백성들의 죽음과 고통뿐이었다. 자신의 죽음을 앞둔 그가 스스로의 과오를 인정하고 전쟁 중지를 선언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을지 모른다.

결국 '화친'과 '전쟁', 이 두 가지 정책은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있겠는가. 이에 대해 두 나라의 충돌과 교섭의 역사를 기록한 고대의 역사가 반고(班固)는 '한서(漢書)'라는 책에서 제3의 길을 제시하며 이렇게 말한다.

*** '고삐'로 조절하는 방식을

"그들이 쳐들어 오면 응징해 방어하고, 물러가면 갖춰 수비하되, 만약 의로움으로써 온다면 예의로 그들을 대해야 한다. 즉 기미(羈)하되 단절해서는 안될 것이다."

즉 그의 주장의 요체는 바로 '기미'였다. 이 말은 원래 느슨한 '고삐'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적대적인 상대방과 일정한 거리를 두되 상황에 따라 대처하며 통제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어찌보면 기미정책은 너무 미온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남북 간의 화해를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핵을 들고 나오는 북한에 대해 과연 일방적인 햇볕정책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아니면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고 강경자세를 고수하는 미국의 정책이 우리에게 어떤 파국적인 결과를 가져올지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시간과 인내, 지혜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기미'를 역설했던 반고의 충고를 곰곰이 되새겨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金浩東(서울대교수·중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