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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맘에겐 '육아 해우소' … 919곳 중 359곳만 설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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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기도 안양시 인덕원에 사는 주부 김은희(35·가명)씨는 매일 아침 서울 서초구 직장으로 출근하면서 딸아이(5)를 정부과천청사 직장어린이집에 데려다준다. 남편(39)이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이어서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자격이 있다. 김씨는 이 어린이집 소문을 듣고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등록하고 2년을 기다렸다가 들어갔다. 김씨는 “아이를 맡기고 나면 요즘 언론에 등장하는 아동학대 등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다. 교사들이 대부분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데다 간이 수영장과 텃밭이 있을 정도로 시설이 좋다. 영양사가 상주하기 때문에 음식의 질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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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씨 사례를 보면 정부가 직장어린이집에 집중하려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어린이집은 추가비용을 내면 밤 11시까지 아이를 봐 준다. ‘직장맘’들이 야근을 해도 아이 걱정이 없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7월 전국 3343명의 영·유아 학부모를 대상으로 보육실태를 조사했더니 직장어린이집의 27.2%가 별도의 식사 공간을, 32.4%가 도서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어린이집은 각각 4.5%, 13.4%에 불과하다. 시설과 운영면에서 직장어린이집이 우수하다 보니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을 수밖에 없다.

 기업이나 지자체 등의 사업장들이 어린이집을 많이 설치하면 좋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해 9월 현재 의무설치대상 사업장(여성근로자 300명, 전체근로자 500명 이상)은 919곳이다. 이 중 어린이집을 설치한 데는 절반에 훨씬 못미치는 359곳에 불과하다. 253곳은 보육수당을 지급하고 71곳은 다른 시설에 위탁한다. 236곳(25.7%)은 설치하지 않았다. 기상청·대구교도소 등의 국가기관 9곳, 서강대 등 학교 17곳, 경북 울릉군청 등도 설치하지 않았다. 설치하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가 없다 보니 3년째 큰 변화가 없다. 올 1월 처음으로 미설치 사업장의 명단이 공개됐다.

 직장어린이집이 있는 기업의 직원은 임신하자마자 임신증명서를 제출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서울 여의도의 대기업 직장인 김모(35)씨도 그런 경우다. 그는 “애를 낳아도 순번이 빨리 안 올 것 같아 괜찮은 민간 어린이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어린이집이 없어 일을 쉬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8월 딸을 출산한 회사원 이모(32)씨는 산전후 휴가 석 달만 쓰고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복직했다. 민간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려 했으나 불안감 때문에 그러질 못했다. 일과 육아 병행이 힘들어 6월에 육아휴직을 가려 한다. 이씨는 “회사에 직장어린이집이 있으면 육아휴직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기업이나 지자체가 어린이집을 설치하지 않은 이유로 보육 수요 부족을 든다. 40, 50대 고령층 여성근로자가 많은 사업장은 어린이집을 지어도 이용자가 적다. 사업장이 외진 곳에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이런 곳은 의무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어린이집을 하나 지으려면 9억~10억원 안팎의 비용이 들어간다. 미설치 대학들이 이런 이유를 많이 댔다. 서강대 이주유 홍보계장은 “예산이 부족한 데다 다른 학교와 달리 유아교육과가 없기 때문에 운영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고 말했다.

 대기업도 그런 경우가 적잖다. SK브로드밴드(상시 근로자 815명)는 예산 때문에 어린이집을 마련하지 않았다가 최근에야 서울 본사 건물에 설치 공사를 하고 있다. 이 회사 김홍식 홍보팀장은 “그동안 신경을 못썼던 게 사실이다. 운영을 위탁할 업체를 선정했고 9월에 문을 열 예정”이라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직장어린이집 의무 대상 사업장이 100% 설치하는 것을 목표로 이번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신성식 선임기자, 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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