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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도산 안창호 선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훌륭한 지도자들은 길이 내일에 사신다. 3월10일로써 작고하신지 30주년의 그날을 하루앞두고 9일 시민회관에서 추모식을 올린 도산 안창호선생이야말로 우리가 잊지못한 많은 민족운동의 지도자중의 빛나는 큰별이시다. 그일생을 구국, 독립운동에 바친 선생이 상해임시정부에서 중책을 지고 일하시다가 일본경찰에 잡히어 서울로 호송되어 재판을 받던 그때, 일본인재판장이『앞으로 감옥에서 나와서도 독립운동을 할것인가?』고 묻는말에 선생은『허허!』하고 웃으시면서 『우리민족의 독립운동은 나혼자서 해온것도 아니고 또 내가 외쳐서해온것도 아니다. 오직 우리민족의 뜻이 자유와 독립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민족은 하루 한때라도 그뜻을 버릴수 없을것이다. 나는 과거에도 그랬거니와 앞으로도 우리민족이 당연히나가야할길이며 또지금도 나가고 있는 그길의 그민중속에서같이 웃고 갈이 울며 같이 걸어나갈 것이다…』라고 하셨다고. 그때 방청이 금지된 비밀법정에 변호인으로 나섰던 전대법원장 김병로선생으로부터 들었다. 그 겸손하고 소박한 말씀가운데는 오직 가을 하늘 같은 맑고 높은 선생의 기품을 느낀뿐인것이다.
선생이 창설하셨던 평양의 대성학교는 우리나라 지도자의 양성소였다. 지금 생각하면, 검은 물감을 들인 무명양복에 목총을 가지고 교련시킬때는 사관학교 같기도 했고, 학생들이 소학교에 나와 글가르치기를 익힐때는 사법학교학생같기도했다. 평양시민들은 도산선생을 우러러 사모했을뿐 아니고 그학생들은 또한 크게 아꼈다. 우리들어린이들은 대성학교 학생들을 만나면 깍듯이 경례를 했다. 그들은 우리들의 큰 형님들이라고 선생들이 일러주었기때문이다. 단한번있은 대성학교 졸업식때는 선생은 이미 망명했었고 식장에는 일본군인들이 가득 차있었다. 지금도 잊히지않는것은 오들오들 무서워 떨면서도 우렁차게 들려오던 그 대성학교학생들의 군악대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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