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스페셜 리포트] 호모중딩쿠스, 넌 대체 누구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호모중딩쿠스. 엄마와 선생님은 중2(중학교 2학년)를 기존 인간의 행동방식·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답니다. 완전히 새로운 인류라고 스스로 마음을 접지 않으면 참기 어려울 정도라죠. 그래서 아예 중2를 호모중딩쿠스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이미 그 시절을 겪었으니 잘 안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부딪히면 도대체 속내를 모르겠으니 그저 나와는 다른 인간으로 치부한다는 거죠. 너무 날카롭고 예민해서 다가가면 찔릴 것 같다고도 말합니다. 답답한 엄마의 마음을 알아봤습니다.

중2 때문에 매일 도 닦는다는 엄마

중2 엄마를 만났습니다. 모두들 정말 할 말이 많더군요. 그러나 한사코 애 이름 밝히는 건 꺼렸습니다. 엄마가 말 한마디 잘못해서 가뜩이나 아슬아슬한 관계가 더 틀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취재내용을 모아 한 편의 일인칭 단편소설처럼 재구성했습니다. 또 이미 중2를 겪은 고등학교 선배 얘기도 같은 형식으로 들어봤습니다. 시원하게 할 얘기 다 했던 중2들, 이번엔 엄마 얘기, 선배 얘기에 한번 귀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요.

모델: 김다영

“신경 써주면 간섭, 그냥 두면 무관심 이라니 … 아니 뭘 어쩌라고”

하아~. 정말 한숨밖에 안 나온다.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느낌이다. 매일 눈뜨면 오늘은 뭔 말을 해도, 뭔 짓을 해도 내가 그냥 참아야지, 하고 맘먹는다. 하지만 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정말! 어제는 앞머리 조금 삐뚤어졌다고 학교를 안 가겠다더니, 오늘은 새벽 6시부터 일어나서 머리 새로 감고 30분 넘게 화장실에 틀어박혀 드라이를 한다. 만날 이런 식이다. 머리 붙잡고 있느라 지각한 게 이번 학기 들어서만 벌써 몇 번인가. 보다 못해 “그런 열정으로 공부를 좀 해봐” 한마디 했더니 도끼눈을 뜨고 빗을 집어던진다. 아니, 보자 보자 했더니 이게 정말. 이렇게 오늘도 전쟁이 시작됐다.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 당장 빗 줍지 못해!” 아무리 소리쳐도 소용없다는 걸 알지만 정말 참을 수가 없다. 애는 빗을 줍기는커녕 문을 쾅 닫고 자기 방에 들어가버렸다. 저러다 오늘도 지각하겠지.

 호모중딩쿠스. 3월에 학부모회의에 갔더니 담임 선생님이 “다들 너무 힘드시죠”라며 “오죽하면 중2를 호모중딩쿠스라고 부르겠느냐”며 벌써부터 체념한 듯한 얘기를 했다. 중2는 기존 인간의 행동방식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전혀 새로운 인간, 즉 호모중딩쿠스라는 거다. 선생님이랑 다른 엄마들이랑 다들 서로 위로하고 돌아왔다. 자기는 호모중딩쿠스인지 뭔지 몰라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인 이 엄마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는데 어쩌나.

 “늦겠다. 빨리 이 좀 닦아. 어제 숙제한 건 챙겼니.”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아니 훨씬 더 전부터 따라다니며 챙겨주는 게 습관이 됐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간섭하지 마라”라며 모든 걸 다 거부한다. 자기 도와주겠다는 건데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잔소리 좀 그만 하란다.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어제도 앞머리 맘에 안 든다고 학교 안 간다길래 소리 좀 질렀더니, “이게 다 엄마 탓이야” 한다. 아니,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지. 중2병 증상 하나는 확실히 안다. 남 탓하기. 아니, 엄마 탓하기.

 참, 하나 더 있다. 옛날 일 끄집어내서 엄마 망신 주기. 하루는 밖에서 이런저런 행동 조심하라고 했더니 “엄마나 잘 해” 이런다. 아니, 이거 뭔 소리. “엄마, 그때 압구정로 한가운데서 막 무단횡단했잖아. 그것도 내가 늦게 걷는다고 소리 지르고. 내가 그때 얼마나 창피했는 줄이나 알아. 뭐 어디 그때 한 번뿐인가. 엄마는 무단횡단의 여왕이야.” 어렴풋이 기억은 나지만 언제 일인지도 가물가물한데 느닷없이 왜 이 얘길 꺼내지. 이럴 때는 무조건 발뺌하는 수밖에 없다. “엄마가 언제 그랬다고 억지야. 그리고 그게 지금 이 일이랑 무슨 상관이니.” 말은 이렇게 해도 솔직히 얼굴이 화끈거린다. 예전에 무심코 했던 행동을 이렇게 하나하나 비판받는 기분이란.

 중2가 되면서 얘는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논리적이고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조금만 부당하다고 여겨도 참지 못하고 대든다. 남자애들은 알량한 의협심에 조금만 무시당했다 생각하면 바로 치고받는단다. 남자아이 엄마들은 이런 폭력문제에 한번 연루되면 그걸로 인생 종칠까 두려워한다.

엄마들이 꼽는 공공의 2적. 카카오톡을 만든 김범수 카카오 의장(왼쪽)과 스마트폰을 만든 애플의 스티브 잡스

여자아이 엄마 입장에서는 제일 무서운 게 카스(카카오스토리) 왕따 문제다. 왕따 당할까도 겁나지만 괜히 별것도 아닌 행동 때문에 왕따 가해자로 몰려 불이익을 받을까 노심초사다. 애들이 맘에 안 든다고 결정하면 바로 다같이 카스에서 친구를 거절한다. 당하는 입장에선 카스 친구가 50명에서 하루아침에 0명이 되는 거다. 친구가 엄마보다 더 중요하다는 애들이 이런 일을 당하면 좌절감이 너무 커서 우울증에 빠져버린다.

 우연히 애 카스를 들여다보다 우리 애가 이렇게 친구들이랑 작당해서 자기 반 애 하나를 카스 왕따 시킨 걸 알게 됐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잘못하면 신문에 날 일 아닌가. 불러다 좋게 좋게 타일렀다. “그러면 못써. 걔 입장도 한번 생각해봐. 니가 걔라면 어떻겠니. 정 싫으면 그냥 놀지 마. 이렇게 왕따 안 시켜도 되잖아.” 야단친 것도 아니고 정말 좋게 말했는데 돌아온 건 말도 안 되는 애의 짜증. “엄마나 잘 해. 만날 전화하면 남들 뒷담화나 하면서.”

 욕 나오는 걸 꾹 참았다. 어찌나 말은 또박또박 잘 하는지 정말 말로는 이겨낼 재간이 없다. 아, 이렇게 매일매일 도를 닦는다. 지금 죽으면 성철 스님보다 사리가 더 많이 나오리라. 그런데 이런 내 맘도 모르고 애는 “엄마, 쓸데없이 민정이 엄마한테 전화해서 말 옮기지 마. 엄마가 그렇게 한 거 친구들 알면 나 바로 왕따야. 엄마가 튀어도 내가 왕따라고. 알지?”

 엄마 말 한마디, 행동 하나 다 마음에 안 든다면서 요구하는 건 또 왜 그리 많은지. 옷 한 벌 살 때도 전쟁이다. 자기는 남들하고 다르다며 교복 요상하게 고쳐 입으면서 유행이라고 남들 입는 옷은 기어이 장만해야 한다는 건 또 뭔지. 휴대전화만 해도 그렇다. 눈뜨자마자 휴대전화부터 들여다보고 하루 종일 끼고 산다. 어떨 땐 망치로 내려치고 싶은 충동까지 든다. 엄마들 만났더니 다들 비슷한 심정이란다. 한번 뺏어보기도 했다. 그랬더니 “나 왕따 당하면 엄마가 책임져”라며 협박한다.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 오죽하면 스마트폰 만든 애플의 스티브 잡스하고 카카오톡 만든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대표적인 공공의 2적이랄까. 정말 그렇다. 정부에서 청소년 휴대전화 사용 금지령을 내려주면 안 되나.

 이렇게 늘 불안하고 쫓아다니며 잔소리하는 게 다 자기를 위한 거라는 걸 왜 모르는지 참 답답하다. 어떨 땐 아무리 내리사랑이라지만 내 무한희생이 이렇게 조롱당해도 되나 싶어 우울하다. 나라고 노상 공부하라고 잔소리 하고 싶을까. 잔소리 듣기 싫으면 자기가 좀 알아서 착착 하면 안 되나. 만날 내버려두라지만 그러다 엇나가서 대학도 못 가면 결국 나중에 또 엄마 원망할 거면서. 그런데 입만 살아서는 “난 공부를 안 해서 못하는 거야. 맘만 먹으면 전교 1등 별거 아니야.” 그래, 제발 맘 좀 먹어주라. 도대체 그 맘은 언제 먹을 거냐.

 지민이 엄마는 무슨 고민이 있을까 싶다. 중2병이라고 말하지만 누구나 중2병을 겪는 건 아닌 것 같다. 지민이 봐라. 얼마나 똑 부러지게 알아서 공부 잘하나. 지민이를 보면 난 더 조급해진다. 벌써 저만큼 앞서 있는 아이가 이렇게 착실하게 공부하면 우리 애는 언제 따라가나 싶어서. 난 애 유치원 때부터 나름 정보에 뒤지지 않았다고 자부해 왔다. 아무리 바빠도 엄마 모임 안 빠지고, 치사해도 좀 아부 떨고 밥 사주면서 좋다는 학원, 좋다는 과외 선생님 번호는 악착같이 땄다. 그렇게 해서 열심히 애를 학원에 실어날랐다. 그런데 그 보상이 고작 애한테 무시당하기라니.

 "요것아, 너도 커서 딱 너 같은 애 낳아서 고생 좀 해봐라.”

중2병 별거 아니라는 고2
“자아도취 빠졌던 것 같아 부끄러워요, 다 허세였어요”

돌아보면 중2 때 처음 시작한 게 참 많아요. 가부키 화장, 서클 렌즈, 인터넷 소설, 그리고 반항. 어른들 눈엔 반항이지만 사실 우린 나름의 기준에 맞춰 행동하는 거였어요. 그땐 부당한 걸 보면 그렇게 참을 수가 없었어요. 정의감과 의협심이 막 넘쳐났으니까. 그래서 바른 말 몇 마디 하는 건데 이걸 반항이라고 몰아붙이니 짜증이 나는 거죠. 어른들이 먼저 모범을 좀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자기들은 행동을 막 하면서 우리보고만 이래라 저래라 하니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거죠. 근데 한편으로는 그 시절엔 나만 잘났다는 자아도취에 빠졌던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해요. 맞아요. 다 허세죠.

 중2는 생전 처음 기득권을 가지는 시기인 것 같아요. 후배가 생기면서 선배 대접 받으니까 좀 오버할 수도 있죠. 중3이 입시다 뭐다 해서 정신없는 틈을 타 학교에서 제일 잘나가는 위치를 점하는 거예요. 근데 어른들이 이걸 병이라고 하는 걸 보면 이해가 안 돼요. 그리고 그게 진짜 병이라고 해도 중3 되면 저절로 치료돼요. 뭐, 물론 중3 가서 남들 다 졸업한 화장 시작하면서 뒤늦게 허세 부리는 애들도 있어요. 그럼 우리끼리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그래 봐야 별거 없어, 쪽팔리게 지금 뭐 하는 짓이냐.” 이렇게 철든 소리를 해요.

 오히려 그때 범생이처럼 아무것도 안 하던 애들이 나중에 문제 생기는 거 많이 봤어요. 소정이가 딱 그랬어요. 누가 봐도 모범생이었죠. 그런데 마음속으론 다른 애들 하는 거 다 따라 해보고 싶었나봐요. 고등학교 올라와서야 처음 화장 해보고 싶다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라이너 하나 선물했죠. 그런데 처음 해보는 거라 너무 못하는 거예요. 혼자 막 스트레스 받고 그러더니 한동안 편두통과 과호흡증으로 수업 중에 실려나가기도 했어요. 소정이가 나중에 그러더라고요. “그때 좀 자유롭게 살아볼 걸, 진짜 후회된다. ”

 지금 와서 친구들이랑 얘기해보면 허세 떨던 애나 범생이나 찌질이나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바로 자살충동이에요. 그땐 자살충동을 진짜 많이 느꼈던 거 같아요. 중1 때 영어가 전교 1등이었는데 중2 때 성적이 곤두박질쳤어요. 특별히 많이 논 것도 아닌데. 이 성적으론 외고(외국어고등학교) 못 가고, 그럼 대학에도 못 가고…, 아 그럼 지금 죽는 게 낫겠다, 생각이 이렇게 흐르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지만 그땐 정말 심각했어요. 저만 그랬던 게 아니에요. 미국에서 온 수연이는 다시 미국 보내달라고 그랬다가 부모님한테 야단만 맞고는 정말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페이스북에 ‘나 먼저 간다’고 올린 글을 정민이가 금방 확인해서 진짜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요.

 세상에 나 혼자 떨어진 것 같아 갑자기 막 외롭고 쓸쓸하니까 어른들 보기에 4차원 짓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걸 무슨 대단한 병에 걸린 양 병원 데려가고 집단상담 집어넣고 참. 그렇게 엄마가 호들갑 떨던 애들, 치료가 되기는커녕 대부분 완전히 엇나갔어요. 멀쩡한 애를 진짜 환자 만들었다고 봐요. 그냥 두면 자연스럽게 지나갈 일을 왜 자꾸 긁어 부스럼을 내는지 모르겠어요. 크면서 자연스럽게 관심 갖게 되는 거에 대해서 그냥 맞장구쳐주면 안 되나요. “그런 거냐, 재밌네” 이렇게 친구처럼 대해주면 좋겠어요. 공부 얘기는 좀 빼고요.

 하지만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은 달랐죠. 엄마조차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친구관계에 점점 집착하게 돼요. 친한 그룹에서 떨어져나오면 안 되니까 좀 아니다 싶은 일도 따라 하고 그러죠. 대표적인 게 뒷담화예요. 친한 애들끼리 상대를 바꿔가며 하는데 언젠가는 내가 그 대상이 될까봐 친구 관계에 더 연연하게 돼요. 친구와의 대화 하나하나에 굉장히 신경 쓰이기도 하고요. 문자 보냈는데 곧바로 답이 안 오면 ‘왜 답이 없지, 얘가 나 싫어하나’란 생각에 심각해진 적도 있어요. 또 한번은 친구랑 연예인 얘기 하는데 걔 말을 못 알아듣겠는 거예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집에 와서 미친 듯이 인터넷으로 연예인 정보를 검색했어요. 나는 안 좋아해도 대화하려면 친구가 좋아하는 연예인 정보까지 빠삭하게 알지 않으면 안 돼요. 지금 생각하면 진짜 별거 아닌데 그때는 ‘내가 친구 사이에서 소외되면 어쩌나’란 걱정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때 자기 페이스 조절이 진짜 중요한 거 같아요. 그야말로 누가 봐도 엄친아가 있었는데 친구 관계에 휩쓸리면서 오지랖을 떨더니 내신이 바닥으로 떨어졌어요. 원하는 고등학교에 당연히 못 갔죠. 친구 관계에 적정한 선을 유지하는 게 중2 때 정말 중요한 거 같아요. 나중에 회복하기 어려우니까요. 지금은 아예 귀찮아서 스스로 스마트폰 안 가지고 다니는 애들도 많아요. 그렇게 작은 일에는 신경도 안 쓰이는 거죠.

 어른들이 꼭 알았으면 하는 게 있어요. 중2 때도 이미 알 건 다 안다는 사실이에요. 공부해야 하는 것도 알고 심하게 놀면 안 된다는 것도 다 알아요. 하지만 성적이든 뭐든 자기 뜻대로 잘 되지 않으니까 답답한 거죠. 제가 책상 앞에 ‘공부 결과는 시간에 비례, 집중의 제곱에 비례한다’고 써서 붙여놨거든요. 그랬더니 지금 중2인 제 동생이 그 밑에 ‘머리의 세제곱에 비례한다’고 쓰는 거예요. 노력만으로 안 된다는 좌절을 벌써 느낀 거죠. 공부를 잘하는 애인데도요. 얼마나 안쓰럽던지.

 진짜 진짜 공부 얘기는 좀 그만해도 돼요. 특히 비교는 정말 안 했으면 좋겠어요. 겉으로 말은 안 해도 공부 잘하고 싶다는 욕심은 누구나 있으니까요. 고등학교 들어가면 어차피 다 공부해요. 영화감독 되고 싶어도 일단 대학엔 가야 하니까 딴짓 못 해요. 그러니까 중2 땐 친구랑 수다도 떨면서 스트레스 풀게 해주면 좋겠어요.

글=안혜리·김소엽·박형수·정현진·전민희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