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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명 한꺼번에 … 시성식 기록 깬 교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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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2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시성식이 열린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 성인들의 모습을 담은 태피스트리(색실로 문양을 짜 넣은 천)가 걸려 있다. 왼쪽부터 콜롬비아의 라우라 몬토야 수녀, ‘오트란토의 순교자들’, 멕시코의 마리아 과달루페 가르시아 사발라 수녀가 새겨져 있다. [바티칸 로이터=뉴시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시성(諡聖)식을 열었다. 이슬람교로의 개종을 거부한 이탈리아 순교자 등 815명이 새로운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랐다. 역대 최다 규모다. 전임자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재임 기간 480여 명을 시성했는데 이 기록을 단 하루 만에 깨버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2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15세기 말 오스만제국의 이탈리아 침공 당시 이슬람교로 개종을 거부한 이탈리아 ‘오트란토의 순교자들’과 남미 출신 수녀 2명에 대한 시성식 미사를 집전했다.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가 2월 은퇴를 발표하면서 이들의 시성을 결정했지만, 공식적으론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성한 첫 성인들이다. 시성은 가톨릭 교회가 거룩한 삶을 살았거나 순교한 이에게 공식적으로 성인의 칭호를 주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 신자는 그 이름을 세례명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맞아 내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순교한 김대건 신부 등 103명을 시성한 바 있다.

 오트란토의 순교자들은 1480년 이탈리아 남부 오트란토를 침공한 오스만제국의 이슬람교 개종 요구를 거부하다 처형된 시민 813명이다. 당시 지도자 격으로 참수당한 안토니오 프리말도 외에 다른 동료 순교자들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트란토의 순교자들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신께서 여전히 폭력으로 신음하는 여러 나라의 기독교인들을 지탱해 주시고 이들이 신앙을 지키며 악에 선으로 맞설 용기를 주시길 간청하자”고 말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교황이 특정 국가를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바티칸은 이집트에서의 콥트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의 종파 갈등을 포함, 최근 중동에서의 기독교인 상황에 대해 크게 우려해 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재임 초기인 2006년 이슬람 비하 발언을 해 무슬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콜롬비아와 멕시코 출신 수녀 2명도 시성했다. 1914년부터 원주민들의 교사로 일하며 그들의 ‘영적인 어머니’로 불린 라우라 몬토야(1874∼1949)수녀는 콜롬비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성인에 추대됐다. 멕시코의 마리아 과달루페 가르시아 사발라(1878∼1963) 수녀도 1920년대 멕시코 정부의 가톨릭 교회 탄압 당시 박해받는 신자와 병자를 도우며 헌신한 점을 인정받았다.

 이날 시성식이 열린 성베드로 광장에는 7만여 명의 관중이 모여 교황을 환영했다. 콜롬비아·멕시코 등 남미에서도 수백 명이 찾아왔다. 특히 첫 성인을 낸 콜롬비아의 후안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은 직접 참석해 아르헨티나 출신 교황의 시성을 지켜봤다.

 한편 이날 교황은 낙태에 대한 반대 입장도 처음으로 공개 표명했다. 그는 이날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낙태 반대 시위에 지지를 표시하며 “모든 인간은 그 존재의 순간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며 “배아(embryos)를 규제하기 위한 법적 보호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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