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 마다 않는 열정이 벤처 최대 자산 … 딸도 해봤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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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박명하 ㈜에코코 대표는 폐수처리장치를 2001년 국내 최초로 개발해 국산화에 성공했다. 그는 “‘중소기업’이란 단어에서 ‘소(小)기업’을 분리시킨 ‘소기업 육성정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안성식 기자]

“내 딸도 벤처사업을 했으면 좋겠다.”

 벤처는 모든 것을 다 걸어도 성공하기 힘든 사업이라고 한다. 박명하(51) ㈜에코코 대표는 그런 벤처를 딸에게 시키고 싶다고 했다. 정작 그의 딸은 “엄마가 죽도록 고생하는 모습만 봐서 그런지 벤처사업은 절대로 안 하겠다”고 하지만.

 -딸은 왜 벤처사업을 안 하겠다고 하나.

 “2000년 창업 후 13년간 수없이 고비를 넘겨왔다. 폐업 위기에 몰려 집까지 팔았고, 지금도 무주택자다. 딸의 말마따나 정말 죽도록 고생했다.”

 -그런데도 딸에게 벤처를 권하는 이유는.

 “벤처는 힘든 만큼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쏟아부을 수 있는 멋진 일이다. 우리 딸도 이 매력을 한 번 느껴봤으면 좋겠다. 죽을 만큼의 고생도 마다하지 않는 열정이 벤처의 최대 자산이다.”

 ㈜에코코는 친환경 수처리 전문기업이다. 해외 수입에 의존하던 폐수처리장치를 2001년 국내 최초로 개발해 국산화에 성공했다. 2009년에는 태양광을 이용한 녹조방지장치 ‘에코코 시스템’을 개발해 국내에서는 물론 지난해 일본과 중국에서도 특허를 받았다. 올해 목표는 해외 진출이다. 이미 미국·터키의 유력 기업과 업무협약이 긍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협약들만 성사되면 연매출이 현재 20억원에서 100억원대로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게 박 대표의 말이다.

 10년 동안 다니던 회사가 1997년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 에코코의 시작이었다. 경영 악화로 회사가 정리되면서 직장 동료들과 창업을 계획했다. 지인에게 “수처리 장치가 외국에서 수입되고 있는데 너무 비싸다더라. 직접 개발해보는 게 어떻겠나”는 말을 들은 것이 계기였다. 물론 무모했다. 당시 수처리 장치는 국내 시장조차 형성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회사는 이내 어려워졌다. 설계 담당 직원까지 그만두면서 사업은 시작한 지 1년이 되지 않아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당장 새 직원을 채용할 여력이 없었다. 박 대표는 직접 실무에 뛰어들었다. 그는 “단순 경영학도였던 내가 CAD(컴퓨터 설계지원 프로그램)를 밤새 공부하며 익혔다.

 그렇게 개발한 것이 상징수(上澄水·윗물을 맑게 하는 물) 배출장치 ‘디캔터’였다. 운송비·에이전트비 같은 거품을 빼니 가격은 수입 제품의 3분의 1 수준이면서도 품질은 뒤떨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 개발한 지 3년 만에 수입 제품을 몰아냈다.

 하지만 중소형 폐수처리시설에 적합했던 디캔터는 갈수록 대형화돼가는 폐수처리시장에서 점점 입지가 좁아졌다. 2005년에는 급기야 회사가 폐업 위기에 놓이면서 박 대표는 갖고 있던 집 두 채를 팔았다. 그러던 중 한 외국 기업의 신기술 발표회장에서 태양광발전 기술을 보게 됐다. 그 기술에 착안해 만든 것이 에코코 시스템이었다.

 -여성 CEO로서 일과 가정의 양립이 쉽지 않았겠다.

 “엄마의 손길이 필요할 때 아이들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것은 가슴 아팠다.”

 - 여성 CEO들에게 유경험자로서 조언한다면.

 “아이가 자라는 시기에 따라 일과 가정의 시간 배분을 미리 정하는 게 좋다. 예를 들어 엄마의 손길이 한창 필요할 나이인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후로는 일 60 대 가정 40. 애들이 좀 크고 나면 70 대 30, 이런 방식으로 정립해놓으면 혼란도 적고 스스로에게도 떳떳한 엄마가 될 수 있다.”

 박 대표의 바람은 우리나라에서 ‘내 딸도 벤처 시키고 싶은’ 환경이 마련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중소기업’이란 단어에서 ‘소(小)기업을 분리시켜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중소기업 중에서도 소기업들은 중소기업하고 경쟁하는 일조차 버겁고 제품을 개발하고 싶어도 자금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이들의 연구개발(R&D) 등을 적극 지원하는 ‘소기업 육성 정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글=홍상지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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