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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와 국토 방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13일은 「대보름」이다. 속칭 「부름」이라고도 하지만 「부럼」이 표준말이다. 이날은 『소리 나는 과일』을 먹는 습속이 있다. 호두, 은행, 잣, 밤, 호콩 모두 소리나는 과일들이다. 동국세시기에는 「고승의 방」이라고 그 습속을 풀이하고 있다. 호박씨니 해바라기 씨앗 등이 「부럼」 속에서 빠진 것을 보면 「고치의 방」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옛날분들은 단단한 호두알도 어금니로 따악 따악 깨물었는데 요즘은 이(치)가 좋은 분들도 망치를 들이댄다. 알고 보면 그중은 이는 의치가 아닌가. 요즘은 이가·시원치 않으면 그 근방을 몽땅 들어내고 의치로 바꿔 끼는 일들을 흔히 본다. 이 (치)를 갈아 끼우는 일은 대수롭지도 않은 세상이 되었다.
이의 수명은 간수만 잘하면 2백년은 든든하게 쓸 수 있다고 의사들은 말한다. 세계 최고령자로 아직도 생존중인 소련 남부 「코카서스」 산중의 집단 농장 수위 「시라리·미스리모프」 노인 (163세)은 이 내기 (치교) 이후, 어느 이 하나 빠진 것이 없다고 한다. 그외 장수 비결은 바로 그 이에 있는 것도 같다.
그러나 내과의의 주장은 좀 다르다. 「플라스틱」제 위도 있다는 것이다. 이가 방앗간 구실을 하던 때는 그것이 바로 소화기관 중에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다. 의학이 최고도로 개발되면 이는 한낱 미용용으로나 남게된다는 이야기다.
「부럼」은 건치를 위한 습속만은 아니다. 『1년 열두달 무사태평하고, 부스럼·뾰루지 하나 나지 맙시사』 하는 「대보름」 축사도 있다. 「소리 나는 과일」들의 자지러지는 소리에 놀라 부스럼의 악귀들이 도망친다는 뜻인가. 아니면, 부스럼 같은 「부럼」들의 껍질을 떼어버린다는 뜻에서 유래한 것일까.
「대보름」의 현대적인 풀이는 후자의 경우가 훨씬 어울릴 것 같다. 요즘처럼 부스럼 투성이의 세상이고 보면 그런 풀이는 사뭇 걸맞는다. 1년 연두달 「부스럼」이나 뾰루지가 없는 때가 없다. 세태는 온통 부스럼 투성이다. 금년엔 원단에 접어들자 사고 연발. 지금은 국가 안보의 문제까지 대두되었다. 국가의 피부나 다름없는 국토를 온전히 방위하기 위해서도 국민들은 총대를 메기에 앞서 우선 호두알이나 잔뜩 까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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