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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보도작전"|본사 기자들의 취재여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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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해에서 북괴에 불법납치된 「푸에블로」호 승무원 송환을 둘러싼 판문점비밀회담은 「세계의눈」의 촛점이 되었다. 이 「세계의촛점」을 보도하기위해 밀려닥친 외국특파원만 해도 미·영·불·독·「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일본 등 「베테랑」급 64명(7일현재공보부등륵). 그러나 「푸에블로」호를 둘러싼 판문점 비밀회담등은 미국정부의 함령때문에 구름잡기식 취재.
서울과 「워싱턴」의 보도는 「미친년널뛰듯」추측보도가 난무했으며 외국의 어느 특파원은 판문점회담을 「암흑속의춤」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7일 겨우 판문점 비서장회의가 공개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회담의 내용과 진전상황등은 깊은 비밀의 「베일」속에 묻혀있다.
지난 2일부터5일까지 세차례의 판문점비밀회담을 비롯, 사상자 송환설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치열한 취재전의 고심담을 현지에 특파되었던 본사기자들의 입을 통해 더듬어본다.
A=1일상오 미국이 판문점에서 북괴와 「푸에블로」호 승무원송환을 둘러싸고 회담을 가지리라는 보도가 전해진 이후 판문점「자유의다리」는 내외기자로 장사진을 이루었읍니다. 그러나 미헌병들에 의해 완전히 저지를당해 「자유의다리」근처에서만 서성거릴뿐 한발도 판문점으로는 들여놓을수가 없었어요. 더구나 3일밤 사망자1명의 시체가 판문점에서 인수되었다는 설이 외신보도로 들어오자 「자유의다리」에서 1백여명의 내외기자들과 현병들은 옥신각신. 미ABC기자는 『20년기자생활에서 이렇게 취재가 어려운것은 처음 경험이며 「모스크바」주재4년에도 없었던 고충이라』고 투덜대더군요.
B=사망자의 시체가 이미 인수되었다는 설은 정말 취재기자들을 미치게 만들었어요. 판문점에서 인수되면 틀림없이 부평에 있는 미제121후송병원으로 옮겨지리라고 보고 취재망을 폈지만 어떻게나 비밀에 비밀을 지키는지 벙어리 냉가슴앓기였죠. 거기다 후송병원에서는 6일하오4시 이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간호원, 의무기록서기등 1백50명의 한국인종업원들을 전원퇴근시키고 미군들이 일을 대신 맡는 바람에 이날밤에는 틀림없이 오리라고 생각하여 병원에 드나드는 차량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워야했습니다. 그때 한 한국종업원의 입에서 시체실에 있는 4구의 미군시체중 1구가 4일하오 「헬리콥터」편으로 실려왔다는 이야기에 성급한 ×지기자는 「푸에블로」호 선원시체1구송환이라고 본사에 대고 큰소리쳤지만 오보였지요.
C=또한 인수된 시체는 오산미군비행장을 통해 본국에 송환되리라는 추측때문에 저는 오산에서 50시간동안이나 내리고 뜨는 비행기에 신경을 쏟아야했습니다. 오산에는 40여명의 내외신문기자들이 진을치고 있었는데 겨우 미공보장교를 통해 영내에 들어가는데 성공을 했는데 헌병의 안내로 비행기만 구경시켜주더니 그만 내어쫓아버리더군요.
D=하여간 우리기자들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일급들이라는 외국 특파원들도 맥을 못추는 판이에요. 15년전 한국동란과 휴전회담을 취재한바 있는 미국의 K기자도 이번만은 울상을지으며 출장값도 못하겠다고 침울한 표정이에요.
지난2일 K기자는 「유엔」측 군사정전위원회를 들볶았으나 아무런 취재도 못하고나서 다음날 이미 첫접촉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겨우 듣고 본사에 전화를 했더니 본사에서는 『이미 「존슨」대통령이 발표해서 백악관에서 들어왔다』고 말하더라나요.
K기자는 그만 얼굴이 화끈 달았다지 뭡니까? 창피해서 울고싶은 지경이었대요.
A=이번사건만큼 구름을 잡는것처럼 힘든 취재는 처음이었어요. 사상자를 인수하면 으례 부평 121병원으로 이송될거다해서 부평에 가서 기다렸거든요. 그렇지만 병원에 접근할수가 있어야지. 병원이 내려다뵈는 언덕에 망원「카메라」를 걸어놓고 온종일 지키고있자니 발은얼어오고-. 「헬리콥터」가 하나 뜨거나앉으면 저게 뭔가하고 신경만 돌았어요.
C=오산기지로 오지않을까해서 사흘밤을 비행장 정문앞에서 버티었지만 헛수고했지. 미군공보장교를 붙잡고 말을 시키면 잘도 빠져나가더군요.
A=8군 「헬리포트」로 온다는 전보가 있어서 한밤중에 뛰쳐나갔더니 보안등만 훤한데 자, 돌아올수도없고 물어볼 사람도 없고 밤새껏 떨다가 돌아왔어요.
E=이렇게 이번사건이 비밀의 「베일」을 뒤집어 쓴것은 미고위당국자의 특별지령이란 이야기가 있어요. 외국 기자들은 「존슨」미대통령이 모든 판단과 방향을 하나로 이끌어가려는 고집때문에 비밀로 하는것이라고 말하더군요. 또 영국 BBC방송의 「데이비드·윌리」 기자같은 사람은 회담을 공개하면 공산측의 선전장이 될 우려가 있기때문이라고 자기견해를 말했어요.
F=아무리해도 북괴와의 이번 흥정은 장기화된것같아요. 외국기자들도 그렇게 보는 사람이 많은데 공산주의자들과 며칠동안 2시간남짓 이야기해서 문제가 해결된 예는 일찍이 없지않아요.
G=6일에 겨우 판문점 비서장회의가 공개되었지만 「푸에블로」호 사건에 대해서는 계란 껍질 만지기였어요. 형식적으로만 공개해 놓고 실제로는 아무런 회의도 안했으니까 말예요.
F=「자유의다리」에서는 헌병이 막고 본사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말고 판문점에 들어가라고 고함을 쳐서 기자는 완전히 「샌드위치」가 되고말았어요. 하다못해 묘한방법을 생각해내서 판문점 「베이스·캠프」뒤뜰에 세워놓은 「앰블런스」를 찍고 여하간 「자유의다리」는 넘었지만 판문점회담장소 못미처에서 미헌병에 들켜 그만 멱살을 잡힌채 쫓겨나길 몇번했지요.
그래도 이때 「자유의다리」를 넘어들어간 기자는 나밖에 없을꺼예요. 하하….
H=7일밤 「푸에블로」호의 출항기지인 일본의 「사세보」해군기지로부터 기록영화촬영반 수병 수명이 서울에 도착했어요. 이들은 「푸에블로」호에 친구들이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8일하오 이들은 판문점에 가서 지형을 관찰했지요. 현재 8군영내에는 「하와이」의 태평양지구사령부에서 출장온 군보도요원도 많아요. 그러나 그들도 「푸에블로」호 승무원이 판문점을 통해 오더라도 한국을 떠날때까지 어느 기자에게도 그들과 접촉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모두 멀찌감치서 사진이나 찍을수 있을것이라는거예요.
B=또한 이번 사진취재도 말할수없이 힘들었어요. 자유의 다리에서는 C지기자가 미군헌병한테 사진기까지 빼앗긴 일이 있었지만 다른때보다 이상할이만큼 미헌병들이 취재를 방해하거든요. 이상할정도로 아주 취재를 못하게하는데 신경이 날카로와있어요.
A=지난7일에는 「푸에블로」호 사상자 시체가 판문점에서 직접 동해에 있는「엔터프라이즈」호로 송환되었다는 설이 떠돌아 보도진의 신경을 자극했지요. 9일 현재도 송환에 대비,판문점 화담장소 남쪽약7백미터기지사령부마당에 긴급구호용 「앰뷸런스」3대와 미군「버스」 1대가 나란히 세워져있어요.
어찌나 헌병을 비롯하여 모든 관계자에게 함구령이 내려졌는지 『오늘도 또 「노·코멘트」냐』고 조르면 그것에 대한 대답마저 「노·코멘트」라고 말한다니까요. 이런 가운데 한 미국기자는 한·미관계도 현지와 「워싱턴」에서 보는 눈이 서로 달라그런지 「데스크」는 『서울발의 기사가 알쏭달쏭하다』고 문의전보가 하도 많이와 『내가보낸 전보기사보다 본사에서 온 문의전보가 더 많다』고 쓴웃음을 짓더군요.
B=하여간 비밀의 「베일」은 하루빨리 벗겨져야해요. 어느 외국기자도 말했지만 구구한 억측과 과장이 떠도는 가운데 한·미우호에 금이 갈 우려도 없지 않으니까요.
참석자
박승탁기자(사회부)
정덕교기자(사회부)
임상재기자(외신부)
장두성기자(사회부)
백학달기자(사회부)
윤정규기자(사진부)
김준배기자(사진부)
김석년기자(지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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