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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咬文嚼字[교문작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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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휘원(郭暉遠)이란 벼슬아치가 있었다. 타향 근무가 길었다. 고향의 아내에게 편지를 부친다는 것이 실수로 백지를 보냈다. 무소식도 희소식도 아닌 무자(無字) 편지에 아내는 시로 답했다. “푸른 휘장 창 아래서 편지를 뜯어보니(碧紗窓下啓緘封) 편지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텅 비었더이다(尺紙終頭徹尾空). 아하! 당신은 이별의 한 품으시고(應是仙郞懷別恨) 저에 대한 생각 무언 속에 담으셨군요(憶人全在不言中).”

청(淸)나라 원매(袁枚1716~1797)가 지은 『수원시화(隨園詩畵)』의 한 대목이다. 기껏 쓴 편지 대신 백지를 부친 남편, 꿈보다 해몽의 부인, 중언부언 없이 답시만 깔끔하게 소개한 원매까지 멋쟁이 트리오다. 같은 책엔 이런 일화도 나온다.

왕서장(王西莊)이 지인의 문집에 서문을 썼다. “시인이 꼭 음시(吟詩)에 능할 필요는 없다. 흉금이 초탈하고 온아하다면 일자무식도 참시인이다. 마음이 옹졸하고 속(俗)된 자라면 온종일 교문작자(咬文嚼字)하고 연편누독(連篇累牘·쓸데없이 문장이 길고 복잡함)하더라도 시인이 아니다.”

여기 나오는 ‘교문작자’의 뜻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문장과 글자를 되씹음이다. 글을 가다듬는 꼼꼼함을 말한다. 둘째, 일부러 어려운 문자만 골라 쓰거나, 수식어만 번지르르하게 꾸며 쓴다는 의미다.

중국의 ‘교문작자(咬文嚼字)’는 권위 있는 말글 전문잡지다. 한 해 동안 빈번하게 잘못 쓴 표현을 발표해 글쟁이들에게 필독서로 통한다. 주 초에 ‘교문작자’ 편집부가 마오둔(茅盾) 문학상의 역대 수상작품들을 ‘씹겠다(咬嚼)’고 선언했다. 하오밍젠(?銘鑒) 총편집은 “현대 문학의 고전이라면 문학적 가치, 언어·문장뿐만 아니라 편집·교열도 최고 수준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범케이스도 내놓았다. 2008년 수상작 『암산(暗算)』의 ‘101개 주판알’이 딱 걸렸다. 중국의 주판은 보통 한 줄에 7개나 6개다. 101알 주판은 세상에 없다. 소설 『어얼구나강의 오른편 기슭(額爾古納河右岸)』에서는 ‘북두칠성이 달 주위를 돈다’는 천문에 어긋나는 표현이 잡혔다.

한국의 출판·문학계는 어떤가. 『교문작자』 같은 시어머니는 언감생심이다. 사재기로 돈벌이 궁리만 열심이다. 문화 융성은 노래 한두 곡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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